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만들어 재난 관리 권한 주자
  • 宋 俊 기자 ()
  • 승인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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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서 ‘청’으로 격상시켜 선진 시스템 마련해야… “민방위 조직 체계 뒤엎어야 한다”
전문가 사이에 ‘우리도 소방청을 재난 관리 시스템의 중추로 삼자’는 견해가 지지를 얻고 있다. 현재의 소방국을 청으로 격상시켜 선진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묘한 것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임을 반증한다.

어떤 교수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오히려 재난 관리 시스템을 크게 퇴보시켰다”라고 개탄했다. 삼풍 사건은 흔히 119구조대를 국민에게 널리 알린 ‘공신’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무엇을 퇴보시켰다는 말인가. “정부가 국민 정서 달래기에 급급해서 전전 긍긍하다가, 끝내는 죽도 밥도 아닌 체계를 낳고 말았다. 일만 더 꼬였고, 모처럼의 기회를 날렸다.”

현행 제도가 엉망인 증거는, 소방 공무원을 (힘없는) 현장 근무자부터 감축한 정부의 최근 행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산불은 산림청, 홍수는 건설교통부’처럼 재난 관리 업무를 18개 부처로 분산했으며(그러고도 폭발·도괴·독극물 누출·폭설·해일 등은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 관련 법은 72개 개별 법이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한 연구원은 “현행 시스템은 현장 실무 따로, 큰소리 치는 역할 따로다. 그게 문제다. 재난 관리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실질 조직은 소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2백여 쪽짜리 방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소방청을 중심으로 방재 시스템을 새로 꾸리자는 주장에 대해 몇몇 탁상 행정가는 몸집을 불리려는 불순한 의도라며 수염을 부르르 떨지도 모른다.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약간의 개념 설명이 필요하다. ‘소방청 중심…’ 체제란, 소방청에 재난을 관리할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 방안이다.

최근에는 재난 관리를 ‘예방→대비→대응→복구’ 네 단계로 나누어 관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먼저 예방 단계부터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18개 부서가 각기 인허가 권한을 갖고 예방에 힘썼지만 성수대교·삼풍백화점 사고 등을 막지 못했다. “인허가 권한을 소방청에 넘기라는 것이 아니다. 예방을 위해 인허가 과정에 소방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 하나만 추가하자는 것이다”라고 한 연구소장은 말했다. 소방의 시각에서 가스·전기 등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비·대응이야말로 소방의 주특기에 해당하는 단계다. 정부의 <재난 연감>에 따르면, 해난 사고를 뺀 거의 모든 재난을 소방이 대응했다. 신고 전화도 119로 통합되는 추세다. 실제로도 소방이 가장 빠른 동원 태세를 자랑한다. 대비는 대응과 맞물린 개념이다. 대응 단계가 끝나면 복구는 다시 소관 부처로 돌아간다. 불 끄고 위험물을 다 해체한 다음, 복구는 시간을 두고 제대로 해야 하는 일이니 담당 부처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

장기적으로 보아도 소방청은 필요하다. 재난 관리 경험(노하우와 데이터)은 곧 방재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다. 우선 시급한 것이 소방연구소다. 소방학교에 부설된 현재의 소방연구실은 총 38명 가운데 연구 인원이 4명뿐이다. 소방학교도 대부분 강의에 의존해, 소방공학의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 및 실기·실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문제는 또 있다. 화재 원인을 밝히는 감식 기능을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점이다. 불의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소방이 여기서도 또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참에 소방국을 움켜쥔 민방위 조직을 소방청 산하로 뒤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국 규모인 방대한 민방위 조직의 인원과 예산의 ‘생산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전국적으로 인력을 동원하는 훈련에 경제적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엄청난 인건비를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방 전문 언론의 한 기자는 “민방위 같은 미숙련 인력을, 게다가 예비군까지 졸업한 노령 조직을 사고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바른 재난 대응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민방위 예산과 인력 일부만을 소방에 투자해도, 소방청 문제는 너끈히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의 경우 국민은 어느 쪽을 택할까? 사고 현장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민방위 대원의 손을 빌릴까, 119구조대의 도움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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