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기고 질긴 건설업계의 뇌물 사슬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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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단계마다 뇌물 수수 관례화… 업자들 “이윤 남기자면 부실 불가피”
삼풍백화점 참사를 보는 건설업자 안영재씨(45·가명)의 소회는 남다르다. 그는 지난 4년간 서울 북부의 한 위성 도시에서 종합건설업체 ‘ㅅ건설’을 운영하며 약 10여동 천여 세대의 아파트를 지었다. 그러나 최근 건설업에 회의를 느끼고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그에게 결정적으로 죄의식을 일깨웠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축물은 원초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다며 그가 털어놓은 건설 경험담은 이렇다.

안씨가 ㅅ건설을 설립한 시기는 91년 4월이다. 그 전에 10여 년간 국내 굴지의 재벌 건설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자기 사업에 살려보겠다는 뜻에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91년 7월 안씨는 경기도 북부 지역의 한 도시에 민영 아파트 3개 동 4백70여 세대를 짓는 공사권을 따냈다. “아파트 공사에서 그냥 집만 지어주고 이윤을 바라는 건설회사는 없다. 분양 세대 중에 최소한 수십 세대는 건설회사 몫으로 돌아와야 공사에 뛰어든다.” ㅅ건설 역시 이런 관행에 따라 약 60세대분을 건설사 몫으로 챙기는 조건으로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이를 건설회사가 챙기기 위해 쓰는 수법은 기발하다. 입주자 모집 광고를 해당 지역에 내지 않고 경기 남부 지역에 내는 것이다. 이로써 분양이 미달되면 잔여분은 고스란히 건설회사 몫으로 돌아온다. 물론 회사가 손을 써서 실제 입주자가 아닌 사람들로 채워놓기 때문에 겉으로는 감쪽같다.

대지를 매입한 후 안씨는 설계 회사를 직접 지정해 설계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이 설계를 ‘시공 회사 주문대로 그려주는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설계소장에게는 약 천만원의 뒷돈을 건넸다.

다음 문제는 관할 시청이다. 사업계획서를 넣고 얼마나 빨리 건축 승인을 받아내느냐가 수지타산에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의 관행대로 심의를 담당하는 시청 토목과·건축과·주택과·도시정비과·환경과·도시계획과·상하수도과에 각각 3백만원씩 건넸다. 다 통과됐는데 도시정비과에서 고도를 문제삼아 반려했다. 5백만원을 더 얹어 보내자 6개월 만에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관공서에서 먼저 손 벌릴 때가 가장 반갑다”

ㅅ건설이 인·허가 관청에 준 이 뇌물은 시작에 불과했다. 각 과별 책임자들에게는 1인당 2~5세대분의 분양 처분권을 준공 후 따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민영 아파트를 건설할 때 관행으로 정착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물론 이 약속은 지켜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준공검사 통과와 맞바꾸기 때문이다.

92년 봄 마침내 시공에 들어갔다. 원도급 업체인 ㅅ건설은 착공 전 이미 단종 전문 회사들에 토공·철근·콘크리트·목공 등 30여 가지에 달하는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 하청 업체에 주는 공사 대금(기성청구)으로는 건설업계 관행대로 3개월짜리 어음을 끊어 주었다. 물론 철근·목재·레미콘 등 모든 자재는 ㅅ건설이 직접 사서 하청 업체에 공급했다.

“인·허가 관청이나 감독관들에게 주는 돈이 다 공사비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손해를 안보기 위해서는 자재값과 인건비에 손댈 수밖에 없다. 건설 현장에서는 이것을 돈내기나 푼떼기라고 부른다. 적은 양의 자재로 최대한 빨리 공사를 마쳐 자재비와 인건비를 크게 줄이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부실 시공의 출발인 셈인데,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술적 방법은 다음과 같다. “당시 레미콘 단가는 ㎥당 4만2천원이었지만 품귀 현상으로 ㎥당 3만원의 웃돈을 얹어줘야 공급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KS제품보다 비품(BS품)이 더 많아 약 80 %를 비품으로 썼다. 관청과 짜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품업자가 KS품목 업자에게 송장(납품서)을 사서 품질검사에 통과했다. 감독 공무원들에게는 1인당 2백만원씩 별도로 건넸다. 철근도 마찬가지였다. 각층의 골조 속에 들어가는 철근 가닥 수를 30% 정도 줄여야 했고 간격도 5cm 기준을 10cm로 넓혔다. 감리 회사에는 따로 돈을 줘서 현장에 들르지 않도록 했다.

콘크리트 양생은 원래 24~48시간이 지난 후 거푸집을 뜯어내야 되는데 그것을 지키다 보면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일찍 뜯어내고 자연 통풍으로 말렸다. 원래 한여름에는 얼음을 넣고, 영하 날씨의 겨울에는 양생 공사를 중단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그대로 지키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공기 단축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전체 공사비에서 인건비는 15~20% 정도 차지한다. 시간급·능력급이 아니라 물량급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였다. 가령 문짝을 만드는 경우 누가 잘 만드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하루에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기준이다. 이렇게 하면 목수 3명이 해야 할 작업을 1명만 데리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은 인·허가 및 감독 관청과 짜고 이뤄진다. 우선 공사지역 관할 파출소장과 동장, 경찰서 지역담당에게는 시공부터 완공 때까지 월 백만원씩 정기 상납했다. 시청의 감독 공무원 몫은 더 컸다. 차량을 제공하고 주감독에게는 월 2백만원, 보조 감독 2명에게는 정기적으로 월 백만원씩 건넸다.

또 감독·인·허가 부서 책임자의 가족과 부하 직원들을 챙기는 기술직원을 따로 두었다. 기술직원이 맡은 일은 다양했다. 인·허가 공무원이 전·출입할 때마다 환영연과 송별연을 해주고 야유회나 체육대회는 물론 휴가 때마다 돈을 챙겨주는 것이다. 물론 이 때는 법인 카드가 사용됐다.

그밖에도 인·허가 및 감독 관청 상급자들 집으로는 모델하우스에 전시한 선택사양 가구나 가전제품을 들여보냈다. 공사장 인부들이 시청 간부들 집을 찾아가 개축·보수공사도 해주었다. 시청 부하 직원들의 암시로 손을 쓴 것이다. 이렇게 인·허가 관청으로 들어간 돈이 총공사비의 10%에 육박했다. 모두 공사비에서 나갔음은 물론이다.

“건축업자 처지에서는 관공서에서 먼저 손을 벌릴 때가 가장 반갑다. 시청의 한 국장이 찾아와 사슴피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기 때문에 5백만원을 준비해 따라갔다. 경기도 안성의 사슴목장이었는데 그 국장의 부친이 운영하고 있었다. 국장은 휘하 과장 8명을 데려왔다. 사슴 큰 것 2마리의 뿔을 잘랐는데 예상 외로 천만원이 나왔다. 몇 달 뒤 그 국장으로부터 한번 더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는 공기가 종반이라서 비용 지출이 많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원청업자 입장이라서 하도급업체 사장을 데려갔고, 사슴피값 천만원은 그가 떠맡았다.”

안씨에 따르면, 이런저런 뇌물 사슬에서 빠지는 관공서는 우체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관공서 외에 무시 못할 곳이 지역 언론이다. 물론 일이 터질 경우이다. 15층짜리 1개 동과 18층짜리 2개 동이 한창 올라가던 중 ㅅ건설은 ‘작은’ 사고를 만났다. 먼저 올라가던 15층 아파트의 3층 베란다가 떨어지면서 2층, 1층 베란다까지 연쇄적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물론 원천적 입막음을 해온 덕분에 큰 탈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알고 왔는지 지역 신문 기자가 찾아들었다. 결국 그 기자에게 3백만원이 든 봉투를 들려 주고서야 가까스로 무마할 수 있었다. “철근 간격을 넓히다 보니 기둥이 없는 베란다가 콘크리트 하중을 못이겨 떨어진 것이다. 즉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베란다 공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세대와 세대를 가르는 칸막이가 하중을 이기도록 하는 공법으로 즉시 바꿨다.”

이런 과정 끝에 착공한 지 1년여 만에 아파트는 완공됐다. 마지막 남은 것은 준공검사다. 검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원 설계대로 되었는지 여부이다. 그러나 이미 ‘보험’에 들었기 때문에 엄청난 하자가 없는 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법대로라면 준공 검사 필증을 받아야 입주가 가능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의 배려로 가사용 승인서를 받아 일단 입주시킨 후 몇 개월 만에 준공검사 필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안씨에 따르면, ㅅ건설이 아파트 공사를 수주한 때부터 준공 때까지 겪은 경험은 한국 건설업계의 `‘표준’이다. 작은 단독주택 신축에서부터 정부가 발주한 수조원대의 대규모 토목공사에까지 이 뇌물의 법칙이 관통한다. 사업 규모에 따라 액수와 전달 대상의 직위·높낮이·범위 등에서 정도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소규모 건축업을 하는 장아무개씨(52)의 경우 최근 한 동당 공사비가 3억원대에 이르는 단독주택 5개 동을 지으면서 총 1억2천만원 가량의 뇌물을 썼다. 소규모 건축이기 때문에 앞서의 ㅅ건설 아파트 공사에 비해 뇌물 액수는 작았지만 매 과정마다 챙겨야 될 곳은 똑같았다. 그는 뇌물이란 말 대신 극구 한국에서 건축업을 하자면 불가피한 ‘인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돈이 공사비에서 지출됐기 때문에 그만큼 건물이 부실하게 지어졌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장씨는 지금까지 모두 70여 채의 건물을 그런 식으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규모 관급공사의 뇌물 사슬은 보다 구조적이다. 특히 중·대규모 건설업체들은 정부 각 부처 고위층, 국회의원 일부, 대규모 관급공사 발주기관 간부 등에게 일상적으로 로비자금을 제공한다. 삼풍백화점 이 준 회장이 유력인사를 상대로 한 로비 명세서는 바로 이런 관리 유형의 하나이다.

큰 건설업체들의 일상적 로비와 관련해 ㅎ건설 영업부의 한 관계자는 “관급 공사 수주는 로비가 관건이다. 업체들은 정부 각 부처와 입법부·지방 관청을 담당하는 이사진을 구성해 두고 있다. 우리는 매출액이 더 많은 제조업 계열사 임원 수가 30여 명인 데 비해 건설쪽 임원은 70명을 넘는다”고 말한다.
입찰 때는 조직폭력배도 한몫

평소 뇌물로 관리한 유력 인사들로부터 정부의 각종 사업 정보를 미리 빼낸 건설사들은 치열한 입찰 경쟁을 뚫어야 한다. 입찰을 담당하는 곳은 조달청이다. 각 건설사들은 공사권을 따기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한다. 소형 공사는 발주 기관 책임자에게 미리 수억원대의 뇌물을 건네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따내기도 하지만 대형 공사를 수주할 때는 경쟁 업체를 물리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동원되는 것이 바로 담합이다. 가령 유력한 두 회사가 경합을 벌일 경우 한 회사가 소유한 여의도 땅을 다른 회사가 소유한 강남 땅과 맞바꾸는 조건과 같은 물밑 거래가 이뤄진다. 땅값 차액을 얻은 회사는 상대사가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낙찰되도록 들러리를 서주는 것이다. 물론 공사를 따낸 회사는 땅을 맞바꿈으로써 입은 손실 이상을 공사 과정에서 빼야 하므로 부실 시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중·소규모 관급 공사 입찰에는 난립하는 건설회사 사이에 조직폭력배가 해결사로 개입하는 일도 허다하다. 국내 3대 폭력조직 중 한 곳에 속한 한 조직원은 자기들이 입찰과정에 개입하는 명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조달청이 입찰공고를 내면 우리가 난립하는 건설회사의 질서를 잡기 위해 업무상무를 파견한다. 사전에 경쟁 건설회사 간부들을 불러모아 낙찰 대상 업체를 자율적으로 선정하도록 유도한다. 당첨될 회사는 ‘신랑’으로, 들러리를 서주는 회사는 ‘스키야이’로 부른다. 신랑이 낙찰 예정가의 99%를 쓰고 스키야이가 110~120%를 쓴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사례금만 받고 물러선다.”

조직 폭력이 입찰에 개입하는 것을 범죄로 간주하고 수사를 펴온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이를 만성화한 입찰 비리의 전형이라고 표현한다. “깡패들이 시공권을 따주고 받는 자금은 총 공사비의 3%에 달한다. 이런 방법으로 연간 수백억원이 조직폭력계에 흘러들고 있다. 폭력배들은 또 개입한 대가로 대단위 아파트단지 창틀이라든지 샤시·변기 따위의 납품권을 얻은 뒤 이를 다시 20억~50억원씩 받고 단종 회사에 넘긴다. 그래서 요즘은 건설 폭력배가 조직 세계의 우상이 되어 있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과 폭력배 사이에 이런 이권이 많이 오가는데, 그 기반으로 종합건설회사까지 차린 조직도 등장했다.”

건설회사들이 이같은 각 단계의 비리 사슬마다 안전 장치를 해두는 것은 물론이다. 공사 정보를 빼내주고 수의 계약을 도와준 정부 부처 또는 발주기관 공무원이 만일 감사에 적발돼 파면당할 경우에는 회사 간부로 채용해주는 것이 관행이다. 파면되지 않을 경우에는 전관 예우라 해서 정식 이사로 영입하고, 파면 등 불명예 퇴직할 경우에는 이사대우로 평생을 보장하지만, 회사 직제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는 방식을 취한다.

조직 폭력배를 업무상무(등재이사)로 쓰는 경우에도 안전 대비책은 있다. 만일 입찰 부정 사실이 발각돼 건설회사가 뇌물 제공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업무상무는 실제 임원 대신에 수갑을 차는 역할까지 맡는다. 건설회사는 이 때 물론, 업무상무와 배후의 폭력 조직에 대해 사후 보장을 해준다.

물론 건설업자들이 원래 부실시공을 목적으로 비리 사슬을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오랜 관행·법·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건설업계와 행정의 도덕불감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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