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파벌 대립은 노동운동계 고질”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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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인터뷰
부드러운 직선, 자칭 낙관주의자인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의 지론이다. 원칙에는 철저하되 여유를 갖고 부드럽게 사안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그도 ‘기아자동차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얼굴이 밝지 않다.

지난 1월26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이위원장은 심경을 보여주듯 검은색 점퍼에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웃음을 보였지만, 그 웃음 너머로 언뜻언뜻 고뇌를 내비쳤다. 이위원장은 기아자동차 사태를 계기로 시대에 맞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아자동차 사태의 파장이 크다.

그렇잖아도 노동조합이 권력화하면서 정도를 가지 않는다는 비난과 오해를 받아오던 와중이었다. 운동권 프리미엄이 없어지는 단계에서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터졌다. 당혹스럽고 안타깝다. 국민에게 정말 죄송하다. 본질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았는데, 이제는 정말 노동운동이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사태를 그 계기로 만들 것이다.

제자리라면?

사회 변화와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임금·근무 여건 등 개인이나 단위 노조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의료나 교육 등 사회 개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아자동차 사태가 일어난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노동운동가에 대한 자본의 포섭 전략과 노조 간부의 도덕적 해이, 두 가지가 겹쳐 일어난 사건이다. 사용자들은 당근과 채찍 전략을 구사하며 전근대적인 노무 관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집요하게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운동가들을 포섭한다. 당근이 통하지 않으면 엄청난 징계,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노조를 무력화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노조 간부에게는 더 엄격한 도덕률이 요구된다. 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엄격한 조사를 해서 조처한 뒤 강도 높게 자정 노력을 할 것이다.

귀족 노조·특권 노조라며 대기업 노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규율이 세고, 단결의 질이 높고, 사용자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대기업 노조가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힘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쓰지는 않는다. 외부에서 보듯이 노조위원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귀족 노조라는 비난은 과도하다. 일부 보수 언론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면에는 노동운동 자체를 약화하려는 기도가 숨어 있다.

홈페이지를 보니 민주노총이라는 이름을 대기업 노총으로 바꾸라는 주장도 있다.

전체 1천5백만 노동자 중에 민주노총 소속은 5~6%에 불과하고 대기업 노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지적은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기아자동차 사태를 바라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이 어떻겠나. 이것이 노동운동의 현실이고 한계이다. 그래서 현재의 기업별 노조 체제를 산별 노조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영세·중소 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 폭을 넓힐 수 있고, 오히려 그쪽이 중심이 될 수 있다.

기아자동차 사태가 터지기 전 민노총 지도부는 이런 사실을 몰랐나?

첩보 수준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기아자동차 사태와 관련한 민노총의 앞으로 계획은?

8명으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노조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겠다. 우리 스스로 의혹이 없도록 모든 것을 드러내고 그에 상응하도록 처리할 것이다. 기아자동차뿐만 아니라 민노총 소속 다른 기업 노조들에 대해서도 확인하겠다.

정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벼른다. 이에 맞서 총파업을 결의했는데 영향이 없겠나?

정부 법안대로 가면 비정규직이 더 양산될 수밖에 없다. 총파업 결행 여부는 정부의 태도에 달렸다. 정부가 강행 처리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밀어붙인다면 총파업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지난 대의원 대회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했다.

1년 전 취임할 때 내부를 혁신해 민노총을 변화시키겠다고 했다. 잘 되고 있나?

어렵다. 잘 진척되지 않는다. 조합원들이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의 통합력에 문제가 있다. 구체화해 추진·변화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임기 안에 다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기초를 다지겠다.

‘이수호 체제’가 지난 1년간 투쟁도 제대로 못하고, 새로운 노동운동 방식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년만큼 많이 싸운 적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했던 총파업만큼 제대로 된 총파업도 없었다. 가장 많이, 질서정연하게 싸웠다. 어떻게 평가하든 그게 맞다. 무조건 싸우고 구속되고 책임 못 지는, 그런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조직 내 정파 문제로 1년 내내 발목이 잡혀 지난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기까지 했다. 조직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무슨 싸움을 하나. 말로야 그럴듯하게 청사진을 낼 수 있지만 실천을 못하면 무슨 필요가 있나. 조직의 한계이자 나의 부족이다.

민노총이,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에 동의하나?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그렇게 나왔으니 나 혼자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언제는 어렵지 않았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깨지더라도 결국 이기는 싸움이었다. 지금은 자본·권력이 가해오는 행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기아 사태도 여기에 말려든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말 단결해서 일관성 있게 대응하고 있느냐를 볼 때 미흡하다. 이런 측면에서 위기다.

어떻게 헤쳐가야 한다고 보나?

계급성을 분명히 하면서 민노총이 어떻게 노동자 전체의 대표성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야 그 힘으로 자본·정부와 대화도 할 수 있다.

노사정위에 참여할 것인가?

2월1일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안이 통과되면 즉시 대화를 복구하겠다.

잘못된 노동운동 풍토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과도한 정파간 대립, 변질된 정파 운동, 이런 것은 고쳐야 한다.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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