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네바 핵 합의 후 2~3개 만들어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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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94년 제네바 핵 합의가 오히려 제조 보장” …이미 방어용 2~3개 보유했을 수도
레만 호의 풍광이 몹시 아름다운 제네바에서 한반도의 비극이 될 씨앗이 잉태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누구나 94년 10월21일 미·북한간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동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제네바 핵 합의가 미국의 당초 약속과 달리 북한의 핵무기 개발 동결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이로써 한·미 양국간 긴장이 심각한 상태로까지 고조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미국은 북한이 영변 원자로에서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제네바 핵 합의 이후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해도, 이를 문제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한·미 양국은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이후 적어도 2~3개 정도의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로써 60억 달러에 달하는 대북 경수로 공급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은 재검토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미·북한간 핵 합의를 둘러싸고 최근 한·미 양국이 갈등을 빚는 대목은, 94년 제네바 핵 합의 이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동결되었는지 여부이다. 갈등의 핵심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동결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직후 가동 중단한 영변의 5MW급 흑연감속 원자로에서 이미 추출한 소량의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2~3개를 개발했다면 이를 합의 위반으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이다.

한국 정부가 이 대목을 문제 삼는 까닭은, 제네바 핵 합의가 당초 예상과 달리 북한의 핵무기 개발 동결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제네바 핵 합의로는 2006년쯤 경수로 2기가 모두 건설되기 전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영변 5MW급 흑연감속로에서 89년부터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개발을 강행할 경우 이를 제지할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제네바 핵 합의문을 보면 한국 정부의 문제 제기는 타당성을 갖는다. 합의문 제 4조에 따르면, 첫 번째 경수로가 가동되기 전까지는 북한은 영변 5MW급 흑연감속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국제원자력기구( IAEA) 감독 하에 해외로 반출할 의무가 없으며, 또한 영변 핵시설도 두번째 경수로가 건설되기 전에는 폐기할 의무가 없다. 한마디로 제네바 핵 합의는 거꾸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2006년까지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판단이다.

미국 “핵무기 2~3개쯤은 합의 위반 아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한국측이 ‘납득할 수 없는’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최근 극비리에 미국측에 제네바 핵 합의가 갖는 허점을 지적하자, 미국은 이 합의가 북한의 핵무기 대량 생산을 막는 데 주목적이 있다면서,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이후 핵무기를 2~3개 개발했다고 해도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네바 핵 합의를 둘러싼 한·미 갈등은 북한의 방어용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는 제네바 핵 합의가 체결될 당시 북한이 추출한 것으로 알려진 플루토늄, 이른바‘과거 핵’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이후 문제의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제조했다면 이는 핵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한국 정부는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공격용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려던 계획을 막은 것이 중요하다면서, 제네바 핵 합의 이전에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소량의 핵무기를 제조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핵 합의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네바 핵 합의가 북한이 50MW·200MW 중수로를 건설해 연간 30여 개에 이르는 핵무기 개발을 봉쇄했으면 되는 것이지, 방어용 핵무기를 2~3개 보유하는 것은 미국에게 별로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왜 지금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을까. 정부는 94년 10월 당시 제네바 핵 합의가 북한의 핵무장을 완전히 막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정부는 안기부 등 대북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에 따라 최근 북한이 핵 합의 이후 핵무기를 제조했다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정부가 제네바 핵 합의를 문제 삼은 것은, 이같은 상황 전개를 도외시하고 경수로 공급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북한이 정말로 핵무기를 개발했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최소한 2~3개 보유하고 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공식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한국과 미국이 내부적으로 인식을 같이하게 된 것은, 북한이 91년에 이미 영변 5MW급 흑연감속로에서 핵무기 1~2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기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미 양국이 그같은 판단을 하게 된 시점은 91년 12월 남북한간 비핵화 공동선언을 협상할 때였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당시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 재처리 포기 조항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을 경우‘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북한이 이상하게도 협상 첫날 이를 수락했다면서, 이는 북한이 당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정부 “경수로 비용 부담 안할 수도 있다” 반발

실제로 대다수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이같은 견해에 동의한다. 94년 3월 CNN과의 회견에서 제임스 울시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북한이 이미 1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갈루치 전 미국 핵대사의 보좌관인 게리 새모어는 95년 미국 상원에서 북한이 89년부터 재처리해서 확보한 플루토늄은 8~10㎏(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는 양)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한·미 양국은 이처럼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이전에 이미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경수로 공급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겠다고 나선 것도 제네바 핵 합의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동결시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합의가 북한이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무기 개발에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미 간에 심각한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그렇다면 제네바 핵 합의는 거꾸로 북한에게 합의 전에 확보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와 안기부 관계자들은 그 면죄부가 제네바 핵 합의 이후 3년 동안 효력을 발휘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제네바 핵 합의가 갖는 문제점을 제기하자, 미국이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전제 아래 한국의 입장을 반박하는 점에서 확인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실제로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과 함께 제네바 핵 합의를 주도한 갈루치 전 미국 핵대사의 발언들을 보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해도 미국은 이를 묵인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특히 미·북한이 핵 합의를 한 지 1년이 지난 95년 10월 갈루치 전 대사는 미국 하버드 대학 연설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8㎏을 추출한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하면서, 최소한 1~2개 정도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네바 핵 합의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나면서 갈루치 전 대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가능성을 전보다 더 높게 보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 학장을 맡고 있는 그는, 96년 9월 미국 상원 동아시아태평양소위 청문회에 출석해서 이렇게 증언했다. 북한은 89년부터 핵무기를 5개 만들 수 있는 30㎏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으며, 그중 첫 번째 핵무기는 추출일로부터 1년 내에 제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주요 대북 정책 결정자들은 줄곧 북한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해 왔다(47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런데 이상한 점은,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여부를 규명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순수하게 북한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만 지적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밝히기 어려워, 관계자들이 발언을 몹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적 교류 등 인적 정보 수집에서 뛰어난 안기부는, 내부적으로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이후 핵무기를 적어도 2~3개 개발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한 관계자는, 물적 증거는 없지만 안기부가 수집한 신뢰할 만한 정보 덕분에 우리 정부가 비공개적으로라도 미국에 제네바 핵 합의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당초 미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막겠다면서 북한과 체결한 핵 합의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앞으로 한국이 제기한 문제를 미국이 도외시한다면 한국으로서는 경수로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혈맹인 미국과 ‘합의 이혼’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미국, 북한의 핵무기보다 관계 개선 더 중시

한국이 미국과 별거할 듯한 징후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 이후 핵무기를 생산했다면, 미국이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이 경수로가 완공된 뒤에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곧이곧대로 받겠느냐”라고 의문을 던지면서, 미국의 모순된 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그때 가서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생산했는데도 경수로를 지어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미국내 북한 핵 전문가들도 최근 제네바 핵 합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빅토르 길린스키는 지난 3월27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협박을 감내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핵 합의는 전적으로 북한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근거로, 북한이 여전히 두 곳의 액체 폐기물 은닉 장소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원자력기구 또한 어떠한 임의적인 사찰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길린스키는 또한 제네바 핵 합의 내용대로라면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앞으로 계속해서 북한의 핵개발 재추진 위협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제네바 핵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특히 하워드 다이아몬드는 4월17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제네바 핵 합의로 미국은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시키고 △방사선에 쪼인 연료의 캔 봉합을 올해 9월까지 완료하는 등 여러 가지 이득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이 핵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경수로 공급 사업을 중단하면 되므로 지나친 비판은 위험하다고 그는 경계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이미 핵물질들을 감추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27일 <로이터 통신>은 국제원자력기구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플루토늄 은닉 장소를 감추고 있는데, 이를 입증할 증거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길린스키는 이렇게 묻는다. 경수로 건설 도중에 북한이 자신을 핵 합의 위반자로 낙인 찍을 증거를 제공하는 데 협조하리라고 믿는 사람이 정말로 있는가라고.
그렇다면 미국은 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여지를 주었을까.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북한간 제네바 핵 합의(Agreed Framework)는, 영어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미·북한 관계 개선의 틀이라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지적한다. 즉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대량 생산을 막고자 한 것은 사실이나, 핵무기를 1개도 만들지 못하게 막지 않은 것은 이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미국에게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미 관계 ‘루비콘 강’ 건널 수도

물론 미국이 처음부터 그같은 의도를 가지고 제네바 핵 합의를 체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핵무기 대량 생산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수용하되,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허용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상 중국을 봉쇄하는 데 필요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허점 투성이인 제네바 핵 합의를 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미국의 저의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한을 남북 대화에 나서게끔 한다면서 체결한 합의문 제3조가 전혀 효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조항을 북한은 ‘핵 합의가 남북한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대화에 참여한다’로 읽는 반면 한국은‘핵 합의가 남북한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대화에 참여한다’로 해석하기 때문이다(46쪽 사진 설명 참조).

어쨌든 이제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와 관련해 제네바 핵 합의를 보완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 관계가 루비콘 강을 건널 수도 있음을 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그럼에도 미국이 쉽사리 한국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한국 정부가 이같은 상황을 방치한 데 대한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폐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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