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두뇌 빨아들이는 ‘인재 블랙홀’ 삼성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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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천재 사냥’이 거침없다. 삼성전자는 2000년부터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을 누비며 한국인 이공계 수재 5천여명을 끌어들였다. 이 해외 석·박사 채용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고 기업은 최고 인재가 만든다.’ 삼성전자 성공의 비밀을 찾는 열쇠다. 삼성전자는 지금도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전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 이공계 천재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자사 연구 개발(R&D) 부서를 채우고 있다. 핵심 인재 발굴에 가장 앞장선 인물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열릴 때마다 “당신네 회사는 핵심 인재를 몇 명 확보했느냐”라고 독촉한다. 삼성전자 인사팀의 한 임원은 “사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경영 실적에서 해마다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매출 43조5천8백억원, 영업이익 7조1천9백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 시가총액은 84조원(3월5일 기준)을 기록했다. 세계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올해 경영 실적도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가총액도 올해 안에 100조원이 넘을 것이 유력하다. 이제 삼성전자 없는 한국 경제는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전자 통신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삼성전자를 이끄는 기관차는 인재다. 삼성전자는 2000년 해외 석·박사를 채용하는 전담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당시 이 태스크포스에 참여했던 전직 삼성전자 인사지원그룹 담당자를 통해 핵심 인재 발굴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그는 1년에 7~8개월씩 외국에 체류하며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이공계 수재 5천명 가량을 일일이 면담해 상당수를 현장에서 바로 채용했다.

2000년 하반기 삼성전자는 비밀리에 인사지원그룹 소속 임직원 2명과 기술직 임직원 2명을 대전광역시로 파견했다. 그들은 대전 소재 롯데호텔에 묵으면서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동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소속 연구원 60여 명을 모두 만나 한 사람씩 포섭했다. 또 전자 통신 부문 인명록을 만들고자 한다며 출신 학교·전공·연구 실적 등을 담은 신상명세서를 제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외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창이나 친구 연락처도 함께 받았다.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1단계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다.

1주일 간의 대전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2단계에 돌입했다. 해외 석·박사 채용 프로젝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이 제출한 유학생이나 외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동창·동료 목록이 기초 자료였다. 3개월 동안 전화 연락을 통해 일일이 약속 날짜를 잡은 다음 미국으로 출발했다. 미국을 동부·중부·서부로 나누고 지역마다 4인 1조로 전담팀을 꾸렸다. 해외 석·박사 채용 태스크포스 임원 1명과 연락 담당 직원 1명, 기술수석 2명이 한 팀이 되었다.

동부팀은 뉴욕, 중부팀은 시카고, 서부팀은 시애틀에서 각각 출발해 남하하면서 대학·연구소·경쟁 업체·벤처 기업에 있는 한국인 이공계 인재들을 면담했다. 꼭 뽑고 싶은 인재에게는 ‘삼성전자에 입사하면 능력에 걸맞는 처우와 보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세 팀이 재집결하기로 한 곳은 애리조나 피닉스였다.
면담 방법은 치밀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학교 근처 한국 식당을 빌려 스탠퍼드에 재학 중인 모든 한국인을 초청해 한 사람씩 면담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인물 사진을 찍었다. 채용팀 4명은 각각 인성, 가족 관계, 연구 분야, 조직 적응도 등으로 구분해 면담 내용을 기록하며 입사 여부를 타진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얼굴 사진과 면담 기록을 맞추면서 하나씩 이력서를 작성했다. 이 담당자는 “당시 훌륭한 인재가 너무 많아 모두 채용하고 싶었다. 당장 시급한 분야의 인력이 아니거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귀국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제외할 때 아쉽기 그지없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삼성전자가 가장 역점을 두고 채용하고자 했던 분야는 통신·반도체·무선 기술. 그런데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들을 통해 파악한 명단으로는 무선 통신 전문가밖에 파악할 수 없었다. 당장 필요한 분야의 전공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명단이 필요했다. 임기응변으로 나온 아이디어가 미국 ‘톱10’ 대학 출신 졸업생 명부였다. 미국 명문 대학 졸업생 명부를 훑으면서 한국인 이름을 가진 이들을 따로 빼내어 목록을 작성했다. 이 가운데 통신·무선 기술·반도체 관련 분야를 전공한 인재들을 일일이 만나 귀국을 권유했다. 이 임원은 “면담 대상자들마다 처한 여건과 요구 조건이 달라 귀국 일자가 천차만별이었으나 우리는 그들이 국내에 들어올 형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행운이 따랐다. 2001년 미국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우수한 한국 인재들이 정리 해고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삼성전자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로 세계 최고의 통신 전자 업체에서 밀려난 한국인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시스코·퀄컴·에릭슨·모토롤라·노키아 출신 연구원들도 많았다. 더욱이 퀄컴은 국내 무선 통신 방식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의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여서 퀄컴 출신 인재를 영입한 것은 큰 성과였다. 그 무렵 새롬기술 실리콘밸리 지사 출신 엔지니어들도 그대로 ‘인수’했다. 결국 2001년 면담 대상자 가운데 7백여 명이 귀국했는데, 이 가운데 3백50여 명을 채용했다.

삼성전자는 채용한 인재들이 유출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해외 석·박사는 H(highly potential)급으로 분류하고 파격적으로 대우했다. H급 가운데 산업 판도를 바꿀 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S(super)급으로 분류해 채용과 동시에 전무로 선임하고 보유 기술에 따라서는 수십억원이 넘는 연봉을 지급했다(60쪽 딸린 기사 참조). 또 해외 석·박사나 외국인 인재들을 위해 콜센터와 멘토 제도를 운영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지내 국내 생활이 불편한 이들이 콜센터에 연락해 애로 사항을 토로하면 곧바로 해결해 주었다. 새로 들어온 인재는 해당 분야 선배와 연결해 주었다. 선배가 업무는 물론 생활 전반에 관한 상담까지 해주는 멘토 역할을 담당했다.

S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H급 인재 한 사람이 입사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퇴직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시 퇴근에 익숙했던 그는 연구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회사에서 먹고 자는 동료들에게 질려버렸던 것이다. 인사 담당자들은 그가 퇴직하는 것을 말렸다.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퇴직 의사를 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났을 때 작성한 면담 기록을 살펴보니, 강원도 영월에 사는 아버지 지시에는 꼼짝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인 당시 기술개발담당 임원과 채용팀장이 과일을 사들고 강원도 영월의 산골 마을까지 찾아갔다. 눈이 펑펑 쏟아져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H급 인재의 아버지는 삼성전자가 자기 아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감동했다. 더욱이 폭설을 뚫고 산골 마을까지 찾아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 삼성전자에 남으라고 엄명을 내린 것이었다. 그 아들은 지금도 삼성전자 통신 부문 핵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핵심 인재 발굴 사업을 주도했던 이 임원은 “인사 업무의 80%는 면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면담 제도를 인사관리 시스템에 통합했다. 지금도 삼성전자는 1년에 네 차례씩 팀장들이 부하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 가족 관계, 애로 사항 등을 듣고 시스템에 입력한다. 시스템에는 현재 5천명이 넘는 인재들과 면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에서 돌아온 태스크포스 팀은 일본으로 날아가 기계공학과 정밀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찾았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무선통신 단말기 산업은 소프트웨어·칩·하드웨어 기술이 핵심이다. 이 가운데 한국이 일본이나 유럽보다 뒤지는 분야가 하드웨어였다. 휴대전화 디자인을 살리면서 내구성이 높은 단말기 틀을 만드는 금형 기술이 처져 있었다. 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금형 기술을 갖고 있었다. 금형 기술은 기계공학과 정밀공학의 산물이다. 태스크포스 팀은 일본에서 정밀공학이나 기계공학을 전공한 박사급 한국인 인재를 찾아 2001년 중순부터 일본의 7대 국립 대학인 홋카이도·센다이·도호쿠·규슈·오사카·교토·도쿄 대학을 돌아다녔다.

일본 출신 인재들은 세계 최고의 응용 기술을 지니고 있어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미국은 업무가 상당히 세분화해 있어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 분야와 자기 상사밖에 모른다. 하지만 일본 인재들은 자기가 일했던 회사의 시장 지위와 기술 추이까지 훤히 알고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채용팀은 일본에서 박사급 인재 50명 가량을 뽑았다.

삼성전자는 2001년 신입과 경력을 합쳐 5천명 이상을 신규 채용했다. 무선 통신 부문만 2천5백명 정도. 주로 국내 대학 전자공학과 출신 인력을 상대로 시험을 통해 선발했다. 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 3세대 휴대전화 서비스인 IMT 2000이나 유럽 무선 통신 규격인 GSM 방식의 3세대 서비스인 UMTS (Universal Mobile Telecommunications System)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새로 뽑은 인력을 투입할 수가 없었다. 3개월 동안 신기술 교육을 다시 했다. 석사 학위 취득자 100 명씩을 삼성첨단기술연수소에 모아 놓고 3세대 무선 통신 서비스를 강의했다. ETRI·퀄컴·모토롤라·에릭슨·노키아 출신 H급 인재들이 강의를 맡았다.

해외 석·박사 채용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해외 인력 채용 태스크포스는 1년에 7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채용 전담 직원 한 사람에 기술직 사원 2명과 연락 담당 한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인재를 찾아 나선다. 기술직은 순번제로 돌아가며 파견된다. 지금도 4~6개 해외채용팀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재 사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유럽·러시아에까지 ‘사냥터’가 확대되었다. 인재 사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지역마다 국제채용담당자(IRO)까지 두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수묵화 <삼고초려도>를 선물했다. 경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인재 확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삼고초려에 설득된 삼성전자의 제갈량들이 세계 전자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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