[정부 개혁]새 정부, 제살깎는 ''고통 분담'' 단행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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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원 1순위, 비경제 부처도 대수술 … "공무원 저항 없을 것"
한국 정부는 정부 수립 50주년인 98년에 과연 조직과 인사 면에서 리스트럭처링(사업 구조 재구축)과 리엔지니어링(업무 과정 혁신)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될 현실적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국제통화기금의 관리 체제가 정부를 개혁할 절호의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 개혁은 수년간 논의해 온 해묵은 숙제인데다가 IMF 체제까지 겹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합의가 정부 내에 이루어진 상태다. 공무원들의 집단 반발이나 저항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97년 12월25일 ‘ 대통령(실)부터 내핍하겠다’는 것으로 정부 개혁에 대한 첫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인 개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당선자 진영은 △김영삼 정부의 자문 기구인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가 94년부터 연구해 온 안 △최근 총무처가 주도해 성안한 정부안 △지난해 10월 한국공공정책학회와 ‘바람직한 정부를 연구하는 모임’이 함께 내놓은 정부 개혁안 △12월 행정개혁시민연합이 내놓은 안 등을 참고할 작정이다. 또 정권인수위원회와 별도로 행정 개혁을 전담할 행정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안을 마련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한편 현정부는 97년 12월17일 총 9명으로 구성된 정부구조조정심의위원회를 발족시켜 최종안을 내놓을 작정이다. 김당선자는 이런 여러 갈래의 기구에서 나온 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정부 개혁을 단행할 것이다.

단행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 개혁을 새 정부 출범 전에 착수하면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구조 조정을 할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짧아 자칫 졸속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반면 출범 후에 하게 되면 사회적 합의를 모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새 정부의 신임 장관들이 중도 하차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을 뿐더러 축소 자체가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출범 전에 단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총리실 강화·통상 전담 조직 신설

98년 정부 몸집은 97년 정부보다 상당히 날씬해질 것이다. 현정부의 안에도 중앙 부처 인력을 5천∼7천명 감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인력 감축 문제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지만, 중앙 부처 공무원을 지방 정부로 내려보내거나, 민영화 등으로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을 최대한 잘 활용한다면 공무원 실업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인력 감축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경쟁력이 떨어지는 공무원을 도태시키지 않으면 공공 부문의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는 점에서 파란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하던 일을 민간에 위탁하거나 아예 민영화하는 개편도 있을 터여서 정부 부문 자체도 줄어들 것이다. 가령 정보통신부가 관장하고 있는 우체국이나 재정경제원의 세무대학 등은 민영화할 것이다. 정부기록보존소 등 몇개 산하 기관은 민간 위탁이 점쳐지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과 국무총리실이라는 정책 조정 기구의 개편도 확실시된다. 당선자측은 현재 정무·경제·외교안보·행정·민정·공보·사회복지·정책기획·농림해양·총무·의전 등 11개 수석비서관실을 정무(정무+민정)·경제(경제+사회복지+농림해양)·외교안보·행정·공보 등 5∼6개로 감축할 생각이다. 사회복지실은 갈수록 복지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터여서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 내용 가운데 눈여겨볼 대목은 수석비서관 수를 줄인다는 점보다 비서실 역할을 재설정한 데 있다. 비서실을 내각에 대통령의 뜻을 전하는 연락소로 만들며, 대통령 지시 과제에 대한 기획 기능을 맡을 조직으로 ‘격하’한 것이다.

총리의 위상과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기능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국민회의는 공약집에서, 총리의 실질적 조각권을 존중하고 국무총리의 지위와 권한 행사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더라도 헌법·정부조직법 등 어디를 보더라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총리 행정조정실이 명실상부하게 정책 조정 기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다. 각 부처의 정책을 평가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국정이 효율적이고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산권과 인사권을 총리실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총리가 내각을 힘있게 챙기기 위해서는 돈과 인사권이라는 비밀 병기를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발상에서다. 인사 기능은 중앙인사위원회(원)를 설치해 총리실에 둘 가능성이 크지만, 예산실은 총리실로 갈지 청와대로 갈지 불투명하다.

예산권과 인사권의 청와대 혹은 총리실 이동은 내각에 연쇄 파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나라를 누란의 위기로 몰아넣은 재정경제원은 형해화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재경원을 세제·국고 기능만을 가진 재정부로 만들자는 구상은 재경원 등 일부 관료들의 거센 저항을 부르고 있다. 이들은 예산·세제·국고 기능 일원화가 재경원을 통합한 가장 긍정적 효과인데, 예산을 떼어내는 것은 그 효과를 반감시키며, 기획·조정 기능도 국가 발전 전략과 연계해 자원 배분을 하기 위한 관점에서 같은 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금융 기능 외에는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과 달리 재경원 개편 폭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통상산업부 역시 조직의 틀이 상당히 달라질 전망이다. 우선 통상 기능은 외무부와 재경원의 비슷한 기능이 합쳐져 통상투자대표부 혹은 무역대표부 같은 조직으로 태어날 공산이 크다. 유사한 기능 통폐합이라는 명분에다 통상 역량 강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와 같은 통상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바람직한정부를연구하는모임이 지난해 10월 중견 공무원 2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산업 정책 수립 기능도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장 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살아 남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처 등의 과학 기술 관련 기능도 통폐합될 공산이 크다. 국민회의는 공약집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며, 과학기술처의 위상을 격상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위상이 격상될 경제 부처로는 보건복지부가 있다. 복지 기능이 갈수록 부각될 터이기 때문이다.

행정 서비스 개선, 이제부터 시작

그동안 거의 개편의 파고를 겪지 않았던 비경제 부처들은 98년에 훨씬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우선 내무부·총무처·공보처 등은 폐지되거나 큰 폭으로 수술될 가능성이 높다. 내무부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됨으로써 거의 수명을 다한 조직으로 이미 낙인 찍혀 있던 터다. 인사권과 조직권을 가진 총무처도 이 기능을 총리실 등 다른 조직으로 옮긴다는 구상이어서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보처는 대외 공보 기능과 언론 견제 기능이 다른 부서로 이동해 폐지가 확실시된다. 행쇄위는 내무부·환경부·총무처·조달청의 전부 혹은 일부 기능을 합친 국가행정처 신설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무부뿐만 아니라 지방 분권화 차원에서 일부 기능이 지방에 이양되는 부처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과잉 투자’된 부처도 수술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부처로는 부총리가 수장인 통일원, 장관급인 국가보훈처, 정무장관실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통일원은 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고, 국가보훈처 등은 총리실로 기능이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정무 2장관실은 여성부로 확대 개편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은 추진 방식과 성과는 다를지언정 정부 생산성과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력 감축, 정부 조직 개편, 업무 처리 절차 개선 조처를 단행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겨우 이 대열에 참여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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