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집단 ‘청맥회’가 뛴다
  • 소종섭·주진우 기자 ()
  • 승인 200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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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회원 명단·직책 최초 공개/공기업에 진출한 노무현 정권 탄생 공신들의 모임
청맥회(淸脈會)가 주목된다. 청맥회는 한마디로 ‘노무현 정권 탄생에 직·간접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기업이나 유관 기관에 진출한 인사들의 모임’이다. 현정권이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의 전도사들이 모여 있는 전진 기지이다. 분당 이전 민주당에 있었던 인사들이 주류이고, 시민단체나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섞여 있다.

여권 인사들이 공기업으로 간 것을 놓고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되는 청맥회의 존재는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인사들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이, 다양한 기관에 진출했다는 것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공기업에 사장이나 감사·이사로 간 사람이 제일 많고, 각종 협회나 조합, 기업에 사외이사로도 나갔다. <시사저널>은 청맥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의 명단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한다(오른쪽 표 참조).

청맥회 회원 명단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 외교특보를 지낸 이충렬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감사,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조광한 한국가스공사 감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농업정책 특보를 지낸 이봉수 한국마사회 부회장, 청와대 국정홍보모니터비서관을 지낸 곽해곤 부동산신탁연합회 상근 부회장 등 가까이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 정권 창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민주당 부산 금정 을 지구당위원장을 지낸 김재규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을 지낸 김진모 강원랜드 사장, 국회의원을 지낸 이성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눈에 띄는 인물이다.

청맥회는 재선 의원을 지낸 박정훈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이 회장, 새천년민주당 조직위 부위원장을 지낸 박광순 한국전기안전공사 감사가 총무를 맡고 있다. 9월30일 현재 회원은 60명이다. 박회장은 “깨끗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친목을 도모하자는 것이 청맥회의 3대 목적이다. 정치적으로 오해 살 만한 일은 절대 안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32쪽 인터뷰 기사 참조).
회원 60명, 공기업 ‘개혁 전도사’ 자임

청맥회는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음식점 외백에서 20여 명이 모여 창립했다. 박정훈 회장과 박광순 총무·손주석 환경관리공단 이사 등이 주도했다. 고문(4명) 회장(1명) 부회장(2명) 운영위원(5명) 체제로 운영되는 청맥회는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중국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북한산을 등산하며 함께 땀을 흘리기도 한다. 10월 모임은 10월9일 북한산에서 연다.

청맥회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 직접 계기는 지난 8월 말 지도부가 회원들에게 나누어 준 ‘우리의 실천’이라는 제목의 패이다. 현재 회원 대부분의 책상에는 청맥회라는 이름이 인쇄된 이 나무 패가 놓여 있다. 패의 존재가 관가에 알려지면서 청맥회라는 이름이 외부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참여정부 출범을 위하여 고락을 같이해 온 우리 청맥회원 일동은 우리에게 부여된 소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초심의 자세로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다’로 시작되는 이 패는 회원들의 5대 실천 강령을 담고 있다. △참여정부 국정 철학을 전파하고 국민 참여를 유도하며 3대 국정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부정·부패를 단호히 거부하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으로 새로운 공기업 문화를 정립하는 데 앞장선다 △공기업을 개혁하고 경영 효율을 제고해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개막과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매진한다 △항상 스스로를 성찰한다 △상부상조한다는 것 등이다.

박정훈 회장은 “책상 앞에 놓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깨끗하게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항상 다짐하라는 의미에서 회원들에게 패를 나누어 주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박광순 총무는 “패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올해 초다. 회원들이 행동 강령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 집합체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회원들은 한결같이 조심스러워하며 말을 아꼈다. 언젠가는 공개될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는 한 회원은 “청맥회를 낙하산 인사의 집합체라는 삐딱한 시각으로만 보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공기업에 새로운 문화를 뿌리 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는 것이다.

청맥회의 실제 활동을 들여다보면 그의 말은 설득력 있는 부분이 있다. 청맥회는 8월 모임에서 유영렬 숭실대 대학원장을 초청해 중국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에 대해 듣고 토론했다. 또 어떤 때는 자체적으로 발제자를 정해 현안을 함께 고민하는 등 모임이 ‘단순히 모여서 밥 먹고 헤어지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회원 가운데 업무와 관련해 구설에 오른 사람도 아직 없다. 관용차는 출퇴근용으로만 쓰고 회의 시간에 단 1분이라도 늦은 적이 없다는 한 회원의 말처럼 긴장감 있는 일상을 사는 회원들이 대부분이다.

산업자원부와 환경부 산하 공기업에 간 인사들은 청맥회 내에서 소모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전남 장성광업소를 방문해 석탄을 캐는 지하 막장에까지 들어가 보았고,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견학하는 등 현장 활동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관련 부처의 고위 공무원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청맥회를 보는 시각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정권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회원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보니 ‘특별한 파워 그룹’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맥회 회원들은 명단을 공개한다는 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단순한 친목 모임인데 ‘낙하산 그룹’ ‘정치적인 파워 그룹’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청맥회에 대한 평가는 노무현 정권의 성패 여부와 그들 자신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성과를 일구어내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만약 일부 회원이라도 직무와 관련해 부정·비리에 연루되거나 능력이 부족해 퇴진 압력에 직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과거보다 더욱 매서운 비판이 그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도덕성’은 현정권이 내세운 제일 덕목이고, 청맥회 회원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이를 선도해야 하는 ‘전도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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