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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매국노의 후예 2조원대 땅 찾기

송병준 증손, 한국·일본에서 상속·소송 추진

丁喜相 기자 ㅣ 승인 1996.01.2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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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읍에서 이천 방면으로 난 42번 국도를 따라 승용차로 30분쯤 달리다 보면 왼편 산자락 양지바른 산비탈에 천여 평의 묘지가 펼쳐진다. 한눈에 과거 명문 세도가 선영으로 보이는 커다란 봉분 무리이다. 그러나 이곳 묘지들에는 어디에도 주인을 알리는 표식이 없다. 손질이 잘된 것으로 보아 방치된 묘지는 분명 아니다.

이곳이 바로 구한말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며 한일합병에 앞장섰던 송병준과 그의 아들, 손자가 묻힌 곳이다. 인근 부락 토박이 노인들이 전하는 말로는 광복 전까지 이 묘지에는 진입로에서부터 신도비가 죽 늘어서 있었다. 묘지 앞도 요란한 비석·상석 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복과 동시에 신도비들은 흥분한 현지 주민들에게 파괴됐고, 비석과 상석은 모두 땅에 묻혔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묘지 한구석에는 세월에 씻긴 비석 귀퉁이가 삐죽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50년이 지난 지금 ‘매국노 송병준’은 이렇게 잠든 채 세월의 흐름 속에 차츰 잊혀져 왔다. 그러던 그의 이름 석자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생전에 매국한 대가로 전국에 걸쳐 조성했던 2천여만 평 땅과 함께 떠오르고 있다.

2년6개월 전 <시사저널>은 한일합병의 주역 이완용이 조성한 땅을 그의 증손 이윤형씨가 연쇄 소송을 통해 상속해 나가는 사실을 추적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송병준 후손 역시 소송을 통해 땅을 찾아 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소송 비용 수백억 댈 물주 물색

그러나 송병준의 증손 송돈호씨의 땅 찾기는 이완용 땅 찾기에 비해 다소 다르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2월의 일로, 충주에 있는 장애자 재활단체인 숭덕원(이사장 김건준)측이 전격적으로 송병준 명의의 재산을 송돈호씨로부터 기증받았다고 공개했던 것이다.

이 짤막한 뉴스는 며칠 동안 신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2년 전 이완용 후손의 재산 찾기에 대한 격앙된 여론에 비하면 다소 대조되는 반응도 있었다. 매국노 재산을 처리할 새로운 해법이 아니냐 하는 말까지 나왔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지난해 12월 초, <시사저널> 편집국에는 이색 문건이 하나 날아들었다. 서울의 토지 브로커 세계에 나돌던 이 문건은 8천억원대에 달하는 송병준 명의의 땅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경비 5백억원을 댈 물주를 찾는다는 서류였다. 취재진은 이를 단서로 약 1개월간 추적한 끝에 송병준 후손의 땅 찾기가 당초 숭덕원이 발표한 ‘기증’이 아니라 토지 브로커들의 이권놀음으로 전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의 땅은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접경 지역 1백20만평이다. 고양시청과 마포구청 지적과 서고에 보관된 이 땅의 최초 기록은 ‘대정 3년 2월25일 경성부 남산정 송병준 査定’이라고 적혀 있다. 1914년 2월25일 서울 남산에 사는 송병준이 토지조사 사업에 의해 소유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 뒤 이들 땅은 일본인에게 매매됐거나 자연인 명의로 넘어갔다가 대부분 국유지로 수용돼 서울시·건설부·국방부 등 국가 기관이 사용하고 있다. 현장을 둘러본 결과 아직 골재 야적장 등 나대지로 남아 있는 곳도 많았다.

바로 이 지역 땅 가운데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80만평을 토지 브로커들이 주동이 돼 송병준 증손 송돈호씨와 소송을 통해 찾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마포구청 지적과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토지 브로커들이 수도 없이 찾아와 송병준 명의의 땅을 조사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라고 말했다.

취재진을 자기 집으로 초청한 송돈호씨는 이 땅에 대한 소송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 소송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토지 브로커들은 80만평에 달하는 이곳 땅 시가가 8천억원대에 이르므로 승소 후 나누는 조건으로 수백억원대의 소송 및 등기 비용을 제공할 물주를 찾아나서고 있다. 물론 소송 준비 서류에는 송돈호씨의 ‘기증 동의서’가 포함되어 있다. 숭덕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세상에 알려진 ‘기증’은 이미 철회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송돈호씨는 “숭덕원 기증은 철회했지만 다른 장애자 단체와 독립유공자유족회에서 쓰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 관계자들에게 위임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독립유공자유족회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결국 해당 단체를 대표하지 않은 토지 브로커들이 편법 ‘기증서’를 가지고 소송을 준비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한 간부는 “내사한 결과 이완용·송병준 후손의 땅 찾기에는 토지사기단 중에서도 노련한 팀들이 뛰어들어 있다. 기증 받는다는 자선사업 단체 쪽에도 사기꾼이 끼여들어 이면 계약을 맺으려 한다. 기증 자체가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토지 브로커들의 ‘조직적 사기’ 가능성

그에 따르면 이완용과 송병준 후손들의 재산 찾기는 토지 브로커들이 낀 ‘조직적 땅 사기’로 여론과 세금 문제 때문에 자선단체에 기증 동의서를 써주지만 이면 계약으로 승소 후 토지의 40~50%는 후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토지 브로커 세계를 수소문한 끝에 송병준 명의의 땅 찾기에 뛰어든 한 브로커를 만났다. 인천에 사는 이 아무개씨로, 그는 몇년 전 이완용 땅 찾기에 나섰다가 사기죄로 2년형을 살고 나온 경력이 있다. 이씨는 송병준 땅 기증 소동과 관련해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완용 증손 이윤형씨의 땅 찾기가 보도돼 여론이 나빠지자 토지 브로커들이 고안해 낸 방법이 ‘기증’이다. 그 전에는 이윤형씨든 송돈호씨든 아무 거리낌없이 소송을 오랫동안 벌여왔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송병준 명의의 토지문서(국립기록보존소 토지조사부)와 지적도 사본을 토대로 전국에 걸쳐 있는 송병준 명의의 토지 내역을 알려 주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및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 일대 23필지 97만평 △인천시 북구 산곡동 13,15번지 외 5필지 30만평 △강원도 금화군 금란면 갈현리 산 22번지 외 11필지 임야 2백12만평 △전남 보성군 율어면 소재 임야 2백40만평 △경남 밀양군 초동면 소재 임야 79만평.

이씨에 따르면, 이들 땅 가운데 송돈호씨가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은 지난 20년 이내에 국유화한 땅(소유권원인무효소송)과 선대 이름 그대로 남아 있는 땅(소유권확인소송)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토지 브로커들은 수천만평 중 그런 대상을 뽑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브로커들이 매국노 땅 찾기에 부쩍 관심을 보인 데 대해 그는 “토지조사부는 오래 전부터 복사해 두었지만 과거에는 땅값이 싸 별 재미가 없다고 묻어놓고 있다가 6공화국 이후 전국의 땅값이 오른 뒤 너도나도 달라붙게 되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 이완용 후손 이윤형씨의 재산 상속 소송이 보도되자 힌트를 얻은 브로커들이 땅 문서를 들고 송병준 후손 송돈호씨를 찾아가 소송을 부추긴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송돈호씨는 실제로 80년대부터 증조부가 조성한 땅을 상속하기 위한 소송에 나서 승소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90년 8월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에 있는 시가 1억여 원 상당의 임야 천평을 소송을 통해 차지했는가 하면, 93년 12월에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일대 대지 천여 평에 대해서도 승소 판결을 받았다. 관전리 이장 황윤길씨(45)는 이와 관련해 “93년 초부터 서울에서 토지 위치며 값을 묻는 사람들이 수 차례 와서 조사해 가더니 순박한 농민들이 수십 년 동안 이용하던 땅이 하루아침에 송병준 후손에게 넘어갔다. 일제 때 이 근처가 교통의 요충지라 금싸라기 땅이었기 때문에 송병준이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들었다”라고 전한다. 반면 송돈호씨는 지난해 8월31일에는 인천시 북구 산곡동 산 20번지 6천2백 평을 국가가 반환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일도 있다.

최근 들어 송돈호씨는 일본에 있는 송병준 명의의 땅을 찾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확인됐다. 친일과 매국의 대가로 일본에서 불하 받은 송병준의 땅은 주로 홋카이도와 도쿄 시내, 야마구치 현 일대에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내역을 살펴보면, 일본 홋카이도 천상군 웅우정 대자 48번지 목장 7백50만평, 야마구치 현 추군 일대 6만9천여 평, 도쿄 조우 지역 3천9백여 평 등이다. 이들 땅과 관련해 앞서의 토지 브로커는 “송돈호씨가 2년 전부터 서울 마포에 사는 재력가 박경석씨로부터 도움을 받아 계속 일본을 오가며 현지 변호사와 상속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검토 결과 홋카이도 땅은 찾기 어렵지만 야마구치 현 땅은 소송을 통해 상속이 가능하고, 도쿄 땅 3천9백평은 평당 3천만엔에 거래되는데 소송 없이도 변호사가 상속 확인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상태이다. 현재 이 땅은 옴진리교가 점유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그는 이밖에도 도쿄 시내에 이완용과 송병준 공동 명의로 된 땅 수십만 평이 있어 국내 토지 브로커들이 일본에 자주 오간다고 밝혔다.
돈되는 일에는 물불 안가린 송병준

이같은 내용에 대해 당사자인 송돈호씨는 일본 변호사와 상의한 결과 증조부 명의의 일본 땅을 한국인인 자신이 법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땅 내역에 대해서는 토지 브로커의 얘기를 믿지 말라고 하면서도 만일 증조부 명의의 땅을 상속한다면 교포를 위한 사업에 쓰겠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69쪽 인터뷰 참조). 어쨌든 송돈호씨의 선대 땅 상속 작업은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송병준은 당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토지를 조성했을까. 역사 기록은 친일의 도가 더해 갈수록 재산에 대한 송병준의 집착도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황 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공사 데라우치의 통역관으로 조선에 나온 송병준은 군납 상인으로 이권을 챙겼다. 을사조약 후 송병준은 그의 후원자이던 민영환이 자결하자 그의 재산 5백석지기도 갈취했다’라고 나와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인천에 거주하는 민영환 선생의 손자 민병덕씨는 “조부님이 순국하던 당시 세상 일을 모르시는 조모님은 일곱 살, 다섯 살 난 제 부친과 숙부를 데리고 사셨기 때문에 조부님 밑에 있던 송병준이 재산을 갈취해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토지조사 사업 이전 일이니 지금은 어떻게 대응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완용과 마찬가지로 송병준도 한일합병의 대가로 백작(처음에는 자작) 작위와 은사금 15만원을 하사받았다. 특히 전국 구석구석의 토지대장에 그의 이름을 새겨넣은 때는 그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오로지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던 1910~1925년이다. 이 시기는 일제가 토지조사 사업과 임야조사 사업을 집중적으로 펼쳐 수많은 민간 토지를 총독부 소유로 했고, 그 땅을 이완용·송병준 등 합병 공신들에게 대거 불하한 때이다. 특히 토지조사 사업 당시 송병준은 황실 및 국유재산 조사국 운영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는 이 기간에 국토의 대부분을 동양척식회사 소유로 넘기면서 막대한 땅을 사유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속 허가는 반역 행위 인정하는 것”

1925년 송병준이 사망한 뒤 모든 재산과 작위는 그의 아들 송종헌에게 상속되었다. 송종헌은 물려받은 재산을 이용해 치부를 해나가다 광복 뒤 반민특위에 체포됐다. 그러나 이미 광복되던 해 그가 살던 용인군 일대 땅은 모두 처분해 실속을 챙긴 뒤였다.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풀려나온 그는 49년 사망했고, 나머지 가족은 재산권 행사를 못한 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광복 직후부터 매국노·친일파의 재산을 국가가 몰수해야 한다는 민족적 요구가 거셌지만 이승만 정부가 적산 몰수 대상에서 이 부분을 제외했기 때문에 각지에 묻힌 송병준의 재산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토지 사기꾼들의 추악한 이권 잔치 마당이 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송돈호씨는 현재 자신이 추진하는 상속 작업이 토지 사기꾼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재산을 찾으면 사리사욕보다는 사회적으로 뜻있는 일에 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신용하 교수(서울대·사회학)는 “매국 범죄의 장물을 찾겠다는 것과 좋은 일에 쓰겠다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후손의 정당한 경제 활동 대가는 당연히 보호해야 하지만 매국 대가에 대한 상속 허가는 설사 그가 좋은 일에 쓰더라도 선대의 반역 행위를 사회와 국가가 인정하는 셈이다”라고 비판한다. 민족 정기는 매국 대가를 국가가 환수하는 조처 자체에서 세워지는 것이지 그 땅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친일파 자손은 자숙하고, 국가는 시급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딴판으로 흐르고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5,6공 범죄가 단죄되는 이 시점에도 일제에 나라를 판 대가는 여전히 상속이 가능할 뿐 아니라 토지 사기단의 이권 무대로 방치되어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러고도 역사는 바로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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