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부터 보아까지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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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스타 계보/댄스·발라드파 ‘왕별’ 경쟁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한 이어달리기 시합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시합의 이름은 ‘대박 시대’. 참가자는 모두 대중 가요 가수들로 총 10팀이 참가하고 있다. 시합의 주요 무대는 대형 콘서트장과 텔레비전 연예·음악 프로그램. 시합에서 우승한 팀은 수천억원 규모의 음반 시장에서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첫 번째 팀은 남성 댄스 그룹. 이 팀의 첫 번째 주자는 바로 서태지와아이들이다.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등을 발표한 서태지는 발라드 위주의 음반 시장에 댄스 음악 열풍을 몰고 오며 이 시합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가 <교실 이데아> 등 반학교 정서를 담은 노래를 통해 댄스 음악을 교실에 침투시킨 덕분에 20대 위주의 음반 시장은 10대까지 외연이 확장되었다.


남성 댄스 그룹의 두 번째 주자는 H.O.T이다. 서태지와 마찬가지로 반학교 정서를 담은 노래를 발표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결성된 젝스키스와 함께 음반 시장을 10대 위주로 재편했다. 음반 시장에서 10대가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자 이 두 그룹을 모방한 댄스 그룹들이 줄지어 나왔다.


19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댄스 그룹은 GOD라는 변종을 맞이했다. 일본 그룹 SMAP을 모방한 GOD는 댄스 음악 위주의 다른 남성 그룹과 달리 부드러운 ‘리듬 앤드 블루스’ 음악으로 차별화했다. 노래 내용도 반학교적인 것에서 벗어나 어머니에 대한 정을 담는 등 세대 간의 결합에 주목했다. GOD의 이런 전략은 MP3가 등장함으로써 음반 시장의 주도권이 다시 20대로 옮겨가는 시장 상황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섹시 여가수 맥 엄정화·백지영 이후 끊겨


두 번째 팀은 신승훈에서 시작하는 발라드 위주의 남성 솔로 가수팀이다. 주로 ‘사랑타령’이 장기인 이 팀은 두 번째 주자인 조성모에 이르러 정점을 맞았다. 음반을 낼 때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간 조성모는 댄스 음악에 맞서는 발라드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소속사를 옮기면서 주춤했다. H.O.T 전 멤버로서 솔로로 데뷔하면서 발라드로 말을 갈아탄 강타가 그 빈틈을 노렸는데 결국 자신보다 20대 팬층이 두터운 성시경에게 적자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여성 가수 팀의 경우도 남성 가수와 마찬가지로 역시 댄스 그룹이 선두를 형성했다. SES 등 일본 미소녀 그룹을 따라 만든 댄스그룹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유는 노래와 춤이 쉬워서 따라 하기가 편하다는 것이었다. 미소녀 그룹은 핑클에 이르러 한 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팬들이 식상하지 않도록 핑클 멤버들은 ‘섹시함(이효리)·예쁨(성유리)·선함(이진)·재능 있음(옥주현)’ 등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여성 댄스 그룹은 또 하나의 팀을 형성했다. 미소녀 분위기보다 섹시한 매력을 강조한 팀인데 이 그룹의 시조는 디바이다. 디바가 개척한 이 시장은 1990년대 후반에는 베이비복스가, 2000년대 초반에는 쥬얼리가 이어받았다.


섹시함이 여성 가수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여성 솔로 가수도 가창력보다는 섹시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김완선에서 시작된 이런 섹시 여가수의 계보를 엄정화와 백지영이 이었다. 그러나 엄정화와 백지영이 각각 나이와 섹스 비디오 파문 때문에 2선으로 물러나자 이 계보는 법통이 끊겼다.


여성 가수의 ‘섹시 코드’에 상응하는 ‘마초 코드’를 내세운 남성 솔로 가수들이 있다. 1980년대 심 신에서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그 흐름을 잇는데 김정민, 김경호 등 주로 록 가수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큰 파괴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월드컵과 함께 윤도현이 말랑말랑한 남성 가수들 사이에서 선 굵은 노래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이처럼 마초팀이 주춤한 것과 달리 기교파 남성 가수팀은 제법 선전하고 있다. 기교팀의 첫 주자는 <잘못된 만남> <핑계> 등 주로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부른 김건모다. 기교팀 가수들의 노래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출 때 맞추어 추기 쉽고 노래방에서 따라 부르기 쉬운데, 이같은 특성은 당시 젊은층의 놀이 문화와 잘 맞아떨어졌다. 기교팀의 계보는 클론과 컨추리 꼬꼬 등 남성 듀오 그룹이 이었다.


기교파 남성 가수 팀에 비견할 수 있는 여성팀은 솔로 댄스 가수 팀이다. 박미경에서부터 시작된 이 팀은 반남성주의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를 내세우며 섹시팀과 차별화를 이루었다. 김현정으로 이어지는 이 팀은 <와>와 <바꿔>로 각종 가요 순위를 석권한 이정현에 이르러 1차 전성기를 맞았다. 이 팀의 바통은 왁스를 거쳐 보아에게 전달되면서 2차 전성기를 맞이했다. 보아는 지난해 음반 판매 순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솔로 여성 댄스 가수는 선전하고 있지만 가창력으로 승부를 거는 여성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이소라가 잠깐 반짝한 이후에는 음반 시장에서 그다지 큰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박정현·박화요비·이수영 등 출중한 노래 실력을 갖춘 여성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이 팀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혼성그룹 룰라 인기 쿨·코요테가 이어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팀은 남녀 혼성그룹 팀이다. 그룹 룰라에서 진화한 이 팀의 특징은 여성 보컬이 노래를 하고 남성 래퍼가 랩을 하는 구조인데, 기교팀과 마찬가지로 나이트클럽과 노래방을 중심으로 세를 떨쳤다. 룰라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그룹 쿨은 혼성 그룹의 백미다. 매년 여름 새로운 음반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은 2002년 음반 판매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팀의 후계자는 코요테와 샵이다.


자, 이 이어달리기의 최종 승자로 ‘대박 시대’를 열 주인공은 누구일까? 일단 지난해 음반 판매 순위를 보면 댄스 가수 팀의 우세가 예상된다. 댄스 가수가 10위권 안에 일곱 팀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라드 가수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위부터 15위까지가 전부 발라드 가수들인 데다가 댄스그룹 SES와 신화는 해체되었거나 해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연 올해 발라드 가수들이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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