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침술로 동포애 되살리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9.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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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해외봉사단, 중앙아시아 4개국 순회 진료… 고려인뿐 아니라 다른 민족도 대환호
우쉬토베 의료 봉사는 한방해외봉사단이 추진하는 ‘중앙아시아 4개국 40일 순회 진료’에 따라 이루어졌다. 봉사단은, 한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파란만장한 역정을 겪어온 중앙아시아 한인을 위로하고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이번 행사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라 8월17∼25일 우쉬토베 지역에서 진료가 이루어졌고, 9월 말까지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을 대상으로 또 다른 진료 팀이 출발할 예정이다.

93년 몇몇 뜻 맞는 한의사들이 중심이 되어 네팔 해외 봉사를 다녀온 것을 계기로 시작된 한의사 해외 의료 봉사는 햇수가 거듭되고 성과가 축적되면서 이제는 ‘한의학의 세계화’뿐 아니라 민간 외교 사절 역할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 한의사협회에서 독립해 2백여 회원을 거느린 사단법인체로 거듭나면서 의료 봉사 단체로서의 전문성과 동질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봉사단이 기획하고 있는 40일 순회 진료 지역 중에서도 우쉬토베는 지역이 갖는 상징성과 기념비 제막식 행사가 겹쳐 중요성이 특히 크게 부각되었다. 이번 우쉬토베 의료 봉사에는 봉사단에서 황치원 대전대 한의대 교수와 강락원 원장(울산 동인한의원) 등 한의사가 두 사람 파견되었고, 알마티 현지에서 정부 파견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선씨(알마티 제5시립병원 한방과장)와 전남 광양에서 개업 중인 선종욱 원장(경희한의원)이 합류했다. 재외동포재단의 이영선 씨, 어학 연수 중인 김고니씨, 한글학교 교사로 최근 취임한 백경제씨 등은 자원 봉사를 했고 현지 고려인 한글 학교 교사들이 통역을 맡았다.

봉사단이 도착한 18일 오후부터 우쉬토베 시립병원의 진료실 복도는 환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환자 중에는 고려인협회가 나누어준 진료표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용한 의사들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도 많았다. 고려인·러시아인·카자흐인 등 민족 별로도 다양했다.용하다는 소문에 환자 줄 이어

환자들은 처음 받아보는 침 치료에 신기해 하면서도 즉각적인 치료 효과에 놀라곤 했다. 러시아인인 이리나 안드레나(59) 씨는 신경성 경련을 앓고 있었는데, 첫날 침 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되어 다시 찾아왔다. 이처럼 한번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두번 세번에 걸쳐 연달아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통역을 맡은 전 갈리나 씨는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용하다고 소문을 퍼뜨리자 진료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로 전화통에 불이 났다”라고 말했다.

우쉬토베 지역은 고온 건조한 대륙성 기후와 식수에 석회 성분과 염분이 많이 섞여 결핵이나 결석, 신장 질환 환자가 특히 많았다. 그런데 다른 민족에 비해 고려인은 결핵 발병률이 비교적 낮았다. 고려인 출신인 김 이리나 시립병원 소아과 과장은 ‘고려인의 독특한 식생활 때문’이라고 나름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농사를 주로 짓는 고려인은 그 대신 심한 육체 노동 때문에 무릎 관절이나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이 많았다. 카자흐인은 심장병이나 고혈압 등 심혈관 계통과 간 질환이 많았고, 러시아인은 심혈관 계통과 신장 질환이 많았다.

한의사들이 선보인 다양한 치료 방식을 통해 최근 국내 한의학계의 발전 동향도 엿볼 수 있었다. 황치원 교수는 집안 대대로 전해진 침법을 바탕으로 본인이 발전시킨 독특한 침술을 구사했다. ‘기경침법’이라 불리는 이 침법은 인체의 기경락과 정경락이 만나는 8맥 교혈을 취혈해 자침함으로써 커다란 치료 효과를 보였다. 특히 고려인들에 많은 근골격계 질환이나 중풍에 뛰어난 효험이 있어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의료 봉사 덕분에 고려인 위상 더 높아졌다”

선종욱 원장은 한의학계에서 난치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8체질 침법을 구사했다. 국내에서 권도원씨가 전래의 사암침법과 체질의학을 결합해 발전시켜 온 8체질 침법은 맥진해 체질을 구분한 뒤 팔다리의 오수혈에 각 체질별 침처방을 반복해 단자하는 독특한 침술이다.

강락원 원장은 전통 체침법을 위주로 했다. 평소 유머 감각이 풍부한 그도 환자들 앞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어떨 때는 확실한 기감을 느끼기 위해 30분간을 기다려 침을 놓기도 한다는 강원장은 한꺼번에 많은 환자를 보아야 하는 의료 봉사의 한계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4일 진료 기간에 9백여 환자가 진료 혜택을 받았다. 이 중 고려인은 약 30%로, 다른 민족 환자가 더 많았다. 이번 의료 봉사를 도운 우쉬토베 고려인협회 인 발렌티나 회장(카르타르 구역 부시장)은 다른 민족이 고려인 덕분에 좋은 치료를 받았다고 고마워한다며 “덕분에 고려인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라고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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