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엔터테인먼트=게이트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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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 연예 관련 회사 마구 설립…정·관·방송계 ‘주식·몸 로비’ 밝혀질 수도


2000년 4월, 종합연예기획사인 (주)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스엠)가 벤처 붐을 타고 주당 1만2천원에 코스닥에 상장되었다. 1999년 이후 증자 세 차례와 액면 분할을 통해 주식을 3백만 주로 늘린 에스엠 주가는 40여 일 뒤 7만3천4백원까지 치솟았다. 주식을 처분한 이들은 7배 가까운 이익을 얻었다. 지분 67%를 보유한 대주주 이수만씨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4천∼6천 주씩을 보유한 주주 가운데는 방송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 작가 박 아무개씨, 방송사 PD 출신 연예기획사 대표 김 아무개씨, 개그우먼 이 아무개씨 등 방송계 인사들이 망라되었다. 방송사 현직 간부의 부인과 방송문화진흥회 간부 부인도 코스닥 등록 2개월 전인 2월 에스엠 주식을 매입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에스엠 주식을 보유했던 주주 42명이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연예계 비리를 집중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강력부는 에스엠이 방송계뿐만 아니라 차명으로 정·관계 인사들에게 헐값이나 무상으로 주식을 제공해 ‘주식 로비’를 벌였는지를 정밀 수사 중이다. 에스엠뿐만 아니라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의 지주회사인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플레너스)와 GM기획·도레미미디어 등 이른바 국내 4대 연예기획사 모두 혐의를 받고 있다.


당장은 가요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PR비를 문제삼고 있지만, 증자 과정에서 불법적인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횡령했는지까지 수사하고 있다. 연예기획사 임원들과 친분이 있는 정·관계 인사들이 주식 로비를 받고 연예기획사의 코스닥 등록 과정에 개입했다면 또 다른 대형 게이트가 터지는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플레너스의 모기업인 (주)로커스도 에스엠 못지 않게 주가 조작이나 불법적인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01년 2월, 코스닥 등록업체인 로커스(당시 로커스 홀딩스)가 플레너스를 설립하자 벤처 기업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벤처 업계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김형순 로커스 대표(41)는 이미 출국이 금지되었다.


음반회사가 벤처 기업 지정받아


도레미미디어(대표 박남성)도 2000년 10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 기업 지정을 받은 배경에 의혹이 일고 있다. 도레미는 당시 벤처 기업 평가 기관 가운데 하나인 기술신용보증기금이 마케팅 기술을 인정해 벤처 기업 지정이 가능한 ‘기술평가기업’으로 선정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벤처 기업으로 지정되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중소기업창업자금을 신청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벤처 게이트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 연예기획사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에스엠측은 코스닥 상장 전인 1999년에 정상적인 가격과 절차를 밟아 방송계와 기업체 인사들에게 주식을 팔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에스엠의 대주주 이수만씨는 검찰의 내사가 시작된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 출국해 행방이 묘연하다. 로커스도 “김형순 대표가 싸이더스의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다”라며 당당한 표정이다. 그러나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 내용이 공개된 7월11일 플레너스의 대주주인 로커스는 플레너스 주식 55만주를 갑자기 매각해 의혹을 사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해 벤처 기업들이 연예기획사나 엔터테인먼트 관련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지난해부터 각종 게이트에 연루되었던 회사들도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하나씩 두고 ‘대박’을 꿈꾸었다. 타이거풀스 대주주인 송재빈씨는 1998년 ‘임팩 프로모션’을 설립해 인기 가수인 신해철씨의 음반을 제작했다. 송재빈씨는 타이거풀스코리아를 설립한 뒤 1999년 이장호 감독과 손잡고 월드컵 영화 3부작을 제작키로 하고 신인 배우 캐스팅 작업까지 마쳤지만 무산되기도 했다.

패스 21 대표였던 윤태식씨의 형 윤태호씨도 2000년 ‘패스21 엔터테인먼트’(현재는 P21)를 설립해 일본 영화 <감각의 제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수입하는 등 현재도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 친구인 김성환씨도 서울음악방송을 설립한 뒤 1999년 위성 방송 채널 사업권을 따냈다. 서울음악방송은 2000년에 인기 스타 안재욱의 공개 방송을 성사시켜 한류 열풍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검은돈의 매개체로 전락했다. 회계 업무가 주먹구구 식이어서 돈 빼돌리기도 어렵지 않았다. 실제 송재빈씨가 지난해까지 운영한 임팩 프로모션은 지난해 포스코와 타이거풀스의 주식 거래에 연루되는 등 비리의 한 사슬을 형성했다. 김성환씨도 자기가 운영하는 서울음악방송과 올게임네트워크의 공금 6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연예인 불러내 폼 잡고, 주가 띄우려 회사 설립”


당시 벤처 기업들의 방송·연예 관련 회사 설립 붐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연예기획사나 엔터테인먼트 하나쯤 있으면 연예인을 불러내 남들에게 폼잡을 수 있고, 투자한 연예인이 대박을 터뜨리면 모기업 주가가 올라가니 꿩 먹고 알 먹고였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벤처 업계에는 연예인과 관련된 소문이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벤처 회사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는 ‘몸로비’를 하려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차린다는 말까지 돌았다.


실제 최규선 게이트 때는 송재빈씨와 최씨가 탤런트 ㄱ양·ㅂ양 등과 어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민주당 소장파 정치인과 탤런트 ㅇ양의 성교제설까지 퍼졌다. 지난 3월 초 제주도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민주당 ㄱ의원이 모 방송사 주말 드라마의 주연급 탤런트인 ㅇ양과 만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ㄱ의원이 다른 정치인들과 여성 연예인들을 연결해 주는 ‘마담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돌았다.


지난 1월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의 음반 PR비 제보로 시작된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는 연예기획사로부터 주식이나 금품을 받은 지상파 방송사 PD와 스포츠 신문 연예담당 기자 등 10여 명을 사법 처리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벤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예기획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방식이 타이거풀스 사태 때와 비슷하다. 주주 명단이 공개되었다가 대표가 소환되더니 정·관계 로비가 터졌다. 이번 연예기획사 수사에서는 방송계와 정·관계 주식 로비에다 몸 로비까지 나올지 모른다”라고 귀띔했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김규헌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1990년 서울지검에서 연예계 비리 수사를 지휘해 PD 6명을 구속한 심재륜씨의 동서로 알려졌다. 김규헌 부장검사는 “방송계와 연관된 거악(巨惡)의 혐의가 나오면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겠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국회 의사당과 공중파 방송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서 대형 게이트가 터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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