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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집이 교도소 같아! 한줄기 빛도 없는”

10대들의 자살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청소년의 74%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최소한 한번 이상 했다.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첫 번째 원인은 ‘가족’이다.

노순동 기자 ㅣ soon@sisapress.com | 승인 2002.12.16(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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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진씨가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 아직 딸의 몸은 따뜻했다. 임씨는 “숨이 붙어 있는 것 아니냐. 허벅지 동맥이라도 따 봐라”고 말했지만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망연자실해 있는 그에게, 고1짜리 아들이 딸의 유서를 내밀었다. ‘학교 선생님하고 애들한테 잘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어서 더 살면 더 힘들 것 같아. 사람 차별하는 세상 불공평한 세상. ○○○, ○○○, ○○○ 선생님 죽어서도 복수할 거야. 나는 나쁜 사람 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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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향란
임국진씨는 매일 딸이 묻힌 곳을 찾는다.



지난 11월14일, 경기도 파주에서 일어난 임 아무개양의 자살 사건이다. 대입 수능시험 다음날인 11월7일 울산에서 한 여고생이 수능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고, 곧이어 충남 천안에서 초등학생까지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목을 맸다. 입시철이 본격화하자, 이곳저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12월 들어서도 대전에서 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이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들을세라 숨을 죽이고, 아이들은 남의 일 같지 않아 숨을 죽이고 있다.



입시철이어서 그런지 ‘왕따’가 원인이었던 임씨 딸의 자살은 쉽게 잊혔다. 그 사이 임씨는 딸의 유서를 붙들고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은 방 안에서 엄마의 스카프로 목을 맸다. 성격이 활달해 애교도 잘 부리던 딸이었다. 속이 뒤집힌 임씨의 아내는 학교를 한바탕 휘저어 놓았다. 임씨는 “처음에는 딸이 자기를 괴롭힌 사람들 이름을 줄줄이 적어 놓은 걸 보니 미치겠더라. 이제는 제때 알아차리지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하련다”라고 말했다.



임씨는 요즘 매일 산에 오른다. 유골을 수습해 집 근처 할머니 무덤 곁에 묻었다. 임씨의 핸드폰에는 딸이 죽기 전 보내온 ‘아빠 얼릉 와’라는 문자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7년 전 아들을 잃은 김종기씨. 세월이 흘렀건만, 아픔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당시 고1이던 아들은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렸다. 자동차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숨이 끊기지 않자 다시 올라가 기어이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없었다. 중학교 때 내리 반장을 하고 친구도 많은 아이인지라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영안실에서 아들의 삐삐 사서함을 열어 본 그는 이성을 잃었다. “널 때린 놈들에게 복수하겠다”라며 울먹이는 친구의 메시지를 듣고서야 아들이 학교 폭력에 시달려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분을 삭이지 못했지만 반성문만 받고 일을 묻었다. 대신 그는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대기업 간부였던 김씨는 학교폭력예방재단을 만들어 7년째 정성으로 일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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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학교 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김종기 학교폭력예방재단 명예 이사장.
김씨는 아들 잃은 슬픔을 생산적으로 승화했다.




청소년 사망 원인 2위가 자살



청소년 자살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줄곧 가파른 증가세다.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자살 수치가 더 올라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통 사고나 약물 중독으로 죽은 청소년 가운데도 자살자가 적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청소년 상담 기관인 청소년대화의광장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1996년부터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사고사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 김현실 교수(경산대·간호학)에 따르면 15∼24세 자살자가 전체 자살자의 17%를 차지한다.



이처럼 죽음의 행렬이 젊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에 보도된 청소년 자살 사건만 따져보면 성적 비관이 50%에 이른다. 실제 자살자 가족과 학교 담임을 수소문하면서 연구를 진행한 최병목씨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지만 가족 문제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경기도 학생 자살 원인 중 40%가 가족 문제였다’고 보고했다(76쪽 상자 기사 참조).



전문가들은, 성적 비관을 자살 이유로 꼽는 것은 겉만 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원인인 경우에도 그나마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축이다. 원인이 가족 바깥에 있어 그만큼 알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또래 상담자’로 활동하는 중3 조한별양도 비슷한 의견이다. 성적이나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빈도는 높지만, 심각성을 따져 볼 때 가족 문제가 단연 첫손에 꼽힌다는 것이다. 조양은 “성적 문제조차도, 자기 자신보다는 어머니가 신경 쓰인다는 친구들이 많다. 가족 문제를 직접 입에 올리는 경우 거의 모두가 죽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문제로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또래 상담 사이트에는 이런 사연이 올라 있다. ‘밥을 먹을 때 어머니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씹어 먹는데, 이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상담원은 칼을 들고 투신을 시도하다가 현장을 들키는 바람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한 학생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학생의 말은 딱 한마디였다. “집이 교도소 같아. 빛 한줄기 내리쬐지 않는.”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대상 청소년의 74%가 최소한 한번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거의 매일 생각한다는 응답자도 5%가 넘었다.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는 전체의 3%. 자살 방법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비율은 여학생이 더 높았다. 초등학교 때 처음 자살을 생각했다는 응답도 25%에 이르렀다. <시사저널>이 중학생 1백6명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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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힌 사람들이 밉다. 평생 증오하겠다’며 목을 매 죽은 초등학교 6학년 임 아무개양의 유서(왼쪽). 자살 충동은 전염되기도 한다. 오른쪽은 동반 자살 현장.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이유는 비슷비슷하다. 1순위는 단연 학업 스트레스다. 중학생은 친구 문제가 많다. 그렇다면 왜 비슷한 스트레스에 직면해서 어떤 아이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어떤 아이는 잘 견디는 것일까. 청소년 자살을 연구한 임숙빈씨는 부모와의 관계가 변수라고 분석했다. 부모와 갈등이 극심하거나 다툼이 있을 때 쉽게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반면 진로·학교 폭력·왕따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어도 가족 간의 친밀도가 높은 경우 극단적인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초등학생까지 죽음의 행렬에 가담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지만, 10대라고 해도 자살 양상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방양원씨에 따르면 12세 이하 어린이는 죽음이 영원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을 벌하기 위해, 혹은 이미 죽은 그리운 사람과 결합하려고 자살을 시도한다. 불행한 상황에서 행복한 상황으로 이동하는 것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유서에 자신에게 과도한 짐을 지운 부모를 원망하며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했던 정 아무개군의 유서가 그 예다.



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10대 중반 이후 청소년의 자살은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인처럼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통상 성인의 자살은 우울증 등 정신과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청소년은 10% 미만이라고 추산한다. 정체감에 대한 고민이 많고, 존재에 대한 회의가 빈번한 만큼 평범한 아이들도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자살을 기도했다면 그것은 정신과적 응급 상황이다.


비행 청소년, 죽음의 유혹에 약해



또 자해나 폭력 같은 행동도 단순히 야단을 치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정수씨는 폭력적인 문제 행동, 즉 자해·구타·본드 흡입 비행 행위는 우울증을 표현하는 것이기 쉽다고 지적한다. 우울증이 무기력이나 의기 소침이 아닌 폭력적인 양태로 표출될 뿐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행 청소년군’에서 자살 충동을 더 많이, 심각하게 느낀다는 각종 검사 결과와도 일치하는 해석이다.
자살과 관련한 통념도 위험하다. 진짜 자살하려는 사람은 말로 하지 않는다는 통념은 그릇된 것이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 경우 삶의 의욕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도 미신이다. 손목을 긋는 행위는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절박한 구원 요청이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자는, 죽고자 하는 마음과 살고자 하는 마음이 뒤엉켜 있는 경우가 많다. 상습적으로 손목을 긋는 한 여중생이 친구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시원해서, 답답해서. 죽고 싶어서, 죽고 싶은데 죽을 용기가 없어서, 죽고 싶지 않기도 해서 그래서 그어.”
얼마 전 유서를 써놓고 죽으러 나갔다가 극적으로 가족 품에 돌아온 한 고등학생의 유서도 유사하다. ‘뭐라고 써야 할지, 그냥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나 할까? 어차피 죽을 거 그냥 지금…(중략)…아! 솔직히 우리 반 애들이 미웠어. 내가 반에서 ‘따’라는 소리를 듣고 멀리하려는 것 같더라구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 특히 선배들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아요.’
“다 그런 거야”라고 충고하지 말라



전문가들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해 왔다. ‘자기로부터의 도피’ 이론에 따르면 현실과 기대 사이의 거리가 커짐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데, 이런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지적 몰락’ 상태가 초래된다. 이 상태가 되면 사소한 자극에도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다행히 급격한 자살 충동에 사로잡히는 시간은 극히 짧다. 즉각 개입하면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자살은 사람 때문이다. 친구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억압적인 아버지나 미운 어머니, 혹은 선생님에게 항의하고 복수하려고 세상을 등진다. 반면 자살을 막는 것도 사람이다.



미술치료사 이승숙씨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으로 ‘다 그런 거다. 나도 그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른들 처지에서는 공감한다고 하는 말이지만, 청소년에게는 ‘너의 사연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아이를 도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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