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 더 강해졌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r)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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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가 ‘화려하게 변신’했다. 독자 영역을 갖고 아이템 별로 긴밀히 협조하는 네트워크로 ‘진화’한 것이다. 자금 조달 수법은 훨씬 교묘해졌고, 테러 대상과 지역은 확대되었다. 새 조직원도 계속 늘고
2001년 9·11 직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테러와의 전쟁 총사령관을 자임했던 부시 대통령은 최근 대선을 앞두고 백악관 웹 사이트를 통해 미국 유권자는 물론,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전세계 시민들에게 3년 간의 전과를 설명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바쁘다.

미국은 지난 3년 동안 세계적 규모의 테러 집단과 그 동맹에 대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전투를 전개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미국은 알 카에다 조직의 야전 사령관으로 9·11 테러를 총지휘했던 모하메드 아테프를 비롯해 아테프의 뒤를 이어 야전 사령관에 올랐던 아부 주바이다, 아테프의 지시로 1998년 말부터 3년간 9·11 테러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일명 ‘KSM’) 등 알 카에다 핵심 간부 대부분을 처단하거나 체포했다(66쪽 표 참조).

미국은 또 역사상 유례 없는 ‘인도적 전쟁’을 일으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해방시켰으며, 리비아를 설득해 핵개발 프로그램을 중단케 하는 등 대량살상무기(MD) 방면에서도 중대한 성과를 올렸다. 9·11 이후 현재까지 알 카에다와 그의 일당에 의해 미국 본토가 다시 공격당하는 사태는 없었으니, 백악관의 자평은 적어도 미국 국민에게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내세우는 전과는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해방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한 성과를 테러와의 전쟁에 포함해 이를 ‘총사령관 부시의 업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당초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은 9·11 테러를 일으킨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소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미국은 갑자기 공격 방향을 틀어 이라크를 겨냥했다. 그 결과 미국은 알 카에다 핵심 간부 몇몇을 소탕하는 ‘전술적 전과’는 올렸지만, 테러를 근절하는 ‘전략적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증거가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알 카에다 모니터 팀이 내놓은 보고서다.
미국의 일방적인 테러와의 전쟁과는 별도로, 유엔은 1999년부터 국제 사회의 공조를 바탕으로 전세계 규모의 ‘테러와의 전쟁’ 계획을 수립해 집행해 왔다. 유엔은 1999년 ‘결의안 1267호’을 통해 알 카에다를 국제 사회의 공적으로 규정했다. 2001년 9·11 직후, 유엔은 안보리 산하에 반테러위원회를 설치해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했고, 올해 초에는 ‘결의안 1526호’을 통과시켜 전황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별도의 모니터 팀까지 만들었다. 지난 8월27일 공개된 보고서는 ‘결의안 1526호’에 근거해 작성한 최초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알 카에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전과는 달리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모니터 팀은 알 카에다가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특징으로 하는 조직에서, 각자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갖고 아이템 별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네트워크 체제로 재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니터 결과, 알 카에다는 또 과거보다 훨씬 더 유연성과 융통성을 강화해가고 있다. 자금 조달 수법 역시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게다가 알 카에다는 이라크 전쟁 이래 이 지역을 중심으로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치고 있으며, 중남미 등 국제 사회의 감시와 통제가 느슨한 지역으로 숨어들어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69쪽 딸린 기사 참조).

알 카에다의 이같은 변신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참모들이 없어도 알 카에다의 위협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모니터 팀은 알 카에다가 활용 가능한 자원과 적절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목표물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사전 예방이 훨씬 더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보리가 지난해 1월 통과시킨 ‘결의안 1455호’에서 확정한 테러와의 전쟁은 크게 자산 동결·여행 금지·무기 금수 등 3개 분야로 요약된다.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관건은 알 카에다와 관련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입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 사회는 테러와의 전쟁 출발점에서부터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알 카에다 핵심 간부의 3분의 2 이상이 사살되었거나 체포 혹은 구금되었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유엔 안보리는 2001년부터 회원국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해 전세계의 알 카에다 현황을 파악해왔다. 유엔은 회원국 21개국으로부터 1백43명에 이르는 텔레반 관련 인물들과, 1백74명·1백11개 조직에 이르는 알 카에다 관련 존재를 토대로 명단을 작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엔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명단의 3분의 1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에서 보낸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알 카에다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명단 자체가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 단가’가 낮아지는 추세 또한 적신호이다. 9·11 이후 전세계에서 알 카에다 또는 알 카에다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에 의한 대규모 테러가 발생했다.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섬 폭탄 테러, 2003년 인도네시아 메리어트호텔 폭탄 테러, 2003년 10월 터키 이스탄불 폭탄 테러, 지난 3월 스페인 마드리드 통근 열차 폭탄 테러 등이다.

이같은 대형 테러 사건의 공통점은 1만~5만 달러에 불과한 ‘소자본’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테러 결과가 워낙 엄청나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의 전격 철수까지 이끌어냈던(미국에서 보자면 크나큰 패배이다) 지난 3월 마드리드 폭탄 테러의 경우 만 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로 9·11 거사에 든 비용은 50만~100만 달러이다.

자금 조성 및 송금 수법 또한 교묘해지고 있다. 지난 6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 독재자들이 ‘더러운 전쟁’을 위한 자금 조성 통로로 이용해온 다이아몬드 유통망에 알 카에다 조직원이 침투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미국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1999년부터 2002년 사이 빈 라덴의 참모 모하메드 아테프(2001년 아프가니스탄 폭격 때 사망) 등이 라이베리아를 방문하는 등 관계를 형성하려고 시도한 흔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9·11 이후 미국과 국제 사회는 알 카에다의 테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자금줄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은 테러 자금 통제를 위해 이른바 ‘애국법’까지 통과시켰다. 하지만 알 카에다는 또 다른 자금 조성 및 전달 통로를 개척하고 있다. 근대적인 은행 제도가 도입되기 전 인도 이슬람 교도들 사이에 유행했던 자금 전달 방식에서 유래한 ‘하왈라(hawala)’를 적극 활용하거나, 위조 지폐·신용 카드 사기·마약 거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일정한 비율의 커미션을 받고 다른 사람의 돈을 대신 전달해주는 하왈라는 사적 자금 송금 통로여서, 당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고 값도 싸게 먹히는 데다 신속하기까지 하다.

유엔 모니터 팀의 보고에 따르면, 알 카에다는 서유럽에서는 신용 카드 사기를 통해, 아프리카 소말리아 등지에서는 위조 지폐로 자금을 조성하거나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모니터 팀은 또 9·11 테러 직후부터 문제가 되었던 자선 단체를 통한 테러 자금 조성 및 이동 또한 여전히 중요한 루트로 남아 있기 때문에, 자선 단체를 허가제로 변경하는 등 규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9·11 테러가 실제로 자행된 데에는 수많은 인력과 비용, 적어도 3년에 걸친 준비 과정(행동대원의 비행 훈련 포함), 그리고 납치 항공기 등 가공할 장비가 동원되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테러를 분석해보면, 앞으로 있을 테러는 규모가 작아지는 동시에 별다른 무기도 필요 없는 단계로 변화할 수 있다. 2004년 3월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통근 열차 폭탄 테러의 경우, 테러범들이 동원한 무기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광산 개발용 다이너마이트와 휴대전화기가 전부였다. 휴대전화기를 개조해 기폭 장치를 만든 것이다.

유엔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테러는 미국 정부의 주장이 실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실감케 한다. 미국 백악관의 웹 사이트는, 김선일씨 사건을 포함해 지난 몇 개월간 줄이은 끔찍한 참수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빈 라덴을 대신해 알 카에다의 새로운 지역 맹주로 떠오른 알 자르카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라고 자랑스레 외치던 바로 그 순간, 러시아와 프랑스는 각각 오세티아와 중동에서 터진 테러 사건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난 8월 중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알 카에다의 현주소를 조명하면서 ‘빈 라덴을 꺾음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이 최종 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부시 대통령이 틀림없이 내세울 이같은 주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논평한 바 있다.

테러와의 전쟁 3년. ‘총사령관’ 부시 대통령은 승리를 장담했지만, 국제 사회가 바라보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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