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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북 사업 주인은 국민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국민이 금강산 관광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남북 경협을 한 차원 높이자는 것이다. 현대아산 국민기업화 등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

남문희 기자 ㅣ bulgotsisapress.comr | 승인 2003.08.12(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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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없는 남북 경제협력은 가능할까. 십수년 넘게 북한을 오가며 대북 사업을 추진해온 그가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커보인다. “살아 있을 때 좀 도와주지”라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의 원망처럼 고인이 단기필마로 동분서주할 때는 그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난 8월4일 새벽,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알려진 이후 정치권과 재계는 물론 남북 교류와 화해를 염원해온 국민은 ‘정몽헌 후폭풍’을 맞고 있다. 7월 하순, 정회장이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남북경협, 특히 금강산 관광사업은 ‘시든 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졌다.

후폭풍은 충격과 의혹을 거쳐 ‘정몽헌 없는 남북 경협’의 미래 쪽으로 흐름이 잡혀가고 있다. 정부 당국·언론·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딱히 잡히는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정회장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불씨일 뿐이지만, 정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시각과 방법을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 일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발상의 요체는 바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그 주인인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다. 망국적인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금강산 사업을 떼어내 국민으로 하여금 직접 가꾸고 지켜가게 하자는 논의이다.

지난 8월10일 민주당 일부 의원이 그 첫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신계륜·이종석 의원과 이인영·우상호 위원장 등 당내 소장파가 이 날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현대아산의 금강산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당국과 가장 긴밀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현대아산이 추진하는 경협사업의 계속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현대아산의 경협사업 지원을 위해 국민 100만명이 참여하는 1인 10주 갖기 운동을 전개해 가겠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범국민 금강산 관광 참여운동 △남북교류협력기금 조속 집행 △남북경협 발전을 위한 기금 모금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연대한 범국민운동 추진 등을 제안했다. 그동안 개인 기업 차원에 머물렀던 현대아산을 국민기업화하여 국민의 힘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시사저널>이 전문가들을 상대로 취재해 얻은 결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운동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승화시키자는 아이디어는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박사가 처음 꺼냈다. 그는 정회장 사망 이후 거론되던 여러 가지 방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금강산 관광은 사실 한 개인이나 기업이 떠맡아야 할 일이 아니다. 과거 이북 5도민이 서로 합심해서 동화은행을 만든 적이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발상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박사가 제시한 국민기업화란 기존 현대아산 주식의 10∼20%를 국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금강산 관광사업의 의미를 정확히 알릴 수가 있고,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심체를 만들 수 있다. 현대아산이 현대가(家)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국민 참여 기업으로 성격 전환이 이루어짐으로써 외연을 확장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형태라면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민간 기업들도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범국민운동의 일환이라면 기업들이 더 뚜렷한 명분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다. 개인(국민)과 민간 기업·공기업·현대아산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며 통일 시대를 준비해 가는 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가 정몽헌 회장의 빈자리를 메울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에 답답해 하고 있었다. 국민의 힘을 빌리자는 아이디어는 그래서 쉽게 전파되었다. 단순한 불씨가 아니었다. 북한 당국의 발상이나 행동 방식에 누구보다도 정통한 인물로 평가받는 북한 전문가 김남식씨는 정회장이 급서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일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정회장이 남북 관계에서 맡았던 역할은 다른 누군가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회장이 선친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김일성 주석의 1989년 합의와 유지를 이어받은 적자의 자격을 가지고 움직여 왔다는 점 때문이다. 북한의 생리를 감안할 때 정몽구 또는 정몽준 회장이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두 형제는 진작부터 그럴 뜻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이 주장하듯 사업 주도권을 공기업으로 넘기자고 할 경우 북한은 기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육로 관광 등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협상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남식씨는 “지금으로서는 정회장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국민뿐이다. 현대아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국민이 뒷받침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다”라고 말했다.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인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역시 안타까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태까지 제시되었던 여러 가지 해법, 즉 △공기업(관광공사)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인수하는 방법 △현대+공기업이 공동사업자로서 하는 방법 △현대가 혼자 하면서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법 △다른 민간 기업이 인수하는 방법 등을 다 검토해 보았지만 모두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마저도 현대아산이 자비를 들여야 했다. 가령 장전항 부두 공사와 관광 도로 공사에 약 1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이런 막대한 SOC 비용 지출이 현대아산의 자본금이 잠식된 주요 원인이었다. 현대아산 전직 고위 간부는 “2000년 베를린 선언에서 당시 정부는 북한의 SOC 지원을 약속했다. 현대아산이 담당한 SOC 비용만 정부가 돌려줘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여하튼 지금처럼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의 대치 구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남북 경협은 조금도 진전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정부에서 대북 경협에 관여했던 고위 관계자 역시 대북 사업의 차원 이동이 절실한 국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정쟁에 휘말려 반신불수가 돼온 대북 사업을 이제는 정치로부터 떼어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못한 일을 현대가 해왔는데 이제는 현대가 하기 힘든 사업을 국민이 맡아야 할 때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을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한때 민화협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현대아산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더 진전이 없었다. 조성우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성격 등을 감안할 때 그 실행 주체를 더 공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운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민화협이 앞장설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아산은 그동안 대북 사업을 무리하게 독점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겉으로는 여러 기업의 참여를 권유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현대아산 내부에서도 문호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그동안이 모두 가지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모두 뺏기지는 말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기업화가 현대아산의 기득권을 뺏는 것이 아닌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운동을 통한 금강산 관광 지키기 또는 현대아산의 국민기업화 움직임은 최근의 국민 정서 흐름에도 맞고 6자 회담을 앞둔 한반도 상황, 그리고 대북 협상에서도 강점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부 박석삼 조사역은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국민이 매우 허탈해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무기력증도 느껴진다. 금강산 관광사업 캠페인은 국민에게 참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경제비서관 시절 정회장과 여러 차례 접촉한 이인석 인천발전연구원장은 정회장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동안 혼자서 너무 힘들었다. 이제 다같이 하자 △대북 사업에서 정치는 손을 떼라 △화해를 원한다면 남북한 모두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반도 정세가 6자 회담 등으로 인해 외세에 의한 원심력이 강화되는 시점에 돌입했다고 지적하면서, 남북 모두 서로를 끌어당기기 위한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성욱 교수(고려대·북한학)는 “남쪽도 노력해야 하지만 북쪽도 해야 할 일이 많다”라고 주장했다. 관광대금 9억4천만 달러 중 나머지를 탕감한다든지, 육로 관광 정착, 관광 지역 확대, 볼거리 다양화 등 사업 주체로서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연구교수는 “정회장의 죽음은 한 민족기업인의 죽음이자 의인의 죽음이다. 그것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조명철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선 공기업이 전담하거나 정부가 재정을 지원할 경우 곧바로 야당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즉 국민의 동의 없이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민간 기업이 뛰어들 리도 만무하다. 그의 결론 역시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민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국민에게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여론조사를 통해 선택하게 해야 한다. 국민의 70∼80%가 반대한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면 강력하게 밀고 나아가야 한다”라는 것이다.

지난 8월8일 정세현 통일부장관과 민주당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당·정 협의에서 ‘현재로서는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계속 담당해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정부·여당은 야당의 협조를 얻어 관광보조비 2백억원을 조속히 지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아산이 약 4천억원에 이르는 자본금까지 전부 까먹은 상황에서 남북경협기금에서 지원되는 관광보조비 2백억원은 생명줄과 다름없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은 북한 핵 문제를 빌미로 국회 결의를 통해 이를 중단시켜 버렸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이를 풀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회장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도 한때 동정론이 이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쩐 일인지 더욱 뻣뻣해졌다. 지난 8월10일 KBS <일요 정책 진단>에 출연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2백억원 관광보조금 지원은 고사하고 관광공사 등 공사가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김정일 세습 독재 체제의 변화나 북한 주민의 인권, 삶의 질 등에서 자유민주주의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한, 대북 경협은 민간 기업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부나 여야 모두 정몽헌 회장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시사저널> 홈페이지 설문 조사 결과 인용). 정부가 그동안 금과옥조로 내세워 온 정경분리 원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민간 기업이 죽든 말든 정부는 뒷전에 서 있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부가 늘상 얘기해왔듯 남북 경협이 민족 화해를 위한 사업이라면 ‘민간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맡겨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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