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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씨가 말하는 <인간의 길> 집필배경

이인화씨는 <인간의 길>에서 신화적인 캐릭터 박정희를 통해 ‘나라 전체가 무력감에 사로잡힌 이때 더 성숙한 방식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말하려 한다.

李文宰 기자 ㅣ 승인 1997.05.2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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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4년 전에 펴냈던 베스트 셀러 소설 <영원한 제국>은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본영화’ 개봉을 앞두고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와 그의 시대는 아직도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초순 <인간의 길> 1·2권 초판을 서점에 내놓을 때 소설가 이인화씨(본명 류철균·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항공모함으로 돌진하는 가미가제 같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거센 항의와 비판을 예상했다.

그러나 사정은 딴판이었다. 소설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부정적인 독후감은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찬사 일색이다. 그렇다고 그 응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비평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 3권으로 일단락되는 <인간의 길>(제 3권은 6월 초에 나온다)을 제1부로 하는 이 소설은 모두 3부 전 10권으로 완결되는 대하 역사 소설이다.

한국 소설사에서 보기드문 ‘악마주의’

이 소설에 대한 공격이 나오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연유는, 박정희 증후군의 영향력 때문이다. 박정희를 비판했다가는 ‘그럼 경제를 죽이자는 것이냐’는 반론이 즉각 튀어나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나타나고 있는 이상 현상, 즉 지식인들의 눈치 보기가 새삼 확인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소장 평론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젊은 교수(31세)인 그가 이 시기에, 그것도 박정희를 모델로 한 대하 역사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80년대 중반 대학(서울대 국문과)에 다닐 때 그 역시 유신과 5공의 군사 독재를 혐오하고 반대하던 사회과학 세대였다. 그는“87년 대선에서 양김씨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참패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양김씨가 만일 70년대에 대통령이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박정희를 다시 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박정희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주의를 종교처럼 신앙한 박정희를 작가는 공인의 모범으로 평가한다. 세계적으로 개발 독재가 거의 다 실패로 돌아갔는데 유일하게 성공으로 이끈 것도 작가가 인정하는 부분이다.“그러나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는 아니다. 박정희의 캐릭터와 리더십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쿠데타를 통해 헌정 질서를 교란한 박정희의 원죄와 ‘한국적’이라는 한정사를 붙여 자행한 독재 또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1871년부터 1951년에 이르는 근현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 <인간의 길>은 허정훈(박정희) 3대와, 허정훈과 대척점에서 개인주의의 극지까지 나아가는 유건희와 그의 아들 유척기, 그리고 두 극단적 인물 사이를 왕복하는 여인 김옥희가 이루는 삼각 구도 안에 동학혁명과 식민지 시대, 일본 동경과 만주의 전장, 대구 10월 폭동 등을 아우르면서 첨예한 사상적 대립과 악마주의를 전개시켜 나간다.

‘위대한 모반자’허정훈은 박정희를 거의 완벽하게 복제했지만, 여타 인물들은 허구이다. 허구이되 여러 모델을 합성한 허구이다. 예컨대 악마적 개인주의를 지향한 유건희는 김성곤·이병철 등 박정희와 명암을 함께했던 실제 인물들을 취합했다. <인간의 길>은, 마키아벨리즘을 육화했던 신화적인 캐릭터 박정희를 통해 ‘나라 전체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이때 더 성숙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일어서자’고 말하려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긴장 관계를 이루는 공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간의 길>에 대한 ‘(문학적) 청문회’는 제 1부가 매듭지어지는 6월 이후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데, 박정희 재평가는 물론, 근대 및 탈근대 재해석 등을 주제로 한 대논쟁으로 번질 조짐이다.

불가능한 경우도 있겠지만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작가 의도에 대한 혐의를 접어둘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새로운 소설이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영웅주의와 악마주의의 극지를 지향하는 한편, 연극의 이화(異化) 효과를 변용하는 등 형식 실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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