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총기 강도 용의자의 이중 생활
  • 대구·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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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기고’인 대구 총기 강도 용의자 ‘이중 생활’
7월28일 밤.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김 아무개씨(38) 집 주변을 경찰특공대 17명, 기동수사대 18명, 마약계 형사 7명이 소리 없이 포위했다. 김씨가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첩보를 들은 경찰은 긴장했다. 2층 계단에는 센서 감지등과 무인감시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경찰은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아침 7시10분 작전을 개시했다. 침투조 2명이 전원을 끄고, 샷건 1발을 현관문에 발사해 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체포조 2명이 방으로 뛰어들어 김씨를 체포했다. 삼덕동 총기 강도 용의자 검거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 1주일 전인 지난 7월22일 오전 10시께 대구시 삼덕동 ㅇ섬유 회장 집에 총기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화장실에 숨었다가 회장 이씨(62)를 발견하고 총을 쏘았다. 총알은 이회장의 어깻죽지 아래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범인은 미화·엔화·수표·현금 등 4백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7월29일 용의자는 체포되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용의자 김씨 집에서 발견된 총기류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김씨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며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서 경찰은 곤혹스럽게 되었다.

7월29일부터 31일까지 경찰이 김씨 집과 창고, 무쏘 승용차 등을 뒤져 압수한 무기류는 무려 3백86점에 달한다. 9mm 베레타 권총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었다. 4.5구경 권총 총열은 ‘made in USA’라고 적힌 미제 강철이었지만 노리쇠와 손잡이는 강력 플라스틱이었다. 그밖에 공기권총·공기소총·가스총 2정·탄알·타정용공포탄 수백발·탄환제작서·금형틀·장약·드릴·절단기·전기 그라인드까지 압수물은 다양했다.

일부 네티즌은 김씨가 간첩이 분명하다며 열을 올렸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김씨는 1965년 대구시 북구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다. 2000년 5월 결혼해 세살 난 딸을 두었다. 아내 이씨(32)는 대구 시내 한 성당에서 회계를 맡고 있는 믿음이 깊은 신도다. 이씨가 속한 레지오(기도회) 부단장 조 아무개씨는 “남편 김씨는 너무나도 착해 보였다. 뉴스를 듣고 믿을 수 없었다. 요즘에는 그가 성당에 나오지 않아 믿음을 권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총기 사건이 있었던 22일 이후에도 성당 신도들은 김씨네 집을 방문해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에서 자신의 직업을 인테리어 건설업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손재주가 좋아서 성당 사람들은 공사를 하는 주변 사람에게 김씨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3개월 전까지 인테리어 사무실도 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구지방경찰청의 한 간부는 “그는 전문 털이범이다. 범죄가 직업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만든 보도 자료에는 그의 직업이 ‘무직’으로 되어 있다. 그는 전과 9범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아내는 대졸 출신인데 김씨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김씨 외에 다른 형제 자매(4남매)는 대구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김씨가 손재주가 뛰어나고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데는 경찰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김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형사에게 “형님, 제 아이큐가 150입니다”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김씨는 지난 10년간 다섯 번이나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아마추어 발명가였다. 1994년 ‘타출기’를 시작으로 1996년 11월에는 ‘봉지용 포장대용 유출구’, 1998년 5월에는 ‘주전자의 여과망 탈착구조’, 2000년 8월에 ‘황토매트’, 2002년 8월 ‘진공청소기용 흡입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사는 다양했다. 그 중에 황토매트와 진공청소기 흡입구는 정식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김씨의 특허는 총기와는 무관했고, 아이디어는 참신한 편이었다.

김씨가 삼덕동 총기 사건의 진범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김씨는 사건이 있었던 22일 아침 9시55분께 아내를 성당에 데려다 주었고 12시 정오에 신도 심 아무개 할머니(70)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주장했다.

대구 중구에 있는 성당에 직접 찾아가 보았다. 김씨의 알리바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김씨 아내 이씨가 기도회에 참석한 것은 맞다. 이씨와 같은 레지오 단장 전 아무개씨(48)는 “그날 12시쯤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다 김씨가 ㅅ할머니를 차로 모셔다주는 장면을 봤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0시쯤 아내를 데려다 준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김씨 아내가 다닌 성당을 답사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구 ㄱ 성당에서 삼덕동 2가에 있는 이회장 집(범행 장소)까지의 거리는 불과 1.6km.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다. 설사 22일 아침에 김씨를 본 목격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경찰은 히든카드를 쓸 수 있다. 아내를 성당에 데려다 준 뒤 재빨리 삼덕동까지 뛰어가서 범행을 저지른 후 태연히 성당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김씨를 범인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유는 제보자가 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김씨가 이회장 집을 염탐하려고 근처 ㅈ타워에 들락거릴 때 동행했다고 증언했다. 기자가 ㅈ타워 19층에 올라가보니 과연 이회장 집이 한눈에 훤히 보였다. 집 북쪽에 있는 공사장과 담이 붙어 있었다. 공사장으로 내려가 보니 파이프를 밟고 쉽게 2층에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김씨는 지역 신문 기자들에게 “10년 전 서바이벌 게임장에 갔다 총에 매료되었다. 총기 분해 및 조립을 하다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서울 청량리에서 총기를 구입했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했지만, 이후 대구 달서동 노점상과 총포상 세 곳에서 샀다고 말을 바꾸었다. 총기 전문가들은 범행에 사용된 총을 99% 수제품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결정적 증거물인 38구경 권총과 수표 등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에서 정말 중요한 점은 김씨가 범인이냐 아니냐보다 가정집에서 그렇게 많은 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자신 없이 한 발짝 빼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무기도 DIY(자체 제작)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순간에도 김씨와 같은 ‘아이큐 150인 발명가’들이 사제 총기를 제작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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