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렀거라 '한 개비 귀신'
  • 김은남/안은주 기자 ()
  • 승인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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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쇼크’에 흡연자 속속 ‘투항’…담배 판매 급감, 사회 패러다임에도 큰 변화
술 많이 마시기로 소문 난 연예계. 이곳에서도 이주일씨는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그와 대적할 맞수는 가수 조용필씨뿐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는 두주불사형. 만취 상태로 남의 집에 들어가 다짜고짜 이불을 걷어치우는 바람에 잠들어 있던 그집 사람들을 혼비백산시킨 사건은 지금도 유명한 취중 일화로 남아 있다.


그런 그가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변에서는 아연했다. ‘술이라면 몰라도 담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술자리에서는 비록 줄담배를 피웠지만 평상시의 그는 ‘헤비 스모커’라 할 정도의 흡연가는 아니었다. 본인 또한 담배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듯했다. 발병 초기 이주일씨는 <신동아>(2002년 1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폐암이 담배와는 관계가 없는 종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치의는 단호했다. 의사는 이씨의 병이 흡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37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로부터 한 달 뒤. 몰라보게 초췌해진 모습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한 이씨는 이렇게 폭탄 선언을 했다. “국민 여러분, 담배 피우지 마세요. 담배 피우면 저처럼 됩니다.” “저도 건강이라면 자신 있었던 사람입니다. 1년 전에만 담배를 끊었어도….” 그의 발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이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수십 년 담배를 달고 산 사람도 한 번쯤 자기 행색을 돌아볼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진실함과 호소력이 담겨 있었다. 어떤 이들은 ‘코미디계의 황제’에서 ‘금연 전도사’로 변신한 그의 모습에서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율 브리너를 떠올리기도 했다. 한때 말보로 담배의 1급 광고 모델로 남성미를 과시했던 브리너는 1985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금연 광고에 출연해 “담배 피우지 마세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 피우지 마세요”라는 유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무대 위의 후광은 사라졌어도 스타의 힘은 위대했다. 이주일씨의 절친한 후배인 가수 조영남씨의 말마따나, 이씨의 발언은 대통령의 말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했다. 온 나라에는 때 아닌 금연 열풍이 휘몰아쳤다. 이름하여 ‘이주일 쇼크’라 할 만한 회오리였다.


이주일씨 발언 이후 금연 프로그램 ‘문전성시’


이씨가 발언한 이후 몇몇 기관과 병원이 개설한 금연 프로그램은 문전 성시를 이루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이은희 과장은 “연초에는 전통적으로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그 열기가 유다르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금연 사이트인 ‘금연나라’(nosmoking. hidoc.co.kr)에도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던 차에 이주일씨의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아 금연에 돌입하게 됐다”(donglin)는 식의 고백이 줄을 이었다.



이주일 쇼크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은 1월2일 시무식과 동시에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내의 모든 초·중·고교를 절대 금연 구역으로 지정해 학생은 물론 교사와 방문객까지도 일절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교육청이 이같은 조처를 처음 구상한 것은 지난해. 그러나 시행 시기를 놓고 교육청은 계속 골머리를 앓아 왔다.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교사들에게 흡연권까지 빼앗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주일 쇼크는 이같은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다. “전사회에 금연 분위기가 고조된 덕분에 강도 높은 금연 정책을 무리 없이 밀어붙일 수 있었다”라고 김홍섭 장학관(중등교육과)은 말했다.



물론 최근의 금연 열풍이 이주일 쇼크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흡연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사무실은 고사하고 ‘내 돈 내고 들어간’ 음식점·커피숍에서조차 흡연자들은 날이 갈수록 천덕꾸러기로 취급되고 있다. 요즘 들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의 경우 매장 전체를 아예 금연석으로 지정한 업소도 드물지 않다. 흡연석이 있다 해도 그 위치는 가장 외진 곳이거나 지하이기 일쑤이다.


뿐만 아니라 올 하반기부터는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금연종합대책에 따라 정부 청사·의료기관·학교 건물 등이 절대 금연 건물로 지정된다. PC방·만화방·실외 경기장(천 석 이상)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이런 데서 흡연하다 적발될 경우 과태료는 2만∼3만 원에서 1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2월부터는 담뱃값도 일률적으로 2백원씩 오른다. 피우자니 구차하고 돈 드는 일 투성이다.


“이제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


최근 나온 암 사망자 통계치도 충격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폐암 사망자는 ‘급기야’ 위암 사망자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2000년 현재 인구 10만명당 폐암 사망자는 24.4명 수준. 한국의 성인 흡연률에 미루어 이 수치는 조만간 70명 선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그러나 이런 산발적인 요인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흡연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2월29일 ‘반담배(안티-타바코) 운동’을 제창하며 설립된 시민단체 ‘금연나라시민연대’ 대표 박정환씨(47)는 “이제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잘라 말했다. 담배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중독성을 지닌 마약임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따라서 비흡연자 나아가 어린이 및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금연운동을 소극적인 캠페인 방식에서 공격적·전투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단체의 주장이다.


이는 전세계적인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담배가 한 해 동안 죽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2003년까지 국제적인 담배규제협약을 체결해 더 공격적인 방식으로 담배의 폐해를 근절하려 하고 있다. 이 기구에 따르면, 흡연 관련 질환으로 죽는 사람은 해마다 3백50만명에 달하며, 이는 전체 사망자의 약 7%에 해당한다.


기업들도 이제는 사활을 걸고 금연에 나서고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금연이 전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른 핵심 요인은, 이것이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연 2백일을 갓 넘겼다는 윤성효씨(경기도 성남)에 따르면, 금연은 단순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 행위가 아니다. 나의 ‘몸’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나를 돌아보는 것. 그럼으로써 나의 몸과 삶을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금연이다.


근본적인 세계관이 달라지다 보니, 흡연론자와 비흡연론자의 갈등은 점점 종교 전쟁의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 애초부터 독실했거나 개종한 신도(비흡연자)와 이교도(흡연자) 사이에 타협점은 없다. 이들 이교도는 ‘개인의 기호를 존중할 줄 모르는 원리주의자’들이라며 금연 신도들을 타박한다.

흡연자·비흡연자 갈등 ‘종교 전쟁’ 방불


실제로 금연 신도들의 행태는 어떤 면에서 초창기 기독교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이들은 금연 세례를 받은 뒤 ‘새 삶’이 열렸다며 가는 곳마다 복음을 간증한다(금연 사이트인 ‘금연나라’에 가면 금연 1년째를 맞아 새로운 탄생을 기념하며 미역국을 먹었다는 회원도 있다).


주변의 이교도는 이들에게 포교의 대상이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주변 사람을 최소 5명 이상 동지로 끌어들이는 특성을 보인다”라는 것이 천은미 교수(삼성서울병원 금연클리닉)의 지적이다. 이들은 ‘딱 한 대인데 어때’라는 ‘한 개비 귀신’의 유혹을 마귀의 속삭임인 양 질색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평생 이같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순례자들이 헤어질 때 ‘샬롬’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듯 이들은 ‘즐금’(즐거운 금연)하며 서로의 정신 무장을 재확인한다.


중요한 것은, 한 사회의 흡연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이들의 존재가 필수라는 사실이다. 금연나라시민연대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전용배씨(40·한국소리마치 부장)는 “비흡연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사회를 바꿔 나갈 수밖에 없다. 사회가 흡연 천국으로 남아 있는 한 이들은 언제라도 마약(담배) 앞에 굴복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비흡연자의 권리 운동이 시작된 1970년대 초반부터 흡연률이 급격하게 하락했다는 것이 국립암센터 윤영호 교수의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연 전도사’를 자처한 이주일씨는 상징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질풍노도처럼 번져가고 있는 한국의 반담배 운동은 그를 촉매 삼아 발화한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주일 쇼크 이후 단기간이나마 담배 판매율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월 1∼5일 국산 담배 판매량은 지난 12월27∼31일에 비해 17%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담배인삼공사 노동조합이 한국통신의 금연운동에 제동을 걸고 나온 촌극은 이에 따른 담배 생산자의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담배인삼공사 노조는,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한국통신 제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벌일 가능성을 시사한 적은 결코 없다고 부인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금연운동에 의기소침해 있던 차에 한국통신이 노사 합의로 금연 펀드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민영화 반대를 함께 외쳐온 공기업 노동자로서 약간 섭섭함은 느꼈다”라는 것이 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물론 이주일 쇼크가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그간의 통계를 거울 삼아 예측하자면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꼴일 것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담배, 돈을 피워라>의 저자 타라 파커포프(<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의 말마따나, 담배 소비자는 세상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배와의 밀월’이 끝났음을 선언한 것만으로도 2002년 한국 사회는 새로운 진화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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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떨이 치우니 생산성도 ‘쑥쑥’



도시철도공사 신내차량사업소는 새해 첫날부터 사업장을 절대 금연 건물로 지정했다. 3조 2교대 격무의 스트레스를 담배로 푸는 직원들에게 금연은 가혹할 수도 있는 주문. 실제로 5년 전 금연운동을 벌였던 다른 사업소는 단 1명도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진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신내영업소 직원 40명 명은 자진해서 금연 서약서를 썼다. 박창병 소장은 “안팎의 금연 바람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라며, 올해 안에 직장 내 흡연률을 66%에서 30%까지 떨어뜨리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올해를 금연운동의 원년으로 선포한 동원F&B(사장 박인구)는 새해 들어 사옥 내 담배 자판기와 재떨이를 모두 철거하면서 직원들에게 금연 패치 등 금연 보조품을 나누어주었다. 선앳푸드(사장 남수정)는 금연을 넘어 금주(禁酒) 운동까지 동시에 선포했다. 한국통신(사장 이상철)은 여기에 ‘당근’까지 내걸었다. 금연 희망자 1인당 30만원(자비 10만원+회사 지원금 20만원)씩 출연해,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한 직원에게는 이를 나누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들 기업에 금연은 더 이상 건강의 문제가 아닌 생산성 문제이다. 이들은 흡연을 위해 들락거리느라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흡연 질환자 및 간접 흡연에 따른 피해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데 따른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도 금연운동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1999년부터 강력히 금연운동을 전개한 (주)삼성코닝 수원사업장은 2년 사이 질병이 있는 직원의 비율을 5.6%에서 5.2%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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