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홍콩 꿈꾸는 상해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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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상업·금융 도시’ 옛 명성 회복 나서…3천여 업체·8조원 유입
‘중국의 2천 년 역사를 보려면 서안(西安)을 보고, 천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北京)을 보라. 그러나 중국의 백년 역사를 보려면 상해(上海)를 보라’는 말이 있다.

확실히 상해에는 수백 년 넘게 각 왕조의 수도였던 서안(옛 지명은 장안)과 북경의 엄청난 문화 유산에 버금가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서양인들이 회고하는 제국주의의 영화일 수도 있고, 중국인들이 자부하는 개혁과 개방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둘이 혼합된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은 일찍부터 이렇듯 신비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사악한 상해의 분위기를 주목했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젊은 시절 주연했던 <상하이 익스프레스>에서부터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태양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상해를 주무대로 숱한 영화가 제작되었다.

1백50여 년 전부터 경제 중심지

이런 영화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소여의 모험>이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당시의 보통 미국인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듯, 상해 사회를 고스란히 재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상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중요한 국제 감각의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상해를 가로지르는 황포 강 끝자락 서편 제방 외탄(外灘)은 여전히 ‘상해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서양인들 역시 이곳을 가리키는 말로 제방이라는 뜻을 가진 번드(bund)를 고유 명사처럼 사용해 왔다.

1백50년 전부터 아시아 최고의 금융·상업 중심지였던 이곳의 거리 풍경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실재했는지 여부는 의심스럽지만, 중국인들이 ‘개와 중국인의 출입을 금함’이라는 팻말이 있었다고 믿고 있는 작은 공원 역시 건재하다.

그러나 이 거리의 건물들 주인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이름처럼 바다의 하구였다가 천여 년 전 솟아올라 형성된 이 조그만 포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40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부터였다. 전쟁 결과 영국과 맺은 남경조약에 따라 그 전부터 면방업 중심지로 발전해 오던 이 항구 도시가 서양에 완전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개방 후 상해는 아편 거래를 포함한 상업과 금융 기능이 빠른 속도로 발달했다. 1843년 영국 영사들이 이 곳에 도착한 이래 차례대로 중국의 법률이 닿지 않는 일본·미국·프랑스의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아편전쟁 당시 30만이 넘지 않았던 인구는, 상해가 국제적인 메트로폴리스가 되면서 급격히 증가해 34년에는 3백30만명으로 늘어났다.

상해는 중국 산업 생산의 5분의 1을 담당했고, 대외 무역의 3분의 2가 상해의 포구를 거쳐갈 정도가 되었다. 전성기였던 이 시절 외탄 지역에는 1백80여 개에 이르는 금융기관이 들어섰을 정도였다. 그러나 49년 공산당 정부가 상해를 점령하고 나자 중국계 은행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 금융기관이 철수해 버렸다.

79년 개혁과 개방이 시작된 이래 다시 이곳을 찾는 외국 금융기관이 하나 둘씩 늘어, 지금까지 65개가 돌아왔다. 일정한 비용만 내면 건물을 옛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중국 정부의 정책도 이 추세에 한몫 했다.

외탄이 상해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한다면, 황포 강을 사이에 두고 외탄과 마주보고 있는 포동(浦東) 지구는 상해의 미래를 짐작케 해주는 곳이다. 90년까지만 해도 진흙땅이었던 이곳에는 아시아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만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95년 완공된 아시아 최고(最高) 동방명주탑(468m)을 필두로, 그 주변에 88층짜리 사무용 건물이 완공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일본 자본으로 건설되는 1백2층짜리 모리 빌딩이 상량식을 가졌고, 98층짜리 중국 무역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비록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와 경쟁하고 있기는 하지만, 머지 않아 이 지역은 높은 빌딩이 가장 많이 밀집한 세계적 지역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흔히 듣는 소문은 몇층짜리 빌딩이 새로 들어선다는 것인데, 가장 최근의 소문 가운데는 한국 기업이 95층짜리 빌딩을 짓는다는 것과 1백16층짜리 빌딩이 들어선다는 것도 있다.

금융 기관 3백40개…계속 늘어나

90년 중국 정부가 상공업 중심지로 개발하기로 계획한 이래 이 지역은 9개 구역 별로 특화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 포동 지구 가운데서도 고층 빌딩이 가장 많이 밀집한 외탄의 맞은편은 중국 내에서 유일한 금융무역 개발구다. 현재 세계적인 은행 36개를 포함해 금융기관이 3백40개 들어섰다. 포동 지구 전체에는 3천여 업체와 8조원 가량의 자금이 유입되었다.

1천4백만 인구를 자랑하는 상해의 꿈은 단순히 옛 영화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 수준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 현재의 홍콩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것이 목표다. 이 목표가 터무니없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홍콩 지역에 들어선 숱한 외국계 기업의 아시아 지역 본사들은 중국과 사업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차라리 상해로 옮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렇게 해서 잃게 될 외국 기업보다 본토에서 홍콩특별행정구(HKSAR)로 넘어갈 중국 기업의 수가 더 많을 것이므로 홍콩이 선두 자리를 상해에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기는 한다.

도시와 관련된 격언 가운데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북경에서 힘 있다 자랑 말고, 광동에서 돈 있다고 자랑 말라. 상해에서는 똑똑하다고 나서지 말라.’ 그만큼 상해에는 인재가 많다는 것이다.

강택민 총서기와 주용기 부총리를 포함해 상해가 배출한 인재들은 현재 중국의 지배 계층을 형성했다. 흔히 ‘상해방’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경제 우선주의와 신중한 개방 정책을 옹호하는 개방파의 상징처럼 도드라졌다.

이들이 계속 중국을 주도하고 아시아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하자. 앞으로 ‘백년, 아니 그 이상 아시아의 미래를 보려거든 상해를 보라’는 얘기가 곧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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