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막힌 청와대와 불교계
  • 나권일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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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 ‘북한산 관통 공론조사’에도 반발…10월 초 종단 공식 발표가 고비 될 듯
9월28일, 북한산국립공원 안에 자리잡은 조계종 ‘회룡사’ 경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회룡계곡과 등산로 곳곳에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 관통 터널 공사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회룡사 입구에는 ‘북한산에 구멍이 뚫리는 날 북한산과 함께 죽으리라’고 회룡사 수행 스님 19명이 서명한 결의문이 유언장처럼 게시되어 있었다. 회룡사는 북한산국립공원 사패산 능선에 자리잡은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도량.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회궁하던 중 다시 함흥으로 돌아가려다 절에 머무르던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뜻을 굽혔다고 해서 회룡(回龍)이라고 했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지만 9월19일 최종찬 건설교통부장관이 회룡사 소유 임야 일부를 통과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일산∼퇴계원 구간 사패산 터널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회룡사 스님들은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특히 노대통령이 지난 9월22일 법장 총무원장과 만나 ‘원점으로 돌아가 공론(公論) 조사로 결정하자’고 제의한 뒤부터 회룡사 스님들은 오히려 북한산 사수 의지가 더 강해진 분위기다.
회룡사에서 45년 동안 수행하고 있는 혜주 스님(79)은 “공사를 강행하면 위법망구(爲法忘軀. 불법을 위해 몸을 던짐)하겠다”라고 밝혔다. 회룡사 주지 성견 스님은 “공론조사는 대통령이 공약을 팽개치고 공사를 강행하려는 핑계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라며 노대통령을 비판했다. 신도들은 더 흥분했다. 회룡사 신도회장 김은숙씨는 “스님들의 수행처에 길이 4. 6km나 되는 8차선 고속도로를 뚫는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불교계를 무시하는 처사이다”라고 주장했다.

회룡사 스님과 신도 들은 조계종단이 공론조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공사에 반대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불교환경연대 등 불교계와 환경단체들도 9월26일 공론조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사태가 해결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회룡사 수행승 출신인 불교환경연대 조직관리실장 법현 스님(36)은 “공사에 반대하는 의지는 변함없지만 종단의 공론조사 수용 결정에 대비해서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산 관통 도로 문제는 10월 초로 예정된 조계종단의 공식 입장 표명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종교계에서는 법장 총무원장이 공론조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불교환경연대(상임공동대표 수경 스님)의 한 관계자는 “정치 권력에 비위를 맞춰야 하는 종단의 신세가 서글플 뿐이다”라고 말해 종단이 공론조사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론조사를 계기로 터널 공사를 재개하는 대신 조계종단이 서울 조계사 경내에 6백8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한국 불교 역사문화 기념관’ 공사비 상당액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는 ‘묵계’설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불교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현안은 아직 산 넘어 산이다. 경부고속철도 부산∼대구 구간의 천성산·금정산 관통에 반대하는 비구니 스님들은 9월26일부터 10월3일까지 8일간 50km 삼보일배에 들어갔다. 지율 스님은 몸을 버리겠다는 각오로 부산시청 앞에서 매일 3천배를 수행하고 있다. 청와대와 불교계의 코드 맞추기가 갈수록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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