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 실태, 공표하라
  • 韓相範 (동국대 교수·헌법)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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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후손 상속 ‘부당’…민간 차원 조사위원회 결성이 급선무
친일파 민족 반역자인 이완용과 송병준의 재산을 그 후손이 찾겠다고 소송을 했다가 세인의 지탄을 받았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그런데 그 후손이 소송을 통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다시 찾기 시작했고, 여기에 토지 브로커를 비롯한 사기꾼까지 몰려들어 한몫 잡겠다고 하는 지저분한 흥정으로 옥신각신하고 있다.

또 매국노의 후손 가운데 일부는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선대의 행적을 조사해 선각자로 미화할 거리를 찾아서 자기 조상을 탁월한 외교가나 개화 애국 인사로 부각하려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일본의 국수주의·군국주의·패권주의 부류의 인사와 단체가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작년에 광복 50주년을 보내면서 일제 잔재를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95년 10월26일 광복운동자 단체가 주관해서 일제 잔재 청산 학술회의를 개최하였으나 신문이나 방송은 보도 시늉을 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작년 11월29일에는 독립운동가 유족회가 주관해서 ‘민족 정통성 회복 특별법’이 정기 국회 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지만 언론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당시 노태우 부정 축재 사건이 뜨거운 뉴스가 되었던 이유도 있기는 하다.

그 와중에 민족을 팔아먹은 대가로 착복한 재산 수천억원이 지금까지 후손에게 물려지며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부작용을 끼치도록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외치고 있다. 일제 잔재 청산에 실패해서 결국 그들 세력이 주도한 반민주적 지배 구조가 군사 정권을 잉태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같은 단군 이래 최대 도적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과거 심판 않는 과거 청산 없다

매국노가 민족을 배반한 대가로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일지라도 사유 재산이므로 보호해야 한다느니, 소급 입법으로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느니 하는 법리를 내세우고, 그 법리로도 안될까 봐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고 용서하라느니 하는 논리를 펴는 것이 친일파 쪽의 궤변이다.

어느 민족이고 국가이고 간에 민족 반역자와 인륜·인도에 반하는 자의 재산은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가 없는 현재가 존재할 수 없는 만큼 과거에 대한 심판 없이 과거 청산이란 없다.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데, 언제 그들이 용서를 빌면서 참회하고 속죄하려는 성의를 보였는가.

친일파 민족 반역자의 재산이 보존될 수 있는 잘못된 풍토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민족 정기가 땅에 떨어졌다. 민족을 반역하고도 입신 출세와 부귀영화가 보장되어 사회 기강을 타락시키고, 그 재산을 거점으로 삼아 반민주적 세력이 판을 치게 되고 온갖 사기 협잡꾼이 들끓어서 사회가 이 꼴이 되지 않았는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민족 정통성 회복 특별법’이 바로 친일파가 매국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자고 하는 법안이었는데, 이 법안에 찬성한 의원은 분명히 과반수가 넘었다. 그런데도 국회 분위기는 막상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소극적이고 나아가서 부정적이었다. 소신도 부족하고, 한편 친일 세력의 위세에 눌리기도 하고, 그 법안이 몰고 올 파장에 불안해 하다 보니 그 모양이 되었다.

아무튼 이제라도 이 법안을 다시 부활시키든가, 당장은 안되더라도 민간 차원에서 ‘친일 매국노 부정 재산 환수를 위한 조사위원회’(가칭)를 구성하여 매국노와 그 후손의 재산 실태와 현황을 조사 공표해서 브로커와 사기꾼이 날뛰는 데 제동을 걸어야 한다. 매국노의 재산은 민족과 국가의 재산을 부정하게 갈취한 것이기 때문에 납세자인 국민 자신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므로 그에 대한 법적 구제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러한 재산이 친일파나 사기꾼의 먹이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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