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물갈이 인사 단행한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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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 인터뷰/“강북 개발해야 강남 집값 폭등도 해결”


이명박 시장은 취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간 눌러왔다는 억울함을 <시사저널>에 작심하고 털어놓았다. 당초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훨씬 넘긴 이시장은 오찬을 함께하려고 대기하던 손님들도 물리친 채 기자에게 두 시간 가까이 열변을 토했다. 사사건건 서울시 정책의 발목을 잡는 언론과 정치권이 야속하다고 했다. 도표까지 직접 그려 가며 ‘잘못 알려진’ 강북 뉴타운 건설 정책을 설명하는 이시장에게서는 왕년의 건설 현장 CEO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욕 먹을 각오로 서울시를 변화시키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이시장을 누구라도 말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강북 뉴타운 건설 등 각종 개발 사업 발표를 계기로 ‘불도저 시장’ 때문에 서울이 온통 공사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를 불도저 식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가 좀 있다. 최근 시정 4개년 계획으로 발표한 ‘비전 서울2006’ 공약 사업 20개는 내 임기 중에 끝낸다는 것이 아니라 10개년 계획이다. 또 강북을 1970년대 식으로 개발하려고 한다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하려는 것은 ‘그동안 잘못된 마구잡이식 강북 재개발을 친환경적 도시 구조로 되돌리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치권에서 강북 뉴타운 세 곳을 지정한 것을 대선용이라고 비난하는 것에도 실망이 크다.



최근 한나라당 행사에 참석해 ‘대선에서 두 배 이상 득표차로 이겨야 한다’는 요지로 발언해 스스로 관권 개입 시비를 불러일으켰다고 보지 않나?



당원인 내가 정당 행사에 참석해 농담으로 한 말이 크게 불거졌다. 서울시장으로서 시민의 행사에 가서 그런 말을 했다면 절대 안될 일이다. 당원들만 모인 당사 안에서 웃자고 ‘밖에 나가서는 이런 얘기 하면 안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조크한 건데 오해를 부른 것 같다. 서울시 행사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강북에 왜 뉴타운을 건설하기로 했는가?



젊은 시절 달동네에 살면서 2년 동안 여덟 번이나 이사를 다녀봤다. 시장 취임 후 내가 옛날에 살던 동대문 달동네에 가보니 옛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민은 지난 20여 년간 재개발 공약이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며 나도 못 믿겠다는 분위기였다. 기반 시설이 갖춰진 강남 지역과 달리 강북 달동네는 구릉지의 국유 토지 위에 무허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뭔가 정부 지원 없이는 재개발이 불가능하다. 주민에게만 맡겨 토지 공동 불하 방식으로 재건축하라고 하면 절차 하나 거치는 데도 몇 년씩 허비하게 된다. 그래서 서울시가 직접 나서서 강남북 균형 발전을 위한 특수 조처로 강북 지역 달동네 국유지를 주민에게 50~100년씩 임대하는 방식으로 뉴타운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겨우 서울 집값을 잡아가고 있는데, 서울시의 강북 뉴타운 발표로 다시 토지 주택 가격이 들썩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남 집값 폭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강북 뉴타운은 필요하다. 정부는 자꾸 강남 지역에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재건축을 못하게 억제해 투기를 막으려고 하지만 강남 수요가 있는 한 언젠가 또 터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강남 문제는 강남 자체만 손대서는 해결할 수 없고 강북이 환경친화적으로 개발됨으로써 강남으로 몰리는 수요를 줄여야 되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시가 빚더미 위에 있는데 뉴타운 건설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것인가?



뉴타운 세 곳을 건설하는 데는 앞으로 8년 동안 토지 보상과 공사비로 총 2조6천여억원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서울시 예산으로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것인 줄 알지만 실은 도시개발공사 돈을 투입할 계획이다. 뉴타운 개발 지역 세 곳은 각각 3개의 공구로 나뉘어 있다. 언론은 하나씩 순차적으로 뉴타운을 건설하는 것으로 보도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각 타운마다 1공구씩 동시에 공사를 시작하고, 2공구, 3공구도 보조를 맞춰 진행할 것이다. 세 타운에서 각각 1개 공구 공사가 끝나면 그 분양금을 회수해 순차적으로 나머지 공구 건설에 투자하므로 재원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해야 개발에 들어간 공구 주민도 이웃 공구로 이사해 큰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강북 뉴타운 외에도 이번에 발표한 20개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약 15조원이 필요하다. 서울시를 빚더미에 올려놓겠다는 것인가?




서울시의 5년간 예산이 48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는데, 그 중 20조원은 법정 경직성 예산으로 나가고 나머지 28조원이 각종 사업을 벌이는 통상 예산이다. 15조원은 바로 그 통상 예산 안에 들어 있으므로 따로 재원 마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울 시민이 이런 각종 개발 정책으로 서울시 빚만 잔뜩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할까 봐 현행 지하철 부채 5조원을 내 임기 말까지 2조5천억원으로 줄여놓겠다고 발표했다. 15조원 중에는 빚 갚는 돈까지 포함되어 있다. 내가 앞으로 신경쓸 일은 각종 공사비를 얼마나 절감하느냐이다.



각종 개발 공약도 좋지만 충분한 시민 여론 수렴 절차 없이 시장 독단으로 추진하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텐데….



청계천 복원 사업은 시민위가 꾸려져 이미 수차례 공청회를 거쳤다. 다만 강북 뉴타운은 사업 성격상 공청회를 할 수 없었다. 여론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면 지역을 결정하기 전에 땅값이 올라 투기판이 되었을 것이다. 과거 공직자들이 장난질한 것도 바로 그런 방식이었다. 정직하게 한다고 절차를 밟으면 브로커가 끼어들어 검은 뒷거래 의혹이 생긴다. 그래서 지역 결정과 동시에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발표했다.



전임 고 건 시장 때 어렵게 서초구 원지동에 납골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는데 시중에는 이시장이 취소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잘못 알려진 것이다. 원지동 납골당은 내년 봄쯤 땅 매입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동안 서울시가 계획만 확정했을 뿐 땅도 매입해두지 않았고, 주민이 서울시를 상대로 취소 청구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여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올 연말쯤 소송이 끝나는 대로 서초구와 협의를 거치면 내년 상반기에는 납골당을 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고 건 시장 때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마련한 정책들을 이시장이 인기를 노려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비판이 있다.



나는 상암동 DMC사업은 전임 시장이 성공한 사업이라 평가하고 있고,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킬 계획이다. 뒤집었다는 것은 서초동 정보사터 공원화 사업과 뚝섬 공원화 사업을 말한다. 국방부장관과 전임 시장이 정보사터에 아파트를 짓기로 합의했는데 나는 취소하고 공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우면산 터널이 뚫려 고속도로와 연결되면 서초구는 교통지옥이 될 게 뻔한 데다 내년에는 LG와 현대 주상복합 타운이 입주한다. 여기에 정보사 땅마저 건설사에 분양하면 평당 3천만원은 웃돌 것이고 그곳에는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선다. 비록 전임 시장의 정책이라지만 내가 정보사터를 건설사에 불하해 아파트를 짓게 하면 그야말로 1970년대식 불도저 시장이 되는 것이다. 서초동 정보사터에 아파트를 지으면 강남북 균형을 위한 뉴타운 건설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뚝섬 문화관광단지 사업은 왜 공원으로 바꿨는가?



강북의 서부와 동부를 비교하니 서부는 여의도공원 및 상암동 하늘공원 같은 대규모 시민 휴식 공간이 있는데 동부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뚝섬에 고층 빌딩을 지어 개발하는 것보다 서울 동부 주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대규모 가족공원을 조성해야겠다고 판단해서 녹지로 보존키로 했다. 전임 시장이 거기다 녹지를 만든다는 것을 내가 초고층 복합건물을 짓기로 바꿨다면 몰라도 이 문제는 이해 좀 해달라.



머지 않아 서울 시청 조직을 민간 회사처럼 대폭 바꿀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데….



시장에 취임해 보니 서울시 공무원의 맨파워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통 관료 세계에 젖어 있어서인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임 민선 시장들도 관료 출신 아니었는가. 주변에서는 내게 서서히 변화시켜 가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 없다. 굳어져 있는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서서히란 말은 안 통한다. 일정한 충격은 불가피하다. 굳어진 것을 망치로 때려서 깨놓고 고치겠다는 거다. 역대 어느 시장 인사보다 대폭적인 물갈이를 단행할 계획이다. 대신 누구도 불평할 수 없을 만큼 공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불안하겠다. 공직 사회의 안정성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안정성까지 해칠 생각은 없다. 나는 과거 CEO 활동을 할 때 대부분 외국에 나가 그곳 공무원과 접촉해 보고 선진 공직 사회의 효율성과 공익성이 무엇인지 눈여겨보아 왔다. 서울시 공무원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안된다. 변화에는 희생이 따른다. 남의 희생을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두에서 나부터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서울시에 들어와 보니 일하는 시장은 딱 욕 먹게 되어 있다. 나부터 욕 먹을 각오로 서울시를 바꾸는 데 앞장설 생각이다. 일을 하다가 실수하는 것은 용납하겠지만 일을 사보타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외부 감사제도도 그런 관점으로 바꾸려고 한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소환했는데, 불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월 우리 당내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내 저서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참모 한사람이 책과 감사 편지를 여기저기 보낸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담당자가 이미 형을 선고받았기에 그 사건은 끝난 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장 당선 후 검찰에서 갑자기 소환해 서면 조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근래 와서 나에게는 아무 통보도 없이 나를 소환키로 했다고 언론에 흘렸다. 아무리 검찰에 대한 정치적 불신이 심한 상황이라 해도 이미 협력하기로 했는데 일방적으로 언론에 소환하겠다, 조사 없이 기소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검찰이 법집행을 하는지 언론 플레이로 정치 쇼를 하는지 실망이 매우 크다. 지금 검찰이 사람을 때려 죽이고, 할 일도 태산 같은데 이런 일로 언론 플레이를 해야 하느냐 생각하면 ‘아 이래서 국민이 검찰을 불신하는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처음에는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출근하다가 강북 혜화동 관사로 이사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당초 관사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다음 시장에게 결례가 될 것 같았다. 또 내가 강북 개발을 추진하면서 강남에 살고 있다는 것도 걸렸다. 어느 달동네 할머니가 어디 사느냐고 묻기에 ‘논현동 삽니다’라고 했더니 ‘그러면 이시장님도 강북의 어려움에 대한 관심이 적겠네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 충격받아 이사를 결심했다. 내 거주지부터 강북으로 옮겨야 균형 발전 의지를 다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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