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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家族 건설하자. 아이들을 살리자

이혼 등 ‘가족 해체’로 불행해진 아동들, 사각지대 서 망가져…학교·가정·사회의 지원체제 정립 필요

경북 안동·金恩男 기자 ㅣ 승인 1997.05.08(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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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전적 정의는 ‘부부를 기초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사전은 이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9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기초 단위(부부)가 흔들리는 징후를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94년 현재, 남녀 6쌍이 결혼하는 동안 1쌍은 이혼한다. 부부 관계의 변동은 가족 관계의 변동으로 곧장 이어진다. 홀부모 가족·독신 가족·공동체 가족·동성애 가족 등 온갖 형태의 새로운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친밀함’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가족의 내부는 상처투성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는 각기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자기 몫을 챙기려 한다. 드물게는 ‘폭력’을 매개로 한 부모-자녀 관계의 뒤집힘도 나타난다. 통합적 가족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는 이를 ‘위기’라고 하고, 누구는 이를 ‘변화’라고 한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가족 관계를 요구한다. 단,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는 아직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4월13일 오전 9시. 밥상을 물리자마자 정래(10)는 일어섰다. 일요일이라고 아침부터 놀러 나갈 모양이었다. ‘어제 담임 선생님이 또 전화하셨더라.’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던 ㅈ씨(경북 안동시 안흥동)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정래를 맡아 키운 지 벌써 2년째. 처음에는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회초리도 들어 보았지만 요즘에는 지친 상태였다. 자식을 남에게 맡겨 둔 채 아둥바둥 돈을 벌어 보겠다고 애쓰는 아이 엄마(32·다방 종업원)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같은 시각, 안동시 옥야동 ㄱ씨네 집. 세들어 사는 건넌방을 넘겨다본 ㄱ씨 부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아침 책가방을 메고 나간 건넌방 ‘섭이(중섭·10)’는 밤새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외지로 돈 벌러 간다’며 며칠씩 집을 비우는 중섭이 아빠(31)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들어 아이마저 외박을 종종 하는 낌새였다.

2시간 뒤인 오전 11시. 안동병원 6동 631호. 다리를 다쳐 병실에 누워 있던 희동(12·가명)이가 동생 현동이의 전화를 받았다. 현동이는 ‘친구들하고 3시쯤 문병을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각이 되어도 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 셋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하루가 지나서였다. 월요일 아침 안동 시내 각급 학교는 ‘0시44분 안동초등학교 임시 창고에서 불이 나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년 셋이 죽었다’는 소식에 비상이 걸렸다. 최정래·김중섭·김현동. 세 아이가 다니던 안동 영호초등학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 어울려 다니던 3명이 이 날 모두 결석하자 혹시나 싶어 병원 검안실로 달려간 교사와 친지 들은 타다 만 옷가지와 신발로 ‘지문 감식조차 불가능할 만큼 훼손된’이들의 주검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들이 변소를 임시 개조한 창고 안에서 잠을 자다가 화재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들이 숨진 현장에서는 ‘오마 샤리프’ 빈 담뱃갑과 1회용 가스 라이터 2개가 발견되었다.

사건은 조용하고 빠르게 수습되었다. 부검이 끝난 직후 아이들은 화장되었다.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난 4월24일 현재 경북 교육청은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안동 영호초등학교)에 대해 별다른 지도 책임을 묻지 않은 상태이다. 학교측이 3명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개별 지도를 하는 등 노력해온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세 아이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 탓에 죽었다

학교에서 보기에 이들은 전형적인 ‘문제 어린이’였다. 학교측이 지난해부터 관리해온 ‘문제아 현황 파악 및 지도부’에 이들 셋의 이름은 어김없이 올라 있었다. 96년 3월20일 역 앞 담뱃가게를 텀, 10월14일 훔친 돈으로 오락실을 전전하며 무단 결석, 10월30일 빈 집에 기거하며 절도 행각을 벌이다 이웃의 신고로 붙잡힘, 97년 3월20일 가방 속에서 담배 발견. 기록은 이들이 죽기 이틀 전, ‘(학교에) 가방만 갖다놓고 사라짐’이라는 대목에서 끝나 있었다.

무단 결석·절도·흡연 그리고 비참한 죽음. ‘교단 생활 30년 만에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는 영호초등학교 한 교사의 지적대로, 이들의 짧은 생애는 초등학교 4학년생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채워졌다. 그럼에도 이들의 죽음은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손 가정’. 세 아이의 죽음에 대한 외부의 침묵은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부모는 ‘입이 10개 있어도 할 말이 없고’, 학교와 사회는 ‘결손 가정 출신이니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이다. 사건 조사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부모가 이 애들을 죽인 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결손 가정’ 아닌 ‘홀부모(편부모) 가정’출신이다. 변화순 박사(한국여성개발원 수석연구원) 지적대로 ‘결손 가정’은 사회 일방의 가치 판단이 들어간 개념이기 때문이다. 홀부모 가정 출신인 세 아이는 모두 가난하고, 그나마 있는 반쪽 부모와도 떨어져 살다시피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에 발표되는 사회 지표들은 예외 없이 홀부모 가정의 증가를 지적하고 있다. 통계청이 올해 초 발표한 <1996 한국의 사회 지표>에 따르면 95년 홀부모 가정은 모두 94만2천 가구로, 10년 전에 비해 10만 가구 남짓 늘어났다. 전체 가구 수로 따진다면 8.5%, 곧 11가구 가운데 1가구는 여기 속한다는 얘기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혼으로 인한 홀부모 가정의 증가이다(46쪽 표 참조).
이혼 증가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93년 결혼 7쌍에 1쌍 꼴이던 이혼(결혼에 대한 이혼율)은 불과 1년 만에 6쌍에 1쌍 꼴로 ‘압축’되었다(아래 도표 참조). 이대로라면 결혼 2쌍에 1쌍 꼴로 이혼하는 미국 뒤를 따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이혼에 대한 인식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제는 ‘도로 총각’이라고 내 소개를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그런 농담이 통할 만큼 사회가 바뀐 듯하다.” 이혼한 지 6년 되었다는 한 남자(41)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2∼3년 사이 쏟아져 나온, ‘잘못된 결혼이라면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이혼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여권론자들의 주장은 이같은 변화를 가속화했다.

그러나 이혼과 관련한 격변 속에 유독 ‘지체 현상’을 빚는 대목이 있다. 자녀 양육을 둘러싼 문제가 그것이다. 이혼으로 가장 고통받는 당사자가 자녀이며, 부모 또한 이혼 뒤 적응 단계에서 자녀 양육 문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최근 여성이 아이를 맡아 기르는 비율이 크게 늘어나는 등 변화 조짐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혼 뒤 부모가 공동으로 친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가족법이 바뀐데다(90년) 재산분할권 신설로 여성이 경제적으로 홀로 설 기반이 확대된 덕분이다.

문제는 홀부모 가정이 날로 늘어나는 데 반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는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이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홀부모 가정에 대해 주택 우선 공급·취업 알선·자녀 학비 지원 정책 등을 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대상은 저소득층(4인 가족 기준 월 평균 소득 97만2천원 이하) 가정에 국한되어 있다.
얼마 전 한국남성의전화(소장 이 옥)에 세 자녀(9세·7세·4세)를 두었다는 한 40대 남자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의 아내는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한 채 가출한 상태였다. 공사판에 나가고 있다는 그 남자는 한 달에 절반 이상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보육 시설에 맡겨야 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상담을 구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이를 맡게 된 남성 대부분이 이같은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이 이 옥 소장의 말이다. 보육 시설에 수용된 어린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살아 있는 친부 또는 친모를 갖고 있는 현실은 이를 반영한다(47쪽 상자 기사 참조).

잘못된 통념 ‘이혼 가정 자녀=비행 청소년’

심리적인 지원 체계는 더욱 엉망이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혼 가정=결손 가정’‘이혼 가정 자녀=비행 청소년’의 등식을 받아들인다. 이같은 등식은 이혼에 따른 사회적 편견을 기꺼이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는 어른마저 휘청거리게 만든다. 자신이 이혼한 경험을 기꺼이 공론의 장에 내놓고 있는 여성학자 오숙희씨는 ‘이혼 뒤 세상이 가진 편견이 녹록치 않으며, 그 편견에 우리 아이들이 주눅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낭패감을 느낀 순간이 왕왕 있었다’고 고백했다(‘가족과 성 상담소’ 소식지 10호).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같은 편견이 근거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혼 가정의 자녀가 가정·학교·사회·이성 문제에 부적응 현상을 초래하는 경향은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요인, 이를테면 아이의 연령(밸러스타인과 켈리), 정서의 성숙 정도(헨리 빌러), 이혼에 따른 빈곤화(맥러한) 따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대다수 연구의 결론이다. 이혼 뒤에도 부모 양쪽으로부터 계속 관심과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기쁨을 느낀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표계학 <이혼으로 인한 배우자와 자의 부양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부모 중심적 사고부터 버려야

그러나 여전히 양육권자는 양육권을 갖지 않은 상대가 자녀를 접촉하는 일을 꺼린다. 비양육권자 스스로 아이와 관계 맺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긴 채 이혼한 지 4년되었다는 30대 여성은 ‘철없는 아이들 옆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아이들 가슴에 멍만 되고 안정적인 생활을 방해하게 될 것이므로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만남을 보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는 부모 중심적인 사고의 산물일 수 있다고 변화순 박사는 지적했다. 오히려 중심이 되어야 할 기준은 자녀의 안정과 행복이라는 것이다. 현실 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정 가족법은 이혼 때 ‘자녀의 복리’를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이혼 판례는 부모의 자녀 양육권을 자녀의 복리보다 앞자리에 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배우자를 구타해 이혼당하는 가해자가 친권을 갖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안동초등학교 아이들의 죽음은 이같은 제도적 개선을 포함해 홀부모 가정을 받아들일 만한 가정·학교·사회의 지원 체제가 하루빨리 정립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어머니+자녀’만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근대 사회의 가족 모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홀부모 가족의 아이들은 근본적인 박탈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50~52쪽 딸린 기사 참조). 그러나 ‘가족 해체’라는 막을 수 없는 대세 앞에 더 이상 넋을 잃고 있을 수만은 없는 시점을 한국 사회는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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