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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식 벤처는 ‘의혹 제조’ 공장

패스21 기술시연 회 자료, 정·관계 ‘유착’ 드러내…군 관계자와도 접촉 ‘징후’

소종섭 기자 ㅣ kumkang@e-sisa.co.kr | 승인 2002.01.22(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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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번의 좌절과 절망, 수백 번의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끝없는 도전과 불굴의 투지로 최첨단 신기술을 드디어 완성했다.” 1999년 12월21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규수당 빌딩 5층에서 열린 패스21의 기술시연회에서 회사를 대표해 인사말을 한 윤태식씨는 이렇게 호기를 부렸다. 패스21의 대주주인 그는 당시 이 회사 부설 생체공학정보기술연구소의 회장으로 있었다. 정·관·재계 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술시연회는 핸드폰(상품명 ‘패스폰’)으로 신분증·신용카드·전자 화폐·열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신기술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 동아일보
1999년 12월 서울 서교동 규수당 빌딩에서 열린 기술시연회에서 윤태식씨는 2000년에 패스21을 코스닥에 상장하고 미국과 일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패스21측은 이 날 참석자들에게 A4용지 26쪽 분량의 자료를 돌렸다. 제목은 ‘유전율 천연생체 알고리듬 세계 최초 개발, PASS-PHONE’. 회사에 대한 소개와 기술 개발 배경, 패스폰 개발 보고서 등이 주된 내용이고, 파트너 회사들과의 향후 계획도 들어 있다. 이 자료는 패스21이 급성장한 배경, 윤씨의 정·관계 로비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의 조각 조각을 보여준다.
자료에 나와 있는 윤씨의 인사말에서 눈에 띄는 점은 유난히 ‘정부측에 대한 감사’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윤씨가 1998년 9월 패스21(당시 이름은 패스21세기)을 설립한 이후 1년여 동안 정부 부처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뒷받침’을 받아 왔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패스21은 중소기업청 선정 특허 기술개발 벤처 기업으로 선정되어(1999년 6월) ‘올해의 벤처상’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였다.


윤씨는 또 ‘획기적인 차세대 기술로서, 국가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며 특히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적 지원 하에 전자상거래 서명 및 인증의 표준이 되어 세계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 달 뒤인 2000년 1월 코엑스에서 열린 ‘새천년 벤처인과의 만남’에서 패스21 부스를 방문한 것은 이런 점에서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국가적인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로비가 이 과정에 개입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자료에 언급된 내용 가운데 일부는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카드와 서명 없이 지문만으로 신용 거래가 이루어지는 기술을 재경부가 승인했다’는 부분이다. 신용카드 업무를 담당하는 재경부 보험제도과 관계자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승인하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니라며 재경부는 승인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9년 8월, 재경부 은행제도과에 근무하다가 국세청으로 옮긴 방상국 사무관이 1월4일 구속된 것은 윤씨의 말이 흰소리가 아님을 보여준다. 방씨는 재경부에 근무할 때 은행 신용카드의 지문 인증 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긍정적인 유권 해석을 내려준 대가로 주식을 싸게 사서, 1억8천만원의 시세 차익을 본 혐의로 1월4일 구속되었다.


정통부 정보화 촉진자금으로 기술 개발했다”


이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 가운데 의혹이 남아 있는 부분은 두 곳이다. 우선 ‘정보통신부의 정보화 촉진 자금으로 기술을 개발했다’는 부분이다. 패스폰 지문 인증 기술이 차세대 전자 서명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기 위해 작성했다는 ‘패스폰 개발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패스21이 기술시연회에서 신분증·신용카드·전자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며 소개한 패스폰.


지문 인증 금융거래 관리 시스템·지문 인증 PC 뱅킹 시스템·지문 인증 출입 통제 시스템 등에 대해 설명한 뒤 ‘이런 기술은 정보통신부 정보화 촉진 자금으로 우리 벤처 기업이 독자 개발한 성과이며, 품질의 우수성과 가격 면에서 국제 경쟁력이 매우 높으므로 세계 시장 선점에 따라 성장 잠재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패스21에 정부측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정보화촉진기금을 담당하는 정통부 정책총괄과 관계자는 패스21에 정보화촉진기금을 지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태식씨가 직접 자금을 관할했기에 패스21측에서도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의혹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통부에서는 노희도 전 전산관리소장이 구속되었다. 정통부는 1999년 9월, 2억원 상당의 바이오 빌딩 출입 보안 시스템을 무상으로 납품 받았고 ‘타 기관에서 문의하면 패스21의 시스템에 대해 벤처기업 육성과 지원 측면에서 홍보에 협조한다’는 약정서를 체결해 구설에 올랐다.


패스21이 1999년 6월 ‘군사 지역 네트워크 보안기술 지원 업체’로 선정되고 ‘국방 정보망 보안 유지 및 해킹 방지를 위한 신기술 요약 보고서’(신기술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밝혀진 점은 또 다른 관심거리다. 신기술 보고서는 ‘군 통신망에서 현재 사용하는 암호화 알고리듬에 의한 정보의 암호화 전송 또는 방호벽 시스템에 의한 해커 침입 봉쇄망은 여전히 해킹의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패스폰 시스템을 도입하면 완벽한 방호 시스템이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방 정보망에 대한 해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몇몇 부대 차원의 방어가 아닌 전군의 대응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패스21이 개발한 신기술을 국방 정보망에 접목한다면 해커들로부터 국가 정보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씨가 군 관계자들도 접촉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패스21은 1999년 11월에는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되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모든 부서를 확인한 결과 패스21측과 접촉한 사람도 없고 시연회를 연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정보화 신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지정하는 제도도 없어 ‘군사지역 네트워크 보안 기술 지원업체’로 지정되었다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에서는 PC 접속 시에 사용자 비밀번호와 MS카드 또는 IC카드 등을 활용하고 있으나’ 등 자료에 나와 있는 설명이 구체적이어서 윤씨가 아무런 근거 없이 자료를 만들었을까 하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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