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김치 패권’ 흔들린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r)
  • 승인 200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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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덕분에 김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중국에서 남북한 김치 전쟁이 발발했다. 수출 시장에서는 중국산이 한국과 일본을 공략하고 있다. 일본도 전쟁에 뛰어든 지 오래다. 한국의 ‘김치 수출 전선’에 이상이
미국에서는 지금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명 ‘김치 전쟁’. 참전국은 한국·중국·북한이다. 지난 수년간 이 전쟁은 휴전 중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의 소비량이 많지 않아 각국의 관심이 적었다. 이 전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였다. 지난 4월 말부터 (한국산) 김치가 사스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인들이 김치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첫 ‘도발’을 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베이징농업무역관은 지난 6월2∼3일 중국의 당·정 고위 인사 1천8백명에게 흰 봉지에 든 ‘선물’을 돌렸다. 봉지 안에는 동원F&B가 생산한 ‘양반 김치’ 세트와 함께 설문지가 들어 있었다. 며칠 뒤에 반송된 설문지에 적힌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기름기가 있는 중국 음식과 잘 어울렸다.’ ‘흰 쌀밥과 먹을 때 더 맛있었다.’ ‘푸른 잎사귀가 섞여 있어 청량감도 있고 맛깔스러웠다.’ 더러 ‘신맛이 조금 강했다’ ‘김치 재료가 뻣뻣했다’ 같은 냉랭한 반응도 있었지만, 염려할 정도의 지적은 아니었다. 한국산 김치 열풍을 확산시키기 위해 깜짝 쇼를 연출한 정연수 과장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고위층 대부분이 한국 김치를 이미 알고 있어 놀랐다”라고 말했다.

뒤늦게 ‘북한표 김치’가 공세에 나섰다. 베이징에 있는 북한 식당 해당화가 일부 한식 음식점과 호텔에 ‘평양통김치’를 납품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통김치는 수년 전 베이징 교외 창핑에 세워진 평양김치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화의 공세로 일부 중국인이 한국산 김치 하면 평양통김치를 떠올리자, 다른 한식당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문화일보> 최근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 총서기도 가끔 찾는 것으로 알려진 최고급 한식당 ‘수복성’이 맨 먼저 치고 나왔다. 당·정 요인들에게 자체 생산한 김치를 선물하며 자기네가 ‘한국산 김치 원조’라고 알리기 시작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국 김치 생산업체들도 전선에 뛰어들었다. 중국 시장을 선점한 동원F&B는 홍보전과 판촉 행사를 통해 판매량을 늘렸고, 내수 시장에 주력해온 하선정종합식품(하선정)은 중국 시장 진출을 서둘렀다. 하선정은 6월15일 사스를 퇴치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베이징 유안병원 의료진에게 김치 1t을 기증하면서 불붙은 ‘전선’에 뛰어들었다. 조준래 기획과장에 따르면, 하선정은 베이징 퉁저우(通州)에 2백만 달러를 투자해 하루 20t을 생산하는 김치공장을 짓고 있다. 그는 “공장이 가동하는 10월이면 한국의 김치 맛을 보는 중국인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한국은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치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중국이 소리 없이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산 김치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시장을 공략해 왔다. 그러나 1999년까지는 그 양이 한 해 10∼92t으로 미미했다. 그런데 2000년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태풍의 여파로 한국의 배추와 김치 값이 뛰자, 단숨에 4백67t을 수출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에서 들어온 김치가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한 김치 전문가는 “대형 급식소에서 국산 김치로 둔갑하기도 하고, 포장만 바뀌어 일본으로 재수출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2001년 들어 잠시 주춤거리던 중국산 김치 공세는 2002년 들어 다시 거세졌다. 역시 한국을 뒤흔든 태풍 때문이었다. 그 해 한국에 들어온 중국산 김치는 1천42t(46만8천 달러어치). 그 기세는 올해에도 여전하다. 지난 1∼5월에 이미 7천9백67t(3백46만 달러어치)가 한국 시장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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