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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설 기는 이자, 펄펄 나는 창업

이문환 기자 ㅣ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8.2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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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시대 재테크 백태/돈 빌려 줄지어 '개업'…
제2금융권 예금·해외 투자 '봇물'


지난 8월7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현대 스위스 금고'는 예금 계좌를 개설하려고 몰려든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대기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들은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적어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신용금고가 고객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는 때는 망해서 문을 닫는 경우밖에 없다'는 업계 속설에 비추어 보면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모여든 고객들의 면면도 5억∼10억 원에 이르는 '돈뭉치'를 싸들고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에서부터 강남권의 부유층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영업부 고기연 부장은 "손님 중에는 은행쪽 추천을 받고 온 은행 VIP 고객도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이들이 현대스위스금고로 몰려든 이유는 단 한 가지. 금융계 최고 수준의 예금 이자를 받을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지난 7월부터 금융계에서 가장 높은 예금 금리 8.6%(1년 만기 정기예금 기준)를 제공한 스위스금고는 8월8일부터는 금리를 7%대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저금리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재테크 방식이 안정 지향형에서 위험 감수형으로 바뀌고 있다. 은행의 '짠 금리'를 견디다 못해 은행보다 덜 안전하지만 이자를 많이 주는 투신사·신용금고 등으로 눈을 돌리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은행에 예금하는 것만으로는 돈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는 '실질 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 8월9일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5%대 중반이던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도 5%대 초반으로 낮추어질 전망이다. 이자소득세(16.5%)를 제하면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자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투신권에 들어간 자금은 13조3천억원. 반면 같은 기간 은행권에 유입된 자금은 2조8천억원에 불과했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예금 상품 만기가 끝나자마자 금리를 더 주는 제2 금융권으로 옮기는 고객이 많다. 막을 방법이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저금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재테크도 '세계화'한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저금리 시대를 맞아 한국의 선배뻘인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 '제로 금리'에 가까운 일본의 금융 환경에서는 자국 시장 투자만으로 수익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은행 예금을 인출해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한국투신이 판매하기 시작한 'UBS 해외 투자 펀드'는 미국·일본·유럽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유명 기업·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간접 투자 상품인데, 증시 침체에도 불구하고 발매한 지 3주 만에 1백50억원어치가 팔렸다.


저금리 시대를 창업으로 돌파하려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 '창업 비수기'인 여름철이지만 창업 시장의 움직임은 활발하기만 하다. 개인 창업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 지원센터'가 지난 7월 접수한 상담 건수는 2만5천1백6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 17%가 늘어났다.


1998년 외환 위기 때 일어난 '창업 붐'이 주로 퇴직자·실직자의 생계형 창업이었다면, 최근 창업 경향은 규모의 대형화와 여성 창업자 증가로 요약된다. 우선 창업 자금이 예년에 비해 평균 2천만∼3천만 원 늘어났다. 이는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은행에서 싼 이자로 창업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된 덕분이기도 하다. 지난 6월 인천시 부평구에 장어구이집을 개업한 이준만씨(47)가 대표적인 예. 직장 생활과 소규모 자영업을 해 오면서 여윳돈 9천만원을 모은 이씨는 은행으로부터 6천만원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이씨는 "이자에 비해 이익이 훨씬 많이 나오니까 은행 대출을 받았다. 요즘 9천만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가 얼마나 나오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잘 알려진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 등에 자본금 5억∼10억 원을 들이는 기업형 창업은 대형화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창업자들의 특성은 낮은 은행 금리에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안정성을 추구하는 '저위험·고수익' 추구자라는 점. 그래서 이들은 업체 지명도와 수익성 등을 깐깐하게 따진다. (주)롯데리아 광고판촉팀 신대식 주임은 "사업성이 좋다고 판단한 이들 중에는 신규 점포 2개를 동시에 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전했다.


여성 창업의 경우 희망자 숫자나 규모 면에서 남녀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 취업·창업 컨설팅 업체인 '사비즈' 김희정 대표는 최근 여성 창업 열기를 가리켜 "2∼3년 전 IMF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창업 자금이 남성 수준으로 커졌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 창업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먹는 장사'만 해도 샌드위치 전문점·테이크 아웃 커피숍·반찬 편의점 등 틈새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업종들이 나오고 있다.


늘어난 여성 창업자, '밤장사'도 안 꺼려


예전에 기피 대상이었던 치킨점·참치 전문점 등 '밤장사'가 잘 되는 업종에 손 대는 여성도 늘어나는 추세다. 창업 컨설팅 업체인 한국창업전략 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여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던 남편들이 이제는 부인이 사업을 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는 생명보험사·은행의 경쟁력을 시험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특히 국내 생명보험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외환 위기 시절 생보사들의 든든한 돈줄이 되어 준 저축성 보험은 이제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시중 금리가 20%를 웃돌던 고금리 시대에 8∼9% 금리를 보장하며 저축성 보험을 유치했는데, 시중 금리가 추락하자 역마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국내 생보사들이 입은 역마진 손실은 2조5천억원이다.


은행으로서도 저금리 시대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예금을 받아 이윤을 붙여 대출하는 전통적인 영업 방식만으로는 살아 남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증시가 침체하고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자산을 운용하기도 만만치 않다. 한 시중 은행의 여신 관계자는 "거래처 이탈을 막기 위해 마진을 0.1%라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 금리를 낮추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은행이 살아 남으려면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수익성 위주 경영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들이 은행이 찾아야 할 돌파구로 꼽는 것은 수수료 수입을 높이고 특화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외국인만을 상대로 영업하는 주택은행 이태원지점(38쪽 상자 기사 참조)이나 프라이빗 뱅킹(39쪽 딸린 기사 참조)이 그러한 예이다.


저금리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금리 양극화'이다. 신용도가 좋은 개인과 우량 기업들은 저금리 혜택을 받는 대표적인 수혜자들이다. 최근 이들 '우량 고객'들은 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고금리로 빌렸던 대출금을 갚아가며 대출 이자를 줄이는 '빚테크'를 하고 있다.


신용 좋은 개인·기업, 대출 받아 '빚테크'


반면 신용이 나쁜 이들과 영업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들은 혜택은커녕 이전보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할 가능성도 높다. 신용이 불량한 개인을 대상으로 일부 신용금고들이 내놓은 연리 60% 대출 상품이나 시중 은행·캐피털 사들의 고금리 급전 대출 상품이 그러한 예이다. 주택은행 등 시중 은행들도 신용 등급이 낮은 이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고금리 대출 사업에 나서고 있다. 기업의 경우 금리 양극화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제일은행 수신상품팀 박정일 차장은 "예전에는 모든 기업이 일률적인 금리를 적용받았지만 요즘은 잘 나가는 기업은 6%, 그렇지 않은 기업은 20% 이자를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저금리 시대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은행 이자만으로 생계를 꾸려온 이자 생활자들이다. 은행에 2억원을 정기 예금으로 넣어 두었을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1백50만원 이상을 받았지만 올해는 80만원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은퇴를 앞둔 40∼50대 장년층 역시 이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는 "1998년 외환 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요즘처럼 급속도로 내구재 소비가 줄어드는 경향은 1960년대 이후 처음 보는 일이다"라면서, 장년층이 노후 생활 자금을 마련하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에 돈이 풀리는 만큼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상반기 물가가 5% 오르며 이자소득자들은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위해 금리를 낮추어 저금리 시대를 만들고 있지만,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이들 이자소득자에게 저금리 시대란 재앙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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