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현장의 '무법자' 용역 구사대
  • 정희상·박병출·고제규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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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효성공장에서 노조원과 유혈 충돌…
조폭·노숙자까지 동원, 고무탄총 등 불법 무기도 소지


5월25일 밤과 5월28일 아침 우리의 공격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회사측 요구를 받고 우리가 계획적으로 도발했다. 그날 밤 안으로 노조 사무실을 접수하라는 명령이었다. 이 기간에 현장에 온 전국 각지의 용역 경비들은 식칼·사제 폭탄·가스총·고무 권총·삼단봉·볼펜 독침까지 몰래 준비했다. 첫번째 공격 때 선두에는 방패와 소화기가 섰다. 우리는 4백명이었고, 저쪽은 7백명이었다. 우리가 쳐들어가자 노조원들도 돌멩이·각목·쇠파이프로 대항했다.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이때 우리가 수적으로 밀리면서 무기를 실어둔 봉고차를 노조원들이 접수해 일체를 빼앗겼다. 우리는 흥분했다. 3일 후 2차 투입되었다. 서울역 노숙자 100명과 서울·대구 지역 조직 폭력배 50명이 추가 투입되었다. 사설 경비회사의 현장 지휘자가 사제 폭탄을 만들라고 지시해 폭탄 50개를 만들었다. 회사측이 쇠파이프를 지급했다. 우리는 탱크 호스로 신나를 뿌리는 무기도 만들었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마지막 충돌 때 우리는 상황이 나쁘니 공격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밀어붙이라고 했다. 그 때의 충돌이 제일 컸다."


경비 용역업체 행동대장 '육성 증언'


지난 5월 하순 울산 효성섬유화학공장 파업 때 사설 경비용역업체 행동대장으로 참여한 김기중씨(가명·35)는 자기의 경험담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당시의 유혈 충돌로 노조원과 사설 경비업체 요원 90명이 부상했다. 사설 경비업계에서 베테랑급인 김씨는 "노사 분규 현장에 수없이 가보았지만 이번 효성 사건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효성 울산공장 노사 분규 현장에 처음 내려간 때는 5월14일이었다. 사설 경비업체 선배로부터 "효성에서 일이 터졌다. 동생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당장 데리고 내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비요원 50여명을 급히 불러모아 효성 공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처음 예상한 만큼 다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은 5월25일 새벽부터 급변했다. 울산 효성섬유화학 노동조합원들은 5월24일 파업 출정식을 가진 뒤 25일 0시를 기해 총파업에 들어갔다. 오전 2시 총파업 선포식이 끝난 뒤 노조원 6백여명은 본사에서 파견된 관리직 사원과 사설 경비업체 요원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체육관 쪽으로 이동했다. 정리 집회 때 늘상 있는 마무리용 세 과시였다.


노조원들을 막아선 것은 관리직 사원 3백명이었다. 당연히 맨 앞에서 노조원과 몸싸움을 벌여야 할 용역 경비원 100여명은 뒤에 있었다. 맨손으로 스크럼을 짠 노조원들과 엉거주춤 서 있던 관리직 사원들 사이에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졌다. 노조원을 막아선 관리직 사원들은 본사(서울)에서 일당 2만원씩을 받고 5월15일과 5월21일 두 차례에 걸쳐 3백명이 울산 공장으로 내려왔다(27쪽 수기 참조). 이들은 무늬만 구사대였다. 관리직 사원들은 뒷걸음질치기에 바빴다. 노조원들은 관리직 사원들이 뚫리자 체육관 앞까지 밀어붙였다.


"죽여" 고함소리와 함께 가스총 발사




그때였다. 느닷없이 소화기가 터지고 가스총이 발사되며 "죽여, 죽여버려"라는 고함소리가 잇따랐다. 희뿌연 소화기 분말 사이로 용역 경비원 100여명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50여명의 손에는 110cm짜리 박달나무 곤봉이 들려 있었다. 노사의 첫 번째 유혈 충돌은 이렇게 경비원들의 급습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노조원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곤봉을 휘두르고 가스총을 쏘아댔다. 순식간에 노조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본사에서 파견된 한 관리직 사원은 이때 경비원이 가스총이 아닌 고무탄총을 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양복을 입은 경비원 가운데 두세 명이 노조원을 향해 권총을 뽑아 발사했는데, 총구에서 나간 것이 가스가 아니고 고무탄이었다는 것이다(고무탄이 발사되는 가스총 사용은 불법). 한밤에 효성 공장은 선제 공격에 나선 용역 경비원과 이에 맞선 노조원의 아비규환 전쟁터로 변했다.


경비원 100여명은 파죽지세로 노조원들을 노조 사무실까지 밀어붙였다. 그들은 유리창을 깨고 노조 사무실을 점령하려 했다.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로 무장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경비원에 맞서 노조원도 반격에 나섰다. 돌멩이가 경비원을 향해 날아갔고, 쇠파이프를 든 노조 사수대가 긴급히 꾸려졌다. 노조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경비원들 역시 부상을 입었다. 이 충돌로 노조원과 경비원을 합해 90여명이 다쳤다.


"서울·대구·울산 조직폭력배 50명 이상 동원"




김기중씨에 따르면, 이날 현장을 지휘한 한 용역회사 간부가 "회사 명령이 떨어졌다. 오늘 밤에 노조 사무실 접수하러 가자"라며 공격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언하자 이를 무력화하고 파업 참가자를 회사 밖으로 밀어내려 '도발'했다는 것이다.


노조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회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회사측은 부랴부랴 공장 안에 있는 쇠파이프를 180cm씩 잘라 경비원들에게 지급했다. 박달나무 곤봉으로 쇠파이프를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경비원들의 눈에도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노조원에게 폭행당하자, 특유의 동료애가 발휘되었다. 이제 막 절단되어 열기가 가시지 않은 쇠파이프가 김기중씨에게도 지급되었다.


첫 번째 유혈 사태가 일어난 뒤 회사측은 용역 경비원들을 늘렸다. 인력 동원을 담당한 울산공장 배 아무개 관리팀장은 동원할 수 있는 경비원을 최대한 끌어오려 했다. 서울과 대구 지역 등 용역 경비업체들의 전화통에 불이 났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ㅂ사·ㅋ 사 등 잘 나간다는 사설 경비업체 가운데 효성측의 전화를 받지 않은 업체가 드물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14개 경비업체가 인원을 급파했다. 효성으로부터 1차 계약을 맺은 곳은 ㄱ컨설팅 사인데, 1인당 15만원으로 70여명이 계약했다. 2차 계약은 ㅂ사, 3차 계약은 ㄱ사와 맺었다. 계약을 맺은 한 업체의 사장은 "효성 쪽에서 무조건 모으라고 했다. 대구에서는 거의 모든 업체가 들어간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경비원 증원 요청에 일부 경비회사는 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했다. 한 관리직 사원은 "한눈에 보아도 전문 경비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트 기도나 조폭들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장 행동대장을 맡았던 김기중씨도 서울·대구·울산 지역 조직 폭력배 50명 이상이 동원되었다고 밝혔다.




6월16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경비원들에게는 노조원들을 위협할 만한 사제 폭탄을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김기중씨는 용역 경비원 가운데 특전사·해병대·UDT 등 폭탄을 만들 줄 아는 특수부대 출신 70명이 차출되었다고 주장했다. 노란 서류 봉투에 신나와 흑연 등을 넣은 이 사제 폭탄은 봉투를 열면 5초 후에 자동 폭발한다는 것이다. 사제 폭탄 제조의 진위 여부는 노·사 간의 논란거리이지만 김씨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볼펜 독침도 목격했다"


한 관리직 사원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경비원 가운데 일부가 불법 무기인 고무탄이 발사되는 가스총을 소지하고 있었다(26쪽 사진 참조). 김기중씨는 25일 밤 충돌 때 경비원 2∼3명이 거침없이 고무탄을 장전해 발사했다고 증언했다. 반지름 5m 내에서 고무탄을 맞게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시사저널〉은 현장에서 수거한 고무탄에 대해 서울 서대문경찰서 방범계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경찰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고무탄이다. 민간인은 소유할 수 없다. 민간인이 소지하면 징역 7년 이하, 1천5백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한 '볼펜 독침'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펜 끝에 마취제를 묻히거나 독을 묻히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며 사정 거리는 5∼7m라는 것이다. 고무탄총이나 독침은 부산·인천·서울 청계천 등지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는데, 고무탄총은 72만∼100만 원, 볼펜 독침은 25만원에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역 노숙자 사이에 '효성 전쟁 무용담' 화제




회사측은 5월25일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ㄱ사와 계약을 맺고, 인원을 있는 대로 끌어모으려 했다. ㄱ사는 용역 경비업체가 아닌 철거 전문 업체다. 효성으로부터 의뢰받은 이 회사는 서울역 노숙자들을 모았다. 중간 모집책 이 아무개씨(40)는 최대한 많은 인력을 '인부다시'(모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서울역 주변 지하도·PC방·만화방을 돌며 노숙자 98명을 모았다.


지금도 서울역 노숙자들 사이에서는 '효성 전쟁' 무용담이 화제이다. 서울역 노숙자 김 아무개씨(45)는 지난 5월26일 '일당 4만원을 줄 테니 철거하러 가자'는 모집책 이씨의 말을 듣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김씨를 포함해 노숙자 98명은 울산 효성공장에 도착하자마자 회사로부터 헬멧·방패·쇠파이프를 지급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본사에서 내려온 관리직 사원들 사이에서 이들은 '남대문 철거반'이라 불렸다.


회사측은 5월28일 용역 경비원과 철거반원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만반의 준비를 거쳐 경찰 진압부대와 유사한 진용이 갖추어졌다. 용역 경비원들과 철거반 방패부대가 맨 앞에 서고, 그 뒤로 소화기·고춧가루기름 분사기·가스총 부대가 섰다. 노조원과 접전하면 먼저 방패로 막고 소화기를 발사한 뒤, 앞이 뿌연 상황에서 최루액과 똑같은 효과가 있는 고춧가루기름을 노조원의 눈에 발사해 시야를 잃게 하고 쇠파이프 부대가 노조원들을 밀어붙인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힘을 못 쓰는 노숙자들이 무력하게 무너지자 이들은 이 날 효성공장 밖으로 밀려났다.


공장을 차지한 노조원들은 용역 경비원과 노숙자 들이 머물렀던 체육관을 수색했다. 수색을 끝낸 노조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스총·전기충격기는 말할 것도 없고 조폭들이나 사용할 법한 대형 식칼 10여 자루가 나왔다.


5월28일 공장이 노조원 손에 넘어가자 공권력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회사측은 정식으로 경찰력 투입을 요청했다. 외곽 지원도 이어졌다. 전경련은 불법 파업인 만큼 공권력을 하루빨리 투입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경제 5단체장들이 효성을 꼭 집어 공권력 투입을 요청한 하루 뒤인 6월5일 새벽 5시20분쯤 경찰이 효성공장에 진입했다. 경찰 투입과 함께 노조 집행부에 체포 영장이 떨어졌다. 쇠파이프를 들었던 노조원들에게도 영장이 발부되었다.


현장에서 전기충격기·식칼 등 무기류 수거




그런데 경찰은 사측의 불법적인 인원 동원은 눈감아 주었다. 경비업법에 따르면, 소정한 교육을 받지 못해 자격증이 없는 조직 폭력배나 노숙자를 동원하는 것은 불법이다. 규정된 자위 수단 외에 쇠파이프와 무기를 제작하거나 소지한 것도 역시 불법이다.


〈시사저널〉은 울산 남부경찰서 방범계 관계자에게 용역 경비원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조사해 보았는지 확인했다.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조사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노숙자를 동원한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경찰 관계자는 "몰랐다. 설마 회사가 노숙자를 동원했겠느냐? 회사를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지난 6월16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울산 효성공장을 찾았다. 6월5일 투입된 경찰은 경비원들이 사용했던 숙소인 체육관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용역 경비원이 전투경찰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용역 경비원 동원을 맡았던 배 아무개 팀장은 계약을 맺은 사설 경비업체를 확인해 주었고, 경비가 4억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ㄱ사 소속 경비들이 노숙자인 줄은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사제 폭탄은 처음 듣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배팀장은 쇠파이프가 회사측이 제작해 지급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상황이 다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시사저널〉은 당시의 상황을 입증할 무기류 일체를 확보했다.


이번 효성 사태는 단일 사업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사 분규 현장에는 으레 사설 경비업체들이 해결사로 동원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용역 경비원들은 공권력이 투입되기 전까지 구사대 역할을 수행하다가 공권력이 투입되면 다른 분규 사업장으로 옮겨간다.


지난 6월12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이자 김대중 대통령은 불법적인 파업은 엄단하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뒤 경찰은 곧바로 총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 간부를 체포하러 나섰다. 그런데 회사측의 불법적인 구사대 동원과 가공할 불법 무기 제조 사용 등에 대해서 정부는 아직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울산 효성 노조는 지난 6월8일 회사와 사설 경비업체 대표를 살인 미수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울산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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