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 국민 투표 하라” 63.2%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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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3대 국정 현안’ 여론조사/“아 파트 분양원가 공개 찬성” 77.9%
자연계나 인간계나 이상고온 현상이다. 탄핵 심판도, 선거도 모두 끝났건만 연일 끊이지 않고 발발하는 초대형 이슈로 온 나라가 후끈 달아올라 있다.

재·보선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불거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은 여당 지지율을 곤두박질하게 만들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행정수도 이전 논란 또한 이른바 천도(遷都) 시비로 번지며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키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정가의 신데렐라가 된 이해찬 총리 지명자는 6월24~2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국론 분열을 걱정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논쟁이 필요한 시기, <시사저널>이 이들 3대 현안을 놓고 긴급 여론조사를 해보았다.

■ 이해찬 총리 지명, 긍정·부정 엇비슷

김혁규도 아니요, 문희상·한명숙도 아니었다. 언론의 온갖 추측성 보도를 비웃듯 지난 6월8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열린우리당 의원을 총리 후보로 전격 지명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 이번 인선이 ‘바람직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44.2%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39.3%)보다 다소 많았다.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여야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컸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이번 인선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인선이 바람직하다는 여당 지지자는 58.6%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당 지지자(25.4%)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한나라당 지지자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 지지자 중 이번 인선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자는 55.1%로, 바람직하다(33.4%)는 응답자보다 21.7% 포인트 가량 많았다. 근소한 비율이지만, 민주노동당(긍정 41.0%, 부정 47.4%)과 민주당(긍정 41.0%, 부정 51.3%) 지지자 중에서도 이번 인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더 많았다.

단 인선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와 관계없이 응답자 10명 중 6명(60.5%)은 이해찬 총리후보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인사청문회 특위 구성을 마친 여야는 △도덕성 △전문성 △국정수행 능력으로 나누어 이총리후보의 자질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총리후보가 교육부장관 재직 시절 범한 정책 과오를 집중적으로 따져 묻겠다고 예고한 한나라당은 한국교총 회장 출신인 이군현 의원, 교육부 교육정책심의회 위원을 지낸 이주호 의원 등 ‘교육통’들을 특위에 집중 배치했다.

이들 야당 의원의 주장인즉 이총리후보가 교육부장관 때 검증되지 않은 각종 정책을 밀어붙여 교육계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국민은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을까?

일단 야당이 ‘교단 내 갈등을 조장한 대표적 사례’로 지목한 교원 정년 단축 정책에 대해 일반의 반응은 오히려 이총리후보 쪽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원 정년 단축 정책이 바람직했다는 응답자는 53.5%로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응답자(41.3%)에 비해 12.2% 포인트 많았다. 특히 화이트칼라(54.7%), 가정주부(58.7%), 학생층(57.8%)에서 우호적인 답변이 많았다.

이에 비해 이른바 ‘이해찬 세대’의 학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떨어진다는 학력 저하 논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악기 하나만 잘 다루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까지 과장 선전되었던 특기·적성 교육이 이해찬 세대의 학력을 저하시켰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자는 45.8%,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40.9%였다. 특이한 것은, 학생층(53.0%)에서 학력 저하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유난히 높게 나온 점이다. 이밖에도 서울 지역 거주자(50.9%) 및 대졸 이상(51.3%) 고학력자에서 학력 저하 주장에 동의한다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미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추진되고 후보지가 발표되는 상황이건만 근원적인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다는 응답자(48.0%)와 반대한다는 응답자(50.7%)는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찬성 쪽은 지역간 균형 발전(55.4%) > 수도권 과밀화 해소(34.2%) 필요성을 찬성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행정수도 이전이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는 응답은 3.3%였다. 그런가 하면 반대 쪽은 ‘엄청난 국가 예산이 소요’(73.6%)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목했다. 이밖에도 응답자들은 부동산 투기 과열 우려(14.8%)> 통일 이후 대비(7.9%)> 안보상의 불안(2.8%) 등을 이전 반대 이유로 꼽았다.

지역 별로 보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응답자는 수도권·영남 지역 거주자에 단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서울 65.0% > 인천/경기 60.6% > 대구/경북 56.5% > 부산/경남 56.3%). 이에 반해 충청·호남 지역 거주자는 각각 85.4%와 64.9%가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수도권 거주자가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대선 전 이 공약이 제기되었을 때부터 일관되게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대선 이후 점차 좁혀지는 듯했던 이견이 이른바 천도 논란 이후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것.

<시사저널>의 여론조사는 야권과 일부 언론이 집중 제기하는 천도 주장이 일반에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방식의 수도 이전은 행정수도 기능만 이전하는 게 아니라 국가 주요 기능을 이전하는 사실상 천도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53.8%)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39.0%였다.

응답자들은 나아가 행정수도 이전이 천도 논란을 낳을 만큼 대규모로 이루어지기보다 최소 규모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바람직한 행정수도 이전 방식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64.9%는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 기구만 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반해 ‘입법·사법 기관 등을 포함한 주요 국가기관을 대부분 이전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25.9%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응답자(63.2%)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자(34.7%)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충청권 다음으로 수도 이전을 지지한 호남 지역에서도 국민 투표 주장 동의자(59.6%)가 반대자(36.8%)보다 22.8% 포인트 많았다(단 충청권 거주자만은 44.7% 대 54.4%로 국민투표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백약이 무효다. 대통령이 앞장서 “시장 원리에 맞지 않고, 경기 회복과 내수 진작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라고 설득했어도 응답자의 절대 다수(77.9%)는 여전히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공개해서 안된다는 응답자는 15.8%에 불과했다.

이 문제에서만큼은 보수·진보 구분도 별 의미가 없다. 민주노동당 지지자 중 원가 공개 찬성자(86.5%)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지사.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시장 기능을 더 강조해 온 한나라당 지지자(77.1%)가 열린우리당 지지자(73.8%)보다 원가 공개를 더 많이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처한 가치 체계의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개하되 확실히 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곧 원가 공개 찬성자들은 ‘공공 부문에 한해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32.2%)는 절충안보다 ‘민간 부문까지 포함해 분양원가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67.0%)는 원칙론을 두 배 이상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이 이렇듯 강경하다 보니 정부·여당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원가 공개’가 아니라 ‘원가 공개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여당의 공약 내용이었다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지만 때는 늦었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꾸준히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정면 반발하는 등 당·청간 기류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지난 6월13일 “여론을 수렴한 후 (분양원가 공개에 관한)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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