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사주 운명, '횡령 자금 용처'에 달렸다
  • 김종민·권은중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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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이냐, 회사용이냐 따라 형량 달라져…
법조 젖문가들 '징역 7∼10년 구형' 예상


한국 축구와 DJ 검찰의 공통점은? 정답은 문전 처리 미숙. 골문을 향해 돌진하며 관중의 시선을 한껏 집중시키기는 하지만 매번 마무리는 시원치 않았다. 총풍·세풍·병역 비리·안기부 자금 수사 등 의혹만 남긴 채 시원스러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건이 즐비하다.




성역 깨기 : 검찰은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마지막 성역으로 불리는 언론사주를 구속했다. 위는 검찰에 출두하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동아일보> 김병관 전 명예회장, <국민일보> 조희준 전 회장(왼쪽부터).


이러한 평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언론 사주 수사에 임하는 검찰의 자세는 비장했다. 더구나 이번 사안이 '2002 빅 이벤트'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깨가 더욱 무거웠다.


이번 수사의 두 주역은 신승남 검찰총장과 김대웅 서울지검장. 두 사람 모두 호남 출신이다. DJ가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남 출신인 신총장을 임명한 것도 이번 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또 이번 수사를 대검 중수부가 아니고 서울지검이 맡은 것도 검찰의 전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배임 혐의는 기소 단계에서 포함할 것"


50일 간 공을 들인 검찰은 지난 8월17일 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 등 거물급 사주들을 구속함으로써 일단 체면은 세웠다. 검찰은 이번에 구속된 세 사주에 대해 조세 포탈 혐의와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오른쪽 표 참조). 아직 검찰이 청구한 구속 영장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고 기소 전까지 추가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검찰 수사의 전모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검찰 수사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조세 포탈 혐의는 국세청의 조사 내용을 확인한 수준에 그쳤고, 일부 횡령 혐의를 추가로 더 밝혀냈을 뿐이다.


배임 혐의와 외화 밀반출 등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질 것으로 점쳐졌던 개인 비리는 이번 영장 청구 단계에서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의 한 관계자는 "배임 혐의의 경우 국세청 자료에서 배임으로 볼 만한 내용이 있으나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추가 수사 후 기소 단계에서 포함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외화 밀반출의 경우도 국세청에서 자료는 넘어왔지만 아직 구체적인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32쪽 기사 참조).




국세청보다 반 발자국 더 나아간 검찰 수사







피의자 국세청 고발 내용 검찰 수사 결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포탈 세액 64억원
주식 우회 증여하면서 증여세 포탈
부외 자금 조성ㅎ 개인 용도 사용
포탈 세액/63억원
횡령액/50억원
<동아일보>
김병관 전 명예회장
포탈 세액 55억원
주식 상속하면서 증여세 포탈
부외 자금 조성해 개인 용도 사용
포탈 세액/42억원
횡령액/18억원
<동아일보>
김병건 전 부사장
포탈 세액 47억원
주식 우회 증여하면서 증여세 포탈
이자소득세·부동산임대소득세 포탈
포탈 세액/49억원
<국민일보>
조희준 전 회장
포탈 세액 36억원
법인세·주식 증여세 포탈
포탈 세액/25억원
횡령액/7억원
<대한매일>
사업지원단
이태수 전 대표
포탈 세액 35억원
세금 계산서 위조해 소득세 포탈
포탈 세액/21억원


현재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 내용의 핵심은, 횡령 혐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밝혀내느냐 하는 점이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인 한 변호사는 "횡령한 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하면 검찰 수사는 새로울 것이 없다"라고 평했다. 횡령 혐의는 '불법 영득의 목적'이 없다면 큰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 사주측도 이 점을 집중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번에 구속 영장이 청구된 언론사주의 한 변호인은 "횡령한 돈을 개인적으로 썼느냐 아니면 회사를 위해서 썼느냐에 따라 죄질이 크게 달라질 것이므로 앞으로 법적 싸움의 초점을 여기에 맞출 것이다"라고 말했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동아일보〉 김병관 전 명예회장, 〈국민일보〉 조희준 전 회장은 유상 증자 등 회사 운영을 위해 썼고 개인 용도로 쓴 돈은 한 푼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개인 자금을 회사를 위해 썼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형량




















안동일 변호사 유사 이례 처음 있는 사건이라 예상하기 쉽지 않다. 이번보다 규모가 더 큰 대우그룹 분식 회계 사건의 경우 7년 구형에 3년 징역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점을 참고하면 구형 7∼10년에, 항소심에서 3년형에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준표 변호사 1심에서는 10년 구형에 7년 정도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 고려가 있다면 5년형 정도도 가능하다. 항소심에서 3년형에 5년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보석은 어려울 것이다.
박형상 변호사 홍석현〈중앙일보〉회장의 경우(구형은 징역 6년에 벌금 51억, 1심 선고는 징역 3년에 집행 유예 5년, 벌금 39억원, 항소심 선고는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30억원 선고)와 비슷하게 갈 것으로 보인다.
ㄱ변호사
(전직 검찰
고위 간부)
검찰이 작심을 했으니 구형은 10∼15년 정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구형은 그렇게 해도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에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지 않겠나.
ㄴ변호사
(언론사주
변호인)
홍석현〈중앙일보〉회장의 경우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심에서 징역 5년 정도 선고 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으로 본다.


반면 검찰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극도로 보안을 유지하면서도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검찰 수사에서 횡령한 돈의 사용처에 대해 국세청이 넘겨준 것 이상으로 더 밝혀냈다"라고 전했다. 일부 사주가 주장한 것처럼 횡령한 돈을 증자 대금으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결국 회사의 대주주인 사주의 개인 이익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처벌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사주를 제외한 까닭은?




이번 수사 결과에서 또 다른 쟁점은, 일부 언론사에 대해 수사 의지가 약하지 않았느냐는 점. 특히 〈한국일보〉의 경우 사주의 외국 카지노 도박 의혹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이번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사주를 고발까지 했지만, 검찰은 수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조세 포탈 액수와 혐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것이 검찰의 해명이지만,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경영진과 권력 핵심과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도 끈질지게 나돌고 있고, 〈한국일보〉가 아직 열독률 10%대를 유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매체 관리 차원에서 솜방망이 수사를 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수사 태도도 이야깃거리이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의 몸가짐은 조신하기 이를 데 없었다. 특히 인권 검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피의자의 동의를 구해 출퇴근 조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압수 수색 따위 강제 수사도 없었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의 경우 소환에 불응해 검찰의 자존심을 구겨 놓았지만 자진 출두를 기다리며 전에 없는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검찰은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으레 범죄 사실을 공개하던 관행을 깨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현행 법은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수사기관 종사자가 기소 전에 피의 사실을 발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법 조항이 지켜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검찰은 지난 옷로비 사건 때 박주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으나 궁색한 변명으로 비치고 있다. 검찰의 인권 의식이 갑자기 신장되어서라기보다는 막강한 언론 권력을 의식한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동아일보〉 사주 형제 구속 둘러싸고 내부 갈등도




유례 없는 철통 보안도 관심을 끌었다. 신승남 총장은 수사 초기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 관계자'의 멘트로 보도가 나가면 당사자를 밝혀내겠다"라고 엄한 함구령을 내렸다. 보고 체계도 검찰총장-서울지검장-서울지검 특수부 수사팀으로 단순화해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수사 책임자인 김대웅 서울지검장은 대검 차장을 건너뛰고 검찰총장에게 직보하는가 하면, 보고 횟수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주례 보고만 두 번 하는 등 최소화했다. 신승남 검찰총장은 퇴근 후에 상가에 가야 할 때도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집에 들렀다가 가기도 했다.


일사불란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강온 갈등이나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이번 수사에서 검찰 수뇌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김대웅 서울지검장과 박영관 특수1부장이 강경 기조를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논란이 되었던 사안은 우선 〈동아일보〉 김병관·병건 형제를 구속하는 문제. 당초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를 담당한 검찰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해 김병관 전 명예회장은 확실히 구속된다는 얘기가 퍼졌다. 그 바로 직후 김씨의 부인 안경희씨가 자살하는 돌출 변수가 발생하자 동생인 병건씨만 구속하는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결국 검찰은 형제 모두에게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수사팀의 한 간부가 형제 모두를 구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호되게 질책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원칙대로 처리했지만 영장 실질 심사 단계에서 김병건씨에 대한 영장은 기각되어 결과적으로 정권 차원에서는 큰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두고 '검찰은 영장 청구, 법원은 일부 기각' 쪽으로 역할을 분담시킨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 소환 문제를 놓고도 검찰 내부에 강온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30쪽 상자 기사 참조).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벌써부터 재판 결과에 맞추어지고 있다. 특히 형량이 얼마나 나올 것인가, 구속 상태가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하는 점이 관심거리다. 구속된 사주 세 사람 모두 조세 포탈 액수가 5억원이 넘고 횡령액도 5억원을 넘기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을 받게 된다. 특가법상 조세포탈죄의 경우 포탈액이 5억원을 넘으면 법정 형량은 징역 5년에서 무기 징역까지다. 횡령죄의 경우 5억∼50억 원이면 징역 3년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징역 5년에서 무기 징역까지 가능하다.


1999년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되었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경우가 참고가 될 수 있다. 홍회장은 당시 증여세 25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6년에 벌금 51억원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38억원을 선고받아 풀려났고, 2심에서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에 벌금 30억원으로 형량이 깎였다. 구속된 직후 보석 신청을 했으나 기각당했고 10월2일 구속되었다가 12월4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두 달 남짓 수감 생활을 했다.


일부 전문가는 '집행유예 석방' 점쳐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이번에 구속된 언론사주들의 경우 홍회장이 받은 혐의보다 중하기 때문에 검찰 구형량은 7∼10년 되리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27쪽 표 참조).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구형량이 15년 정도 나올 것이라고 보는 소수 의견도 있다. 선고 형량은 구형량에 따라 달라진다. 구형량이 7년이면 1심에서 3년형에 5년 집행유예도 가능하지만, 구형량이 10년을 넘으면 1심 집행유예는 어려울 것이고 2심에서 징역 3년에 5년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횡령액이 50억원이 넘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형량은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구속된 사주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면 시민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언론 문제를 연구해 온 박형상 변호사는 "홍석현씨도 구속되기는 했지만 곧 풀려나 전과 똑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라면서, 이런 식의 처리가 반복된다면 언론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정치권의 개혁파 의원들과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언론사주 사법 처리와는 별도로 언론 개혁을 제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언론 문제의 마지막 문전 처리는 결국 정치권·언론계·시민 사회가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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