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나타난 개고기 역사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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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주의법, 조선시대 문헌에 처음 등장
‘복날 개 패듯 한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개장국은 삼계탕과 함께 여름의 대표적인 보양식이었다.

전통 문헌에는 조리법과 주의법이 상세히 나와 있다. 개장에 관한 기록은 조선 순조 때 발간된 <동국세시기>로 거슬러올라간다(‘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개장이라고 한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개장에 고춧가루를 넣고 밥을 말아서 시절 음식으로 먹었다. 그래서 시장에서도 많이 판다’). <사기>에도 복날 풍습에 대한 기록이 있다.‘태덕공 2년에 초복 제사를 지내는데, 성안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

기원전 300년의 중국 문헌인 <주례>는 개고깃국이 중국의 여름 제사 음식이었음을 밝힌다. 특히 여름에 개고기를 먹는 것을 음양오행 원리에 따라 해석해 눈길을 끈다. 오행에서 개는 금(金) 기운을 상징한다. 여름에는 화(火)가 승하며, 특히 복날에는 금이 쇠한다고 되어 있다. 금 기운의 쇠퇴를 막기 위해 금에 해당하는 개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황구(黃狗)를 최고로 친 것은, 노란 색이 금(金) 기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면 조리법에 대한 기록도 심심치 않다. 빙허각 이씨의 산문인 <규합총서>는 ‘(개를) 외상이 나게 잔인하게 죽이면 맛이 없다. 숨을 쉬지 못하게 잡아야 한다. 살코기를 물로 씻으면 맛이 없어지고, 손으로 찢어야 제 맛이 난다’고 기록했다. 고기를 삶을 때도 여느 나무가 아니라 짚단을 때서 쪄야 한다고 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은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고기를 권했으며,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는 출가한 딸이 친정 나들이를 할 때 개고기를 가져가는 풍습을 기록했다(‘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갈 제, 개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금기도 많았다. 개날 개를 먹어서는 안되고, 개의 모양을 가려서 먹어야 한다. <산림경제>는‘비록 짐승이나 능히 주인을 사랑하는 알음이 있으니, 집에서 기른 것은 가급적 잡지 말라’고 권고했다.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저자 주강현씨는 여러 문헌을 통해 개장국이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음을 밝힌다. 하지만 개를 먹는 풍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생활상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씨는 “온갖 야채와 매운 양념으로 조리한 개장은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더위를 이기려는 지혜에서 나온 것이지 요즘처럼 정력을 탐하기 위한 음식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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