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잿물과 함께 불고기 먹는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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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 식당 석쇠용 세제 성분 분석/수산화나트륨 1.5% 함유, 인체·환경에 적신호
서울에서 유통되는 식당용 주방 세제에 양잿물이 다량 들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방 세제 제조업자들은 제품 출하 당시 보건 당국에 신고한 함유량보다 3~5배나 많은 양잿물을 사용하고 있다. 주로 영세 기업이 만들어 도매 시장을 통해 15~20ℓ 들이 용기로 저가에 판매하는 이 식당용 주방 세제들은 기름때를 제거하는 세척력을 높이기 위해 양잿물을 많이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양잿물, 즉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NaOH)는 극약 성분의 원료로 주로 화학약품이나 석유화학 제품에 두루 쓰이는 대표적인 유해 물질이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양잿물 사용을 규제할 기준치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주방 세척제 관련 고시에는 가성소다 포함 허용 여부만 표기되어 있을 뿐 허용 기준치가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다.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시중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석쇠 세척용 주방 세제 3종을 수거해 한국생활용품시험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밝혀졌다.

결국 이런 유해성 물질이 들어 있는 주방용 세제로 식기나 과일을 세척하면 제대로 닦이지 않은 일부 성분이 인체에 흡수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값싼 세제를 사용하는 식당에서는 표준 사용량을 지키기는커녕 석쇠나 불고기판에 들러붙은 기름때나 고기 찌꺼기를 없애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량의 원액에 세척물을 그대로 담가 두는 실정이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양잿물 세제’ 규제 방법 없어

현재 KS(한국 공업 규격) 제품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주방용 세제의 경우 대부분 ℓ당 2g의 표준 사용량을 용기에 표시한다. ℓ당 2g을 넘을 경우 세정 효과는 더 좋아지지도 않는 데다 과다 사용으로 인한 환경 오염은 심해질 것에 대비해 각 업체는 표준 사용량을 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석쇠용 세제는 표준 사용량조차 정해 놓지 않고 있다. 표준 사용량을 표시하지 않은 제품이 대부분이고, 일부 제품에는 물과 50 대 50으로 섞어 사용하라는 식의 마구잡이 표기를 해놓은 것도 있다.

ㅇ산업이 만든 주방용 세제 ‘소사나’의 경우 제조업체가 신고한 수산화나트륨 함유량은 0.3%이다. 그러나 이 제품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 수산화나트륨 함유량은 신고량의 4배가 넘는 1.3%로 나타났다. ‘소사나’는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한 달에 1천5백여 개나 팔려나가는, 식당업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제품이다.

특히 이 제품은 산·알칼리 여부를 나타내는 ph 농도가 12.4로 강한 알칼리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시중에 나와 있는 중성 세제 ph 농도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일부 주방용 세제는 세척력을 내는 액상 거품, 즉 계면활성제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 기름 성분에 대한 세척력을 높이기 위해 강한 알칼리 성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ㅈ산업이 생산하는 ‘매직크린’ 역시 수산화나트륨을 1.5%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제품도 ph 농도가 12.4로 강한 알칼리성이다. 이 제품은 한 달에 약 2천 통씩 전국에 팔려나간다. 이들 세제의 강알칼리성은 피부에 나쁜 영향을 미쳐 피부 조직의 아미노산을 파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러한 주방용 세제들은 주로 남대문 시장 등 대형 도매 시장을 통해 식당으로 바로 유통된다. 가격은 15ℓ 들이 1통에 만~1만5천원 선으로 KS 규격을 획득한 LG·애경·제일제당 등 대기업 제품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물론 최근 식물성 세제를 표방하며 수질 오염 방지나 피부 보호에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다고 선전하는 자연퐁이나 참그린의 경우는 일반 세제에 비해 값이 2배가 넘는다.

이런 탓에 식당업자들은 세척력이 뛰어나고 값이 싼 세제들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식당업자들은 이런 세제들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하나같이 ‘싸고 세척력이 좋아서’라고 답변했다.

이들 세제는 시판되기 전에 당연히 관계 당국의 성분 규격에 따른 허가를 받는다. 현행 공중위생법에 따르면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시료를 제출 받아 ph, 메틸 알콜 함유량 및 중금속과 형광증백제 포함 여부 등 다섯 항목을 검사한 뒤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 다섯 항목 외에 가성소다나 규산소다 등 각종 첨가물의 경우 1백30여 가지의 첨가물 종류만 나열해 놓았을 뿐 규제치는 마련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무허가 업체의 ‘물비누’ 더 위험”

첨가물 함량이 단순 신고 사항으로 되어 있어, 신고한 내용과 맞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이를 사후 규제할 방법이 없다. 제조업체가 있는 관할 구청 위생과 공무원들이 수시로 지도·감독을 한다고는 하나 실제로 제품을 수거해 성분을 검사하지는 않는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제조업자들이 기관에 납품할 때 첨부 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외에 구청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성분 분석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위생용품 제조업은 94년 말 제조업 전반에 대한 규제 완화책의 하나로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었다. 따라서 제조업자들은 행정 관청에 제조 품목 등록을 하지 않고도 비소·중금속 포함 여부 등 몇 가지 항목에 대한 ‘자가 규격 승인 신고서’만 제출하면 주방용 세제를 제조할 수 있다. 그래서 생산 품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단속이 소홀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소사나’나 ‘매직크린’과 같은 식당용 주방 세제를 생산하는 업체는 종업원 5명 이하의 영세 기업이 대부분이다. 제조 공정 역시 간단하다. 적게는 1t, 많게는 5t짜리 교반기(원료와 첨가물을 한데 섞는 원통형 기계) 하나만 갖추었을 뿐이다. 그나마 이런 세제들이 공장에서 출하될 때는 5천3백원~5천5백원 수준이니 유통 과정에서 가격이 2~3배 가까이 뛰는 셈이다. 현재 이 제품들은 도매 시장에서 식당들에 간장·된장 등을 배달하는 데 얹어 끼워 팔기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식당업자들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예 무허가로 제조되는 일명 ‘물비누’라고 지적한다. 이런 세제들은 18ℓ 들이 한 통에 5천원 안팎에 판매된다. 내용물보다 용기 가격이 더 비싼 격이다. 소규모 식당과 중국 음식점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런 세제는 계면활성제가 일반 세제에 견주어 적게 포함되어 있고 세척 효과도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값이 싸서 식당업자들에게 널리 쓰이는 이 세제는, 당국의 단속을 피해 공장을 수시로 옮기면서까지 생산되고 있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이런 무허가 세제 제조업소가 50여 개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물비누’는 식당업자들에게 전화를 통해 배달될 뿐 어디서 얼마나 제조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다. 기름·찌꺼기 세척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마구잡이로 유통되는 이들 세제에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소비자들의 피해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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