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계적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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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적인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해석이 아닌 실천이 중요”
문학 비평을 그만두었다는 것보다 새로운 정치 사회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0년 동안 문학과 더불어 살아온 일본의 저명한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해 문학의 죽음을 선언한 뒤 비평 활동을 중단했다. 애초 이번 포럼에 참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면서 거절했던 그는 정치 경제학 노트나 다름없는 발제문을 들고 나타났다.

그의 발제문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는 마르크스와 칸트를 넘나들면서 비판 정신의 중요성을 더듬고 있다. 이어 현실을 변화시키는 방안으로 총파업과 같은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다양한 대안을 제안했다. 갑자기 왜 정치 경제학인가? 그리고 왜 보이콧과 같은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는 소비자 운동인가? 개량주의라는 딱지가 아니더라도, 이론적으로 새로운 것이 없다는 품평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맞다. 이론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관심을 돌린 이 때 내가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작업이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제문에는 정황이 더 명확히 드러나 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자본론>을 비롯해 마르크스의 저작에 몰두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기를 꺼리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서 비로소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칭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로 ‘마침내 그를 파악하고 그의 체계에 동의해서라기보다는 확고한 태도를 취해야 할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르크스주의 시조로서보다는 비판적 지성으로서의 마르크스에 관심이 있었다’는 그의 태도는 1960년대 이래로 일관되어 보인다.

이번에 고진이 발표한 글은 내년쯤 출간될 <트랜스크리틱>이라는 저서의 초록에 해당하는데, 이 책이 출간되면 적지 않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그의 저작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 번역되었을 때에도 작은 소란이 있었다. 경제학자 정운영은 “현기증 나는 유식과 구제 불능의 무식에 대해 찬탄을 금할 수 없다. 학생의 리포트라면 F학점감이지만, 사계의 권위자 말씀이니 나로서는 채점을 보류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극언을 했고, 일본 문학 전문가 박유하씨는 고진을 옹호하고 나섰었다.

한국 문단의 에너지 이채로워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평론가 가운데서도 한국 문단과 교류가 활발한 축에 속한다. 그의 눈에 한국 문학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그는 문학의 장래에 대해 위기감이 심해진 것과 위기를 지적하는 한국 문단의 목소리에 1980년대와 같은 에너지가 실려 있어 이채롭다고 말했다. 자신이 일본에서 문학의 위기를 주장할 때 아무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비웃음을 당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과 같은 ‘팔리는 문학’이 있다고 해서 문학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그는, 문학의 주체성은 주관성을 드러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오히려 문학의 죽음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의 죽음을 논하는 것보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데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문학을 버렸다는 말은 수사이고, 과장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문학적인 사람이다. 문학이 나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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