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애인더스 사기극 추적/진도 앞바다에 보물은 없다
  • 정희상·나권일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호씨 동업자 "금괴 나올 가능성 희박" 증언
보물섬에는 보물이 없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권력 핵심층 로비 의혹의 한 사슬을 이룬 진도 보물섬 탐사 현장을 직접 찾아 아직도 진행중인 삼애인더스 주가 폭등의 허상을 들여다보았다. 아울러 이용호씨의 보물선 탐사를 매개한 김대통령의 인척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의 막후 역할을 추적했다.


삼별초가 항쟁한 전적지로 알려진 전남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어촌이다. 주업인 멸치잡이와 장어·문어를 잡는 통발 낚시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 마을 주민은 지금 서부 개척 시대의 '골드 러시'를 방불케 하는 (주)삼애인더스의 보물 탐사 작업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9월 이 회사 대표 이용호씨(42)가 구속되었지만, 발굴 현장에서는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탐사 지역 인근 임회면 소재지의 11개에 달하는 다방은 물론 식당과 주점, 몇 안 되는 숙박업소에까지 외지인이 많이 몰려들자 즐거운 비명이 나오고 있다.




진도의 끝자락인 굴포에서 뱃길로 7∼8분 거리에 있는 '죽도'라는 섬이 바로 이용호씨가 주가 조작 재료로 삼은 '보물'이 묻혀 있다고 소문 난 곳이다. 특히 4개월에 걸친 물막이공사와 해저 발굴 작업이 10월 말로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물 실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삼애인더스가 16억원을 투자한, 보물 발굴을 위한 물막이 공사는 (주)해양산업(대표 이민식)이 맡고 있다. 죽도에서 94m 정도 떨어진 매장 추정지 주위에 최대 2m 길이의 강철 파일 수백 개를 박아 마치 방책을 쌓듯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쌌다.


크레인을 탑재한 거대한 바지선과 작업선에 상주하며 공사를 감독하고 있는 (주)해양산업 유광석 현장소장은 "물막이 공사를 마쳤지만 물이 약간씩 새는 곳이 나타나 방수 보강 작업을 하고 있다. 매장지 발굴 허가 기한이 이 달 말로 끝나기 때문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사 현장에 있던 삼애인더스의 한 관계자는 "금괴나 보물 발굴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얘기할 수 없다. 언론사들의 발굴 현장 취재나 참관도 허용하지 않겠다"라며 입을 다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 종목인 삼애인더스 주가는 10월19일 현재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며 액면가 2천5백원인 주가가 4천5백원(10월22일 현재)까지 거래되고 있다. 과연 '대박'이 터질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보물선 아닌 보물 동굴 찾기 소동"


취재진이 현장을 방문해 정밀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대박이 터질 가능성은 없다. 올해 삼애인더스와 보물 탐사를 공동 진행하다 얼마 전 갈라선 오세천씨(33)는 기자에게 "보물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보물선 탐사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가 보물이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한 것이다.


오씨는 "지금 진행 중인 발굴을 중지하고 과학적인 탐사를 먼저 해서 보물이 존재하는지부터 알아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삼애인더스의 보물선 탐사 작업은 확인되지 않은 매장물을 '금괴'라고 뻥튀기해서 주가 차익만 챙기고 개미 투자자를 울린 사기극으로 최종 판명 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삼애인더스의 주가가 널뛰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개미 투자자들이 다시 한번 주머니를 털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삼애인더스가 이용호 회장이 구속된 후에도 '해저 매장물 탐사'라는 염불을 외며 투자자를 현혹해 주가 올리기라는 잿밥을 노리고 있다는 흔적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이곳 진도 앞바다 보물선을 미끼로 지난 6월까지 이미 1백54억원을 챙긴 이용호씨는 또 다른 곳에서도 보물선을 인양한다고 투자자에게 고지해 놓았다. 삼애인더스 인터넷 홈페이지(www.samai.co.kr)에는 진도 앞바다 보물 발굴 소식 외에도 군산 앞바다 침몰 보물선과 파푸아뉴기니 지역 사금광 개발 상황을 속보 형태로 게시해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특히 군산 앞바다에서는 2차 세계대전 말기 금괴 100t을 싣고 가다가 침몰했다는 '장산환'이라는 선박을 발굴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들이 주장한 대로라면 지난 8월 하순부터 9월 하순까지 진도와 군산에서는 보물 발굴을 끝마쳤어야 한다.


발굴 신청서에 기록된 보물 추정액은 겨우 7억여원


이들이 사실상 실체가 없는 보물선을 주가 조작에 악용하고 있다고 의심받을 만한 정황은 해양수산부에 제출한 매장물 발굴 신청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삼애인더스는 진도 앞바다에 매장된 보물 추정액을 7억5천6백만원이라고 밝혔다. 또 군산 앞바다에 매장되었다는 보물 추정 가치는 겨우 6천9백50만원어치라고 밝혔다. 이처럼 스스로 허무 맹랑한 사업을 신고해 두고도 일반인에게는 언론을 통해 수십조원어치 금괴가 나온다고 선전해 1차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기고 또다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애인더스는 지난 2월16일과 4월27일 두 차례 보물선 발굴 목적으로 유가 증권 발행 신고서를 제출하고 주식을 3백75만주 발행했다. 이 주식 공모가를 실제보다 의도적으로 비싸게 내놓아 대부분 실권주 처리가 되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특정인들에게 넘겼다. 당시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은 속수무책이었다.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싸고 권력형 비리 의혹이 증폭된 것도 이 때문인데,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이용호 사건'을 계기로 일반에 갑자기 알려지기는 했지만 죽도 바다 밑에서 공식으로 탐사 작업이 시작된 것은 6년 전인 1995년부터였다.


최초 탐사자는 '일제 쇠말뚝 뽑기 운동'을 펼치던 소윤하씨(57·사단법인 한배달 민족정기 선양위원장)다. 소씨는 죽도 바다밑 바위에 일제가 박은 쇠말뚝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1995년 진도군으로부터 정식으로 공유수면 점유·사용 허가를 얻어 바다 밑을 뒤졌다. 이 무렵 죽도 바다 밑에 보물이 있다는 제보가 소씨에게 전해지면서 그의 쇠말둑 제거 작업은 보물 탐사 작업으로 바뀌었다. 제보는 '일제가 패색이 짙어지자 길이 120cm 굵기 20cm인 포탄 탄피 25개에 약탈한 귀금속을 채워 넣은 뒤 죽도 바다밑 천연 수직 동굴 3개에 숨겼다'는 것이었다. 언론에는 진도 보물선 발굴 작업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진도 보물 동굴' 탐사 작업이라고 해야 옳다.


상당한 재산을 쏟아붓고도 뽀족한 결과를 얻지 못한 소씨는 1998년 수중탐사 전문가 오세천씨(33)를 만나자 다시 힘을 얻었다. 부동산 투자로 번 돈을 해저 유물 탐사에 탕진하며 매장물을 찾아다니던 오씨가 전폭적인 투자와 공동 작업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소씨와 오씨는 5년 가까이 잠수부를 동원해 정밀 탐사한 끝에 죽도 바다 밑에서 수심 10m로 추정되는 수직 동굴 형태의 구덩이를 발견했다. 아울러 근처에서 검은색 녹물과 함께 해저에서는 볼 수 없는, 동굴을 밀봉한 물질로 추정되는 황토와 백회 성분을 채취했다. 소씨와 오씨는 흥분했지만 탐사를 계속할 재원이 바닥 난 상태였다. 오씨도 이미 죽도 탐사에 5억원을 쏟아붓는 등 12억원을 날린 뒤였다.


소윤하씨가 지쳐서 포기한 뒤 오세천씨가 다시 발굴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발견된 녹물과 백회 등 '증거물'들을 들고 백방으로 투자자를 찾았다. 국정원이 죽도 앞바다 보물 탐사와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고 탐문 조사에 나선 것이 이 때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작고한 엄익준 1차장 시절에 국정원이 현장 탐사를 했지만 보물 매장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 내리고 그만뒀다. 그 뒤 민간업자들이 달려들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원측은 국정원이 어떻게 이 보물 탐사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국정원까지 현장 탐사를 시도했으나 신빙성이 떨어져 뒷전으로 밀린 진도 앞바다 보물 발굴은 이용호씨가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만나면서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오세천씨는 이에 대해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최 아무개씨의 소개로 지난해 6월 이형택 전무를 만났는데, 이전무가 나에게 이용호씨를 투자자로 천거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오씨는 이전무를 통해 지난해 11월 이용호 삼애인더스 회장을 만났고, 결과적으로 이용호 주가 조작 사업의 제물이 되었다는 해명이다.


"이형택 전무가 이용호씨를 투자자로 천거"


80조원이 넘는 국가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예금보험공사의 실세 간부였던 이형택 전무는, 지난 대선 때 당시 신한국당으로부터 'DJ 비자금 관리자'로 지목되어 구설에 올랐던 김대통령 큰처남의 아들이다. 이 때문에 지난 9월 열린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 이전무가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로 거론되자 그는 "보물선을 인양하는 사람들이 돈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은행 지점장 때 행원이던 허옥석씨가 이용호 회장을 잘 안다고 해서 인양업자를 이용호씨와 연결해 줬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용호씨와 이형택 전무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삼애인더스측이 예금보험공사를 매개로 금융산업 진출을 적극 시도했다는 근거가 될 서류를 입수했다. 삼애인더스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해저 유물 발굴 일정표 공개'라는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예금보험공사를 활용했다. '부실 리스 사 조흥캐피탈을 인수해 구조 조정을 실시하여 순이익 4백40억원을 실현했고, 보험산업 진출을 위해 쌍용화재 지분 20% 인수 및 대한 국제 리젠트 화재에 대한 인수 의향서를 예금보험공사에 제출한 상태이다'.


이형택 전무의 광주상고 후배이기도 한 허옥석씨는 서울경찰청 허남석 총경의 사촌동생이다. 그는 보물이 발견될 경우 지분의 10%를 받기로 이용호씨와 약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오세천씨는 "내가 이용호씨를 만날 때마다 허옥석씨가 항상 이씨 옆에 있었고,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물선 탐사를 계기로 이형택·이용호 씨 등과 만나면서 권력 실세들을 둘러싼 여러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죽도 해저 유물 발굴 작업은 무려 6년 남짓 복잡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유물이나 금괴가 있다고 확증할 어떤 증거도 없다. 그런데도 삼애인더스측은 지난해부터 오세천씨 등이 보물을 찾고 있는 열다섯 곳의 보물 매장 추정액을 단순 합산해 사업 가치가 20조원이라고 투자자들을 유혹해 왔다. 오세천씨에 따르면 특히 죽도에는 "다만 다량의 귀금속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죽도에서 보물이 나온다고 해도 그 액수는 10억원어치도 안 될 것이다. 절대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액수가 아니다. 삼애인더스는 투자자들이 항의할 것에 대비해 공유수면 점유·사용 허가 연장 신청을 다시 진도군에 낼 가능성이 크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가를 연장하려면 주민이 동의해야 하는데 예년과 달리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굴포 마을 주민은 이제 '보물이 있느냐 없느냐'는 외지인의 질문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을 정도로 무신경해졌다. 오히려 '예향 진도'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불만스런 분위기가 더 강하다.


한 30대 주민은 "일제 때 바위에 꽂은 쇠말뚝을 뽑는다고 8년 전부터 수심 6m 밖에 안되는 바다 밑을 뒤지더라. 이제는 보물 찾는다고 바다밑 바위에 쇠를 수백 개 박고 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굴포리 어촌계 관계자는 "보물이 나오든 안나오든 공사 허가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의 작업은 막을 참이다. 하필 공사 해역이 1종 어업구역이어서 주민이 지금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허무맹랑한 보물 소동은 가라앉지 않는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찰은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 전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정을 잘 모르는 투자자들이 현혹되는 것이다.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