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완-검찰 ‘거래’ 깨지나
  • 주진우 (ace@sisapress.com)
  • 승인 2003.09.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 못 믿겠다” “김씨가 약속 안지킨다”…강제 송환 움직임에 폭탄 선언 대응설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 보따리를 특검으로부터 넘겨받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안대희 검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입 단속이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담당 검사는 물론 수사관들에게까지 친분이 있는 기자 이름을 모두 적어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사안에 대해 언론에 유출되는 정보가 있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도 놓았다”라고 말했다.

대검의 계산은 주효했다. 정몽헌 회장 자살과 김영완씨 미국 잠행, 그리고 대검의 입 단속이 어우러져 비자금 사건 수사 관련 정보는 말라버렸다. 반면 대검의 수사는 속도를 냈다. 지금까지 대검이 현대 비자금 사건에 대해 밝힌 내용은 대강 이렇다.

‘김영완씨는 권노갑·박지원 씨의 자금 관리자로서 박씨가 현대로부터 받아 돈세탁을 부탁했던 1백50억원과 권씨가 맡겼던 현금 2백억원, 그리고 또 다른 비자금 약 100억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김씨가 2000년 이후 관리해온 비자금 규모는 총 천억원대로 추정되는데, 이를 차명 계좌 100여개를 두고 관리해왔다. 이 중 2백3억원을 압수했다.’

대검이 파악한 내용의 상당 부분은 김영완씨의 자술서에 근거하고 있다. 김씨가 입을 열지 않은 돈의 출처와 쓰임새에 대해 수사가 별 진척이 없는 것을 고려하면, 김씨의 입만 쳐다보고 있기는 검찰도 언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의 자술서 내용을 확신하고 있지만 신뢰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술서에서 김씨는 자신과 권노갑씨가 공모한 혐의는 철저히 누락했다. 더구나 이 자술서에 대해 권씨측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김씨가 자진 귀국하지 않을 경우 이 자술서의 증거 능력에 대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권 전 고문의 한 측근은 “김영완씨에 대해 검찰이 밝혀낸 것은 대학 졸업 앨범에 있던 증명 사진 한 장뿐이다”라고 비꼬고 있다.

지금까지 김씨는 검찰과 창구를 열어놓고 검찰 수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여기에는 국내에 산재해 있는 김씨 소유의 수백억원대 재산 환수 문제가 지렛대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제 김씨와 검찰의 거래가 고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김씨는 다각도로 검찰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씨의 한 측근은 “김씨가 검찰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수사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있어 본질에는 다가가려 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또 다른 측근은 8월 말 한나라당의 한 의원과 접촉해 “검찰은 김영완이 제출한 증거를 축소·왜곡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자료를 제출하고 증언할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보좌관은 “그는 김씨가 북으로 건너간 돈 일부에 대한 돈세탁에 관여했고, 다른 대기업에서 들어온 정치 자금도 관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조사는 정치적인 이유로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몇 차례 귀국할 뜻을 전해왔지만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스스로 신뢰를 깨고 있다. 김씨가 귀국하지 않을 경우 미국 법무부와 협조해 강제송환 절차에 돌입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김씨는 현재 정치적 망명을 고려하면서 폭탄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