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 뺨치는 ‘계약직 차별’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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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수준, 정규직 절반…4명 중 1명 월급 50만원 이하…“10 대 90 사회 왔다”
"우리는 1회용 건전지였다.” 서울 성수동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노조원 이재인씨(33)는 자신의 처지가 ‘쓰다가 약이 떨어지면 버려지는 건전지’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2000년 12월 거리로 내몰린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7천명 가운데 일부는 2월20일 현재 4백35일째 기나긴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재인씨가 한국통신 구미전화국에 입사한 것은 1996년. 전화 선로를 유지·보수하는 일이 주업무였다.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5만원. 생활은 늘 빠듯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입사 5년째이던 2000년 12월 이씨에게 날아든 것은 해고 통지서였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 위기는 한국의 노동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탈규제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한 양상은 비정규직 노동자 급증으로 나타났다. 평생 직장 같은 용어나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기업체 슬로건은 구조 조정이라는 지진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자유주의를 엔진으로 삼고 있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세계화를 ‘20 대 80 사회’라고 잘라 말한다. 상위 20%만이 안정된 직장과 소득을 누리고, 나머지 80%는 비정규직이나 실업 등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는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 사회. <세계화의 덫>을 한국어로 옮긴 강수돌 교수(고려대·경영학)는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도시근로자 소득통계표를 보며,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시근로자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에 무려 9배가 넘는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요즘에는 10 대 90 사회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정부 차원에서 IMF 관리 체제를 조기 졸업하는 ‘성과’를 올리는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 문제는 ‘경제적 질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질병은 전염성이 매우 강했고 처방전이 거의 없어 보였다. 급기야 양대 노동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선전 포고를 했다. 지난 2월21일, 민주노총은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가 희생당하지 않는 주5일 근무제 전면 도입’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한국노총도 같은 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대량 실업 사태를 야기할 철도·가스 노조 등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를 저지하고,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가 주5일 근무제와 더불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44쪽 관련 기사 참조).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 조사>에 따르면, 상용직 노동자는 1995년 7백43만명 선에서 정점을 이루었다가 외환 위기 이후인 1999년 하반기에 6백5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전체 노동자 중 임시 일용직 비율은 1995년에 41%이던 것이 1999년 2/4 분기 이후 52%대로 급증했다(부문별 비정규직은 도표 참조).


여성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은 통계청이 실시한 <경제활동 인구 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자료에서 2001년 8월 현재 7백37만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밝혔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55.7%에 달하는 숫자이다. 여성은 정도가 더 심해 10명 가운데 7명이 비정규직이다.


취업 전문지 <월간 리크루트>가 지난해 12월28일부터 올해 1월17일까지 상장기업 1백31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노동 시장 유연화 추세는 가파르다. 이 조사에서 대기업 가운데 48.6%는 앞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5.9%는 현재 수준으로 채용할 계획이고, 비정규직을 축소하겠다고 답한 업체는 고작 5.4%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고 있지만, 아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상용직을 제외한 임시직과 일용직을 말하는데 그 형태가 다양하다. 계약 기간에 따라 장기 계약직·1개월∼1년 임시직·일용직으로 나뉘고, 고용 형태는 직접 고용과 파견·용역·도급·사내 하청 등 간접 고용으로 구분된다. 또 학습지 교사, 레미콘 지입 차주, 보험 모집인 같은 특수 고용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문제는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동일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동일 임금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서울 대방전화국 고객시설과에 근무했던 장훈규씨(32)의 월급 봉투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 조건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씨가 8년차이던 2000년에 받은 월급은 85만9천원. 보너스나 다른 수당은 일절 없었다. 당시 장씨와 같은 일을 한 7급 정규직 신입 사원의 급여는 1백92만7천원이었다. 장씨의 월급은 정규직 신입 사원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물론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김유선 부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2001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임금의 52.6%를 받았다. 장훈규씨는 사정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노동자 4명 중 1명은 50만원 이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신적 차별 또한 물질적 차별 못지 않게 크다고 호소한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변옥란씨(가명·35)는 “계약직으로 일했던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텔러(창구 직원)로 근무하며 고객만족 서비스 교육 강사로 뽑힐 만큼 인정받던 정규 직원이었다. 은행을 다니면서 야간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고 사내 결혼까지 했으니, 은행은 그녀의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IMF 체제가 변씨의 꿈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변씨 부부에게 사직 압력이 가해졌다. 행내 부부 사원 중 1명은 그만두라는 지시에 따라 변씨는 1999년 2월 사표를 내고 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를 따르던 후배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계약직을 무슨 전염병 환자 보듯이 했다. 하루아침에 왕따 신세가 되었다.”


변씨는 결국 계약직을 그만두었다. 신체검사를 하는데, 회사가 정규직 사원에게는 검사비를 7만원 주고 계약직에게는 2만원을 지급하는 것을 보고 사표를 던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신체 구조가 다른 것도 아닌데 차별했다. 모멸감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정규직 노조가 차별 대우 하기도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8백만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결성된 사업장이나 분야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가는 재계약할 때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일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풍토도 큰 문제다. 심지어 사용자측과 비정규직이 부딪칠 때, 정규직 노조가 구사대로 나서는 경우까지 있다.


현행 파견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비판도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6조에 따르면, 사업주가 2년 이상 계속적으로 파견 노동자를 사용했을 때는 2년 기간이 만료된 다음날부터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정책국장은 “사용자들이 법 조항을 악용해 2년마다 채용하고 해고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라고 말했다.


이랜드 노동조합 유상헌 조직부장(30)은 회사의 부당 해고에 맞서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씨는 간접 고용(도급)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회사에는 회사가 직접 채용한 비정규직과 도급업체 비정규직이 있었는데, 도급업체마다 월급이 달랐다. 유씨는 노조에 가입해 50만원이던 ‘비현실적’ 임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도급노동자 전원을 해고하는 강수를 두었다. 결국 이랜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과 손잡고 2백65일 간 파업한 끝에 도급직 직접 채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약직 해고 남용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단체 협약을 얻어냈다.


그런데 파업이 마무리된 지 불과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회사는 도급 출신 비정규직 5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회사측은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 해지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유씨는 다른 해고자와 함께 이랜드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정규직 가운데 하나인 보험설계사들은 노조를 결성하고도 아직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보험설계사 5천명이 노조원으로 가입한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은 지난해 관할 구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으나 신고필증을 받지 못한 채 ‘법외 노조’로 활동하고 있다. 보험모집인은 자영 개인 사업자 성격이 강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남율 조직2부장은 “기존 노동관계법은 정규직 노동자를 상정해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한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근로 형태에 발맞추어 비정규직 노동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법 ‘사각 지대’에 방치




‘20 대 80 사회’는 80%에 속하는 노동자들만 불안한 사회가 아니다. 일자리와 소득이 보장되는 20% 사회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 안정된 일자리로 여겨져온 공무원 사회도 구조 조정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총연합회(전공련)에 따르면, 외환 위기 이후 공무원 10만명이 감축되었고, 기본급까지 성과급제로 전환하는 3단계 구조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전공련 정책연구소 김정수 소장(송파구청 공무원)은 “공직 사회 구조 조정이 하위직 위주로 진행되는 것은 본래 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형평성에도 위배된다”라고 지적한다.


김정수 소장은 오는 3월24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출범한다고 밝혔다. 전공련은 내부적으로 권력형 비리 등 부정부패 연결 사슬을 차단하는 운동과 더불어, 공직자 줄서기나 특정 후보 암묵적 지원 등 선거 부정 감시 운동을 전개하며 공무원 노조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20 대 80 사회’는 하이테크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3차 산업혁명’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기술 자문이자 각료였던 자크 아탈리는 1990년대 중반 노동자 시대 종언을 주장했다. ‘기계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테크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이 새로운 시대, 지구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펄럭이는 세계화 시대는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인가. 그 미래로 가는 길은 누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46쪽 관련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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