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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전관 예우’ 가고, 전문 변호사 뜬다

소송 분야 특화한 전문 변호사, 법조계에 새 바람…법률 서비스 개방·사법시험 정원 확대 등 따른 시대적 추세

기자 ㅣ | 승인 1999.03.0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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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종기 변호사 수임 비리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전문 변호사 제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흔히 전문 변호사라고 하면 대형 로펌(법률회사)을 떠올린다. 실제로 대형 로펌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사가 채용한 변호사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거나 외국 로펌에 연수시켜 전문 변호사를 양성하고, 법원의 특별(전문) 재판부 설치를 자극하는 등 법조 전문화에 앞장서 왔다. 법조 전문화는 이제 법조 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물론 생존 차원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2년 법률 서비스 개방, 사법시험 정원 확대, 법률 서비스 수요 다양화 등이 바로 법조 전문화를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시사저널〉은 법인(기업)을 고객으로 삼는 대형 로펌의 영역보다는 일반인이 일상 생활에서 부딪치는 영역과 ‘틈새 시장’을 중심으로 법조 전문화의 양상과 전문 변호사를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전관(前官)이 아니라 전변(專辯)이 대접받는 시대를 열자’는 것이 이 특집 기사의 취지이다. 〈편집자〉

올해 1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전현희 변호사(사시 38회)는 대형 로펌을 마다하고 의료 소송 전문인 최재천 변호사 사무실을 선택했다. 전변호사는 사시 정원을 5백명으로 확대한 후에 처음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연수원 28기생 중에서 유일한 의사 출신이다. 전변호사는 90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임상 치과의사로 근무하다가 94년에 ‘남편(부산지검 검사)이 보던 책’으로 사시 공부를 시작해 2년 만에 합격했다. 전변호사는 연수원 시절부터 로펌 몇 군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고사하고 최변호사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 다음은 전변호사의 말이다.

대형 로펌들이 전문화 주도

“같은 전문직이지만 의사에 비해 변호사는 아직 소수이다. 의사 중에는 나보다 더 실력 있고 좋은 분들이 많지만, 내가 의사 출신 변호사가 되면 더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시를 준비했다. 의료 소송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분야였고 또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런데 로펌이 아직 이 분야를 특화할 만큼 의료 소송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의료 소송을 전문으로 해온 최변호사와 일하기로 한 거다.”

처음부터 변호사의 길을 택한 전변호사의 경우와는 달리, 나이 든 법조인들은 현직(판검사)에서 물러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 흔히 ‘점방을 차렸다’고 말한다. 점방 주인이 되었다는 자기 비하의 뜻이 담겨 있으니 전관(前官) 예우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용어인 셈이다. 이처럼 개업한 변호사의 사무실이 주로 개인을 상대로 송무(訟務)를 파는 잡화점이라면, 로펌은 법인(기업)을 고객으로 자문(諮問)에 응하는 백화점에 비유할 수 있다. 이른바 전문 변호사는 백화점의 한 부문을 독립시킨 전문 상가나 잡화점의 한 분야를 특화한 전문점쯤으로 비유할 수 있다.법조계의 전문화는 대형 백화점(로펌)들이 주도해 왔다. 이를테면 김&장·태평양·세종·한미 같은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외국에서 특정 분야의 소송(법)을 전공하고 돌아오면 그 분야의 특별 소송 재판부가 법원에 설치되는 식으로 대형 로펌들은 사법 행정의 전문화를 선도해 왔다. 로펌 추수(追隨)형 사법 행정인 셈이다. 회사 정리 전담 재판부를 이끌어낸 김&장, 기업 합병·매수(M&A) 분야의 세종, 해상법 분야의 태평양 등 내로라 하는 전문 변호사들이 기업의 법정관리·화의 업무 및 국제 통상·금융·증권 분야와 조세·행정·특허 같은 특별 소송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같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판검사 임용 위주였던 사법연수원 풍토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수원 성적 10위 안에 드는 성적 우수자들이 전원 로펌을 지망함에 따라 ‘앞으로는 로펌에서 특별 소송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판사를 채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탄식이 법조계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전문화의 또 다른 흐름은 이른바 인권 변호사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 군사 독재·권위주의 정권에서 시국 사건 변론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온 이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깨짐에 따라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역할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더러는 남아서 그들이 옹호해야 할 인권의 영역을 넓히는 데 힘을 쏟고, 더러는 ‘점방’ 문을 닫거나, 합동법률사무소의 경우 순번을 타서 해외 유학·연수를 떠났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원인 이들은 거개가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나 ‘386 세대’ 변호사이다. 이를테면 국제 인권법을 공부하고 온 박원순(사시 22회·법무법인 나라)·조용환(사시 24회·법무법인 덕수)·박찬운(사시 26회·박찬운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노사 관계를 공부하고 온 김선수 변호사(사시 27회·법무법인 시민), 환경법을 전공한 오종한 변호사(사시 28회·세종), 주주 대표 소송 분야를 공부한 김주영 변호사(사시 28회) 등이다.

박원순 변호사는 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시민 단체(참여연대) 모델을 만들어 사무처장으로 상근하면서 시민운동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박변호사는 귀국한 후 오히려 점방문을 닫은 케이스. 참여연대에 소속 변호인단을 조직해 ‘작은 권리 찾기’ 같은 공익 소송 분야를 개척하느라 변호사 업무(송무)를 돌볼 틈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환·박찬운·김선수 변호사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우수한 연수원·사시 성적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택한 경우. 특히 김선수 변호사는 85년 사시에서 수석을 했지만 고 조영래 변호사가 이끈 시민합동법률사무소에 들어가 노동자 편에서 노동 분야 소송을 전담해 왔다. 조용환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관련 소송과 국제 인권법에 정통하고, 박찬운 변호사 또한 국제 인권법과 행형법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전공 찾기’ 더불어 법무법인 설립 붐 일어

‘전공 찾기’와 더불어 새롭게 나타난 변화는 법무법인 만들기이다. 특히 그동안 합동법률사무소나 단독 개업 형태로 사무실을 유지해 온 젊은 인권 변호사들이 90년대 중반부터는 법무법인을 다투어 설립했다. 합동사무소에서 법무법인으로 전환한 앞서의 덕수·시민 종합법률사무소와, 단독 개업 변호사들이 출자해 법인을 설립한 나라·한결 종합법률사무소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은 과도기이지만 김형태·이석태·김기중 변호사(덕수), 윤종현·김도형·김석연 변호사(시민), 백승헌·차병직·조광희 변호사(한결) 등은 각각의 전문성을 확보하거나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시국 사건을 맡아 온 변호사들의 연합체로서 이제 전문화를 모색하는 단계라고 말하지만, 법인·전문화가 시대적 추세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사시 최연소 합격 후 역시 최연소로 변호사 개업을 해 화제를 모았던 백승헌 변호사(사시 25회·한결)는 “법인화와 전문화는 상호 보완적 양상을 띤다”라고 진단한다. 변호사들이 법인에 모여 서로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지만,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역할 분담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윤종현 변호사(사시 24회·시민) 또한 전문 분야 개척에는 경쟁력 있는 로펌이 앞서갈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오랫동안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전문 분야를 개척한 단독 개업 변호사도 있지만 시대적 요구가 법인화를 통한 전문화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사무실 유지 비용을 절감하는 이익도 있지만 그것은 부수적 효과라는 것이다. 윤변호사는 “그러나 전문 변호사 영역은 아직 취약하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전문 변호사가 제도로서 정착되지는 않고 있다. 우선 전문 영역이 한정되어 있고 전문 분야의 법률 서비스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를 제외한 전문 영역은 그 분야 소송만 전문으로 맡다 보면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올해 연수원을 졸업한 이상혜 변호사(사시 38회·한결)는 행형 전문 변호사가 되기를 원한다. 선배인 백승헌 변호사 또한 후배들에게 늘 자기 전공을 가지라고 추천한다. 그렇지만 한국 실정에서 행형 전문 영역을 개척하려면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백변호사의 솔직한 판단이다. 아직은 전문화가 당장 살 길이라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미래를 준비해 투자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대한변협도 전문 변호사 인증 제도 적극 모색

그래서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갖추기와 차별화를 통한 ‘틈새 시장’ 파고들기는 변호사 업계가 당면한 21세기의 생존 전략으로 간주되고 있다. 2002년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에 따른 선진국 대형 로펌의 진출, 2000년까지 사시 합격 정원을 천명으로 확대하는 데 따른 경쟁의 격화, 사회 현상과 갈등의 다양화·복잡화에 따른 법률 서비스 수요의 전문화 같은 요인은 전문화를 요구하는 대세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사시 정원 확대는 연수원 시절부터 경쟁력 있는 전문화·차별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앞으로 변호사 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시 정원 확대로 말미암아 늘어난 비(非)법대생들의 변호사 진출도 일정 부분 전문화를 이끄는 요인이다. 올해 연수원 졸업자 중에서 의사 출신은 앞서의 전변호사가 유일하지만, 1·2년차 연수원생 중에는 의대(가정의학과·치의학과·간호학과)나 약대를 졸업한 의약 전공자들이 10명 넘게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의료 소송 분야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취업난과 사시 정원 확대로 서울대생의 절반이 고시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부작용이 크지만, 전문화에는 기여하는 셈이다.

그동안 사실상 무풍지대에 안주해 온 대한변호사협회도 변호사 직역(직업의 영역)에 대한 안팎의 도전과 시련을 맞아 직역 확대 방안의 하나로서 전문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김창국 대한변협 신임 회장(고시 13회·덕수)이 제안한 전문 변호사 인증 및 공시·추천 제도이다. 변협이 전문 변호사 인증 제도를 도입해 변호사들의 전문성 강화를 유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사법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잠재적인 법률 수요를 창출하는 효과를 거두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변호사 전문성 강화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변협 신임 회장이 구체적인 제안을 밝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전문 변호사 인증 제도란 변호사의 전문 영역을 세분화하고 그 영역에서 전문성을 어느 수준까지 획득한 변호사들을 변협이 인증하고 공시하자는 것이다. 또 변협이 전문 분야 별로 변호사를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해 그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화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기업·정부기관 등으로부터 의뢰가 올 경우 적임자를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창국 회장은 “앞으로 전문 영역 선정, 인증 기구, 인증 방법, 공시 방안 등에 대한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일단은 일정 분야의 전문성을 변협이 공적으로 인정하는 디플로마(수료증)를 도입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즉 변협이 몇몇 법과대학원이나 특수 대학원과 연계해 전문 과정을 개설하고 거기에서 학위나 학점을 이수한 법조인에게는 변협의 이름으로 전문성을 인증하고 이를 공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전문 변호사 인증 제도는 변호사 안내 제도(책자)와 더불어 법조 브로커 근절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 브로커 비리의 상당 부분이 변호사에 대한 정보 부족에서 생기는 것임을 감안하면 변호사에 대한 상세한 신상 정보와 전문 분야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브로커 비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이다(30쪽 〈시사저널〉 인터뷰 참조). 실제로 전문 영역의 한계와 공정한 인증의 어려움을 들어 현실성 있는 인증 제도를 도입하기 어렵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변호사들도, 특정 분야의 사건 및 수임 의뢰를 변협이 소개하는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전관 예우 관행·법원 보수성 등 장애물 많아

그러나 전문 변호사 제도가 정착하려면 인증 제도말고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우선 법조계의 뿌리 깊은 전관 예우 관행과, 실력보다 ‘연줄’을 중시하는 국민 의식이다. 예우라기보다는 특혜에 가까운 법조계의 잘못된 풍토도 문제이지만, 변호사의 경력과 실력을 따지기보다는 로비력에 기대는 비뚤어진 인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행 사법시험 제도와 획일화한 연수원 교육 시스템도 전문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연수원 교육 제도가 학기제로 바뀌고 전공 분야도 크게(10개 분야) 늘었지만 여전히 판검사(특히 판사) 임용 교육 중심이고, 내실 있는 전문화에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법원의 보수성과 언론 보도의 획일성도 전문화의 장애물로 꼽힌다. 재조와 재야가 서로 전문화를 견인해야 하는데 현행 법관 승진·직급 제도에서는 재판부의 전문성을 기대할 수도 없을 뿐더러 사법 행정 자체가 지나치게 소극적·방어적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서 재판은 변론주의이고 입증 책임이 분쟁 당사자한테 있는데, 한국 언론은 주심보다는 재판장 위주로, 선수보다는 심판을 부각하는 보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재판의 대부분이 검사와 변호사 또는 변호사끼리의 대결이고 판사는 소극적인 심판일 뿐인데 우리 언론은 늘 어떤 판사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복싱 경기에서 선수보다 심판을 부각하는 꼴이다. 이런 식의 보도는 법원의 보수화를 부채질하고 전문화를 어렵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허용된 변호사의 전문 분야 광고도 중요하지만 언론 스스로가 변호사를 ‘광고’해 주는 데 인색하다는 지적이다.

법조 전문화를 위해서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공익소송법·집단소송법·제조물책임법 같은 공익·집단 소송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법무부가 도입을 검토했고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에 제정을 권고한 집단소송법은 쉽게 설명해 똑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대표로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다른 피해 당사자들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서도 같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 소송 체계이다. 공익소송법과 제조물책임법도 전체 국민의 공익과 소비자인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데 중요한 법률일 뿐만 아니라 법조 전문화를 촉진하는 법 체계이다. 이같은 법 체계는 특히 환경 소송이나 아파트 권리 찾기 같은 공익·집단 소송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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