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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명예 퇴직' 후유증, 치료약은 '명예 회복'

감량 기업들, 직원 사기 저하로 몸살…단합대회 등 대책 찾기 부심

金芳熙·李哲鉉 기자 ㅣ 승인 1997.06.0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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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규모 명예 퇴직 사태 당시 사회의 시선은 갑자기 거리로 쏟아져나온 명예 퇴직자들에게 온통 쏠렸다. ‘그들은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 당시 언론은 그런 화두를 갖고 너도나도 명예 퇴직자 보도에 열을 올렸다.

이제는 ‘살아 남은 자들’의 차례다. 같은 질문을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던져야 할 때라는 얘기다. 기업이든 직장인이든 최악의 시기를 벗어나게 되면 그 시기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든 나타나고, 이것이 당분간 우리의 기업의 문화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규모 명예 퇴직 사태 이후 우리 기업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수석연구원은 ‘아직도 근무 중인’ 직장인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론 이런 사기 저하는 ‘나도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 때문이다. 그동안 명예 퇴직에 관한 논란에 시달리고, 연쇄 부도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직장인들로서는 당연한 위기감인지 모른다. 이 최악의 시기에만 실업자가 80만명에 육박했고, 신규 채용자는 10만명이 줄었다. 회사도 하루 평균 50개가 쓰러졌다.

직장인 75% “일할 맛 안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은 이번 불황기에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종업원들의 전반적인 근무 태도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예를 들어 일부 기업에서는 출퇴근 시간 외에 점심 식사 후 회사로 복귀하는 시간도 기록하게 해 놓았다. 경비 절감의 일환으로 각종 인사 및 복리 후생 제도가 축소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불황은 기업이 살아야 종업원이 살 수 있다는 식의 ‘생존 우선 논리’가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업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인재가 유출되면 기업의 업적이 더 나빠지고, 이는 다시 종업원들에 대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해 사기가 다시 떨어지는 불황과 사기 저하의 악순환이 우려될 정도이다.” 최근 ‘불황기 종업원 사기 진작 방안’이라는 연구 자료를 내놓은 장상수 수석연구원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이번 불황기에 우리 기업들이 너무 종업원들의 사기를 죽여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종업원의 사기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측정하기에 난점이 많다. 그러나 일정한 경향이나 흐름조차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종업원의 사기와 관련된 각종 조사들을 보면, 현재 직장인의 75% 가량이 사기가 떨어져 일할 맛이 안난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성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88년 이후 기업 복지비는 매년 20%씩 증가하는 추세인데도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눈에 띄게 낮아지는 추세이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도 종업원의 사기를 배려하려는 기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LG그룹 계열사인 LG소프트는 지난 4월23일 발탁 진급자 5명을 포함해 91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예년에 비해 훨씬 높은 진급률(80%)를 기록한 셈인데, 불황기이기는 하지만 종업원들의 사기를 고려해 일부러 승진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이밖에 정부와 여론을 의식해 인원을 삭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업들도 출현했다(이 부류의 회사들은 최근 채산성이 크게 악화한 것으로 나타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동부그룹은 공개적으로 비해고 방침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기간에도 가장 꾸준하게 대규모로 신규 사원과 경력 사원을 채용했다. 이 그룹의 채용 면접에 참석했던 한 임원은 “인재 확보에는 불황기가 적기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초유의 불황기에도 종업원의 사기를 고려할 만큼 여유가 있었던 기업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업무 공백 메우려 재입사하는 경우도

대부분의 경우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이었다. 단순히 경비를 절감하겠다는 생각에서 무턱대고 명예 퇴직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많았다. 지난해 천명에 가까운 중간 관리층 직원들을 명예 퇴직시켜 기업 사이에 명예 퇴직 붐을 촉발했던 선경인더스트리(SKI)가 좋은 예다. 이 회사에서는 최근 들어 대규모 명예 퇴직 이후 업무 공백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퇴직 사원을 촉탁 사원으로 재입사시키는 예가 늘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업무 대비 인원이라는 관점에서 장기적인 인원 조정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일단 줄이고 보자는 판단부터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는 했지만, 명예 퇴직에서 ‘그레셤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도 현실로 드러났다. 실제로 회사가 떠나주었으면 하는 종업원들은 남고, 유능한 인재들만 자진해서 퇴직한 예도 꽤 있었다는 얘기다. 국내 한 헤드헌팅(인재 알선) 업체 사장은, 평판이 좋은 대기업 중견 간부들의 경우는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조건이 좋은 회사를 찾아간 경우도 많았다고 전한다. 삼성을 비롯해 명예퇴직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던 일부 회사가 이를 포기한 것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은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이어진, 명예 퇴직을 포함한 감량 경영의 공과를 논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90년대 초반 구조 조정기를 맞아 기업들이 유행처럼 대규모 인원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가 이런 방식이 당초 기대했던 것과 달리 효과가 별로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종업원의 사기나 충성심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순철 교수(홍익대·경영학)의 말을 들어보자. “종업원의 사기나 충성심은 측정하기도 어렵거니와 평상시에는 크게 문제가 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기가 관건이 될 때가 오면 그 중요성을 알게 되는데, 일단 떨어진 사기나 충성심을 되돌려 놓기는 아주 힘들다.”

불황의 긴 터널 끝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일부 대기업체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금과 같이 사기가 떨어진 상태에서는 다시 호황기를 맞더라도 전과 같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족 초청 행사, ‘스킨십 경영’ 등 묘안 백출

우선 이런 저런 이름을 내걸고 종업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행사가 점차 늘고 있다. 사실 이런 방법은 종업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전통적인 접근 방법에 속하는데, 효과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관은 지난 5월16일 ‘경영 위기 극복 전진대회’를 열었다. 이 회사 종업원들은 수원 공장에서 행사장인 충남 운천까지 기차로 이동했는데, 이 행사 때문에 철도 역사상 단일 기업 최다 수송 인원(3천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기업과의 일체감을 심어주는 것도 종업원의 사기와 충성심을 높이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이다. 대우자동차는 5월15일부터 7월 말까지 기혼 사원 부인 9천명을 매일 2백명씩 회사에 초청해 경영 방침과 성과를 설명하는 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 행사가 내건 슬로건은 ‘家社不二’. 집과 회사가 결국은 한몸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종업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 경영진은 좀더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LG전자 구자홍 사장이 최근 내건 ‘스킨십 경영’이 좋은 예다. 구사장은 지난 1월부터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산행을 하는데, 반드시 임직원들과 동행한다. 또 산하 사업장과 연구소를 순회 방문하면서 가능하면 현장 실무자들과 직접하는 접촉 기회를 늘려나가겠다는 것이 스킨십 경영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금전보다는 심리적 혜택을”

경영 전문가들은 불황기의 종업원 사기 진작 방안의 초점을 주로 비금전적인 측면, 즉 심리적인 면에 맞춰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호황기에는 경쟁력 있는 급여와 복리 후생 같은 수단이 중시되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고용 안정이라든가 능력 인정, 권한 이양, 열린 대화 같은 수단이 더 중요해진다는 지적이다.

같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임금이나 복리 후생비의 무리한 인상과 확충보다는 개개인이나 부서 간의 접촉을 강화하고, 그들의 공적에 대해 인정 혹은 보상하며, 규율을 강화하기보다는 자율성을 더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설 노동경제연구원 양병무 부원장은 “일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원 재조정 계획을 수립해 기업 인력의 수량적 효율성을 확보하고 나면, 어떻게 기존 인력의 사기를 높여줄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인사 관리 방식을 일부 수정할 필요도 생겨난다. 기존 방식은 인사 고과를 통해 능력이 뛰어난 상위 5~10%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승진 승격은 물론 금전적 이익과 교육 훈련 기회 등 모든 혜택을 독점적으로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이런 전통적인 방식이 ‘만족하는 소수와 불만인 다수’를 양산할 수도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종업원에게 혜택이 조금씩이나마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야 한다. 명예 퇴직제를 비롯해 사상 초유의 고용 불안정 상태를 야기했던 기업들이 정반대 이유로 그 치유책을 만들어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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