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덕본 게 뭐 있다고…"
  • 광주·나권일 주재기자 ()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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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주민, 응집력 점차 퇴조…'아니 땐' 호황설 또 나올까 조바심

사진설명 "우리가 덕본 게 있당가" : 정권 교체 이후 호남인들은 실속 없이 속앓이만 했다고 푸념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광주지역 술집에서는 보해소주만을고집하는손님이 줄었다. 그 바람에 보해소주의점유율은 90%아래로 추락했다. 대신지금은 국내소주업계 1위를 달리는 진로의 '참이슬'을 찾는젊은이나 직장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켠에서는 해태 타이거스의 모기업인해태제과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업계1위를 달리고 있는 롯데제과가 타이거스를 인수하려 하고 있다는 설이 흘러나온다.그렇지만 호남 지역에서 크게 반발하는 움직임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호남 지역과연고가 없는롯데백화점이나 신세계백화점은 광주 시민의 '적극적인 소비'에 힘입어 최근 유통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과연 호남인들은 정권이 교체된 뒤로 심리적 여유를 찾은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과거에 호남 사람이 보여주었던 특유의 응집력은 차별에 대한 방어 본능이었을뿐 공격적인 배타성과는 무관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9년 12월광주사회조사연구소(소장 김순흥)가 발표한 조사 결과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당시 조사에서 경상도 사람과 사돈 관계를 맺거나 결혼하지 않겠다는 전라도 사람은 5.8%와 5.4%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전라도 사람과 사돈 관계를맺거나 결혼하지않겠다는 대구·경북 사람은 각각10.8%와 15.7%나 되었다.


"DJ와 호남 적극 분리하자"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호남인은 응어리진한을 풀어가며 꾸준히 외부에 손을 내밀고 있지만 여전히보이지 않는 외부의 벽이 두텁다는 한탄만 나올 뿐이다. 오랜 세월 냉대와 차별을 받아왔다고 여기는 호남인에게 김대중 정부 역시 '호남 사람의 숙원을 이루었다'는 심리적인만족감 외에는 별다른 혜택이나 충족감을 주고 있지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난해 언론 비평 단체가지역 감정을 조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한 <동아일보>의 '부산·대구엔 추석이 없다'는 기사에대해 호남 사람들의 분노는 매우컸다. 당시 어음 부도율은 광주·서울·대구·부산 순으로 높았는데 유독 이 신문이 영남 쪽의 어려운경제 상황만 대문짝하게 부각했기 때문이다.한 택시 운전 기사는 "정권이 교체된 후 호남사람이 덕을 본 게 뭐가 있느냐"라며 개탄했다.

광주 시내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김정민씨(32·광주시 동명동)는"가끔대구와 부산에 가는데 공장이 문을 닫아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전라도는 원래부터 IMF였다, 문 닫을 공장이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만 하고 왔다"라고 말했다.

올해 광주 지역에 투자되는 중앙 예산은 5천4백억원. 1998년에 비해 3배 정도 늘어난 액수이다. 전남 지역 역시지난해부터 공항·항만·도로 등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에 따른실질적인 혜택이일부 지역 기업과 정치인·관료에게만 돌아갈 뿐 절대 다수 서민에게까지이어지지 않는다는데 호남 사람들은 또 한번허탈해 하고 있다. 틈만 나면 지역 감정을 조장하려드는 정치권과 언론이 언제 또다시 호남호황설을 들고 나올지 조바심도 그칠 날이 없다.

오재일 교수(전남대·행정학)는 이와 관련해 "이제는 호남 사람들이 지방자치활성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호남과 DJ를 분리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지역 감정의책임이 상당 부분 중앙 정치와 언론에 있는 만큼 호남 사람이 민주당과 DJ와 중앙정부로부터 거리감을 둘수록 지역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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