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죽 쑤고, 비리는 용 쓰고…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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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준·진승현·이용호 등 '게이트'만 고속 성장…
감시·감독 눈 감은 정부도 큰 책임
"정현준은 코스닥 대박으로 돈을 번 것이다. 불법적인 일은 많이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용호는 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촌평이다. 기술 개발보다 돈놀이에 열중하는 벤처 업계의 일면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던 ‘정현준 게이트'가 터진 것은 지난해 10월. 그로부터 1년 만에 터져나온 ‘이용호 게이트'는 정씨의 경우보다 규모와 수법 면에서 한 차원 높아진 사건이다.




한국디지탈라인 대표였던 정씨가 자신이 대주주인 동방상호신용금고에서 6백50억원을 불법으로 대출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밝혀진 정현준 게이트는 벤처 기업가·사채업자·관계 인사가 맺고 있는 부적절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첫 사례였다.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으로 벤처 기업 한 곳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한 정씨는, 1999년 후반 코스닥 붐을 타고 다른 벤처 기업들을 ‘문어발'식으로 합병·매수해 재산을 급속히 불렸다. 이 과정에서 동방금고에 예치한 고객의 돈은 정씨의 쌈지돈처럼 이용되었고 금감원 관계자는 이를 눈감아 주는 방패막이 노릇을 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만에 ‘진승현 게이트'가 터졌다. MCI 코리아 대표 진승현씨가 한스종금·리젠트종금과 자신이 대주주인 열린상호신용금고에서 모두 2천3백억원을 불법으로 대출한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된 것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진씨가 영국 I리젠트 그룹의 짐 멜론 회장 등과 함께 리젠트 증권의 주가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이용호 게이트'에 견주면 이 두 벤처 악동들의 행각은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인 ‘G&G 구조조정전문' 대표인 이씨는 지금까지 나온 경제 비리 수법을 총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식 회계와 허위 공시를 통한 주가 조작 수법으로 자신이 인수한 회사의 값어치를 실제보다 높게 만든 이씨는 전환사채(CB) 발행과 유상 증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한 뒤 그 일부(4백51억원)를 착복했다. 게다가 그는 전환사채를 발행해 실권 처리한 뒤 제3자에게 배정하는 방식으로 정계·관계 인사들에게 사실상 뇌물을 주는 첨단 로비 수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용호 게이트는 경제 비리 수법 ‘종합판'


그러나 부를 축적한 과정을 보면 정현준·진승현·이용호 이들 세 사람은 여러 모로 닮은꼴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 가치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대박'을 쫓는 투자자들 덕분에 큰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벤처라면 무턱대고 ‘묻지마 투자'를 하던 코스닥 전성기가 아니었더라면 정씨와 진씨는 큰 재산을 모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씨의 경우는 허무맹랑한 꿈이나 다름없는 ‘보물선'으로 큰 돈을 벌었다. 지난해 12월 3천원대이던 이 회사의 주가는 올해 초 진도 앞바다에서 보물선을 인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두 달 만에 1만7천원대로 뛰어올랐다. 이때 이씨가 주식을 팔아 벌어들인 돈은 1백54억원. 하지만 현재 삼애인더스의 주가는 1천5백원대로 곤두박질했다.


역설적인 점은 이들이 적발되지만 않았더라면 관련 업계에 ‘살아있는 신화'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씨와 진씨는 승승장구하던 청년 실업가였다. 이씨 역시 부실 기업을 인수한 뒤 정상화하는 ‘인수 뒤 개발(A&D)' 방식으로 무일푼에서 천억원대 재산가로 일어선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정현준 게이트에서부터 이용호 게이트까지 지난해 말부터 대형 경제 사건이 잇달아 터지는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현준·진승현 씨의 경우에서 문제가 되었던 창업투자 회사와 이용호씨가 운영하던 구조조정 전문 기업은 감시·감독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금 감면 등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도 소관 부처인 산업자원부의 감독만 받을 뿐 좀더 엄격한 금융감독원의 감독으로부터는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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