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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길 된 송두율의 ‘37년 만의 귀향’

송두율 교수, 국정원에서 고강도 조사 받아…로동당 입당 시인, 파장 부를 듯

고제규 ㅣ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9.30(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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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송두율 그대로입니다.” 9월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형규 이사장)가 주최한 해외민주인사 환송회에 송두율 교수(59·뮌스터 대학)는 지각했다.

시내에서 김형태 변호사와 장시간 대책회의를 가진 뒤 송교수는 환송회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았다. “독일에서 비행기 탈 때부터 체포 영장이 발부된 줄 알았다. 그런데도 자진 출두해서 진실을 이야기했다. 빨리 선영에 가서 그동안 못한 자식 도리를…” 순간 송교수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37년 만에 찾은 고국길이 그에게 고생길로 바뀌었다. 9월2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선친의 산소를 가장 먼저 찾고 싶다던 그의 열망은 국가정보원(국정원) 조사에 막혔다.

귀국 다음날인 9월23일, 송교수는 김형태 변호사와 함께 두툼한 자료가 든 가방을 들고 국정원에 출두했다.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여서 48시간 동안 밤샘 조사를 받을 것도 각오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예상이 빗나갔다. 변호사 입회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접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지만, 국정원은 전례가 없다며 변호인 입회를 불허했다. 국정원은 송교수를 입건하지 않고 다음날 새벽에 귀가시켜 48시간이라는 법률적인 시한을 피해갔다. 김형태 변호사는 “출퇴근 조사는 예상하지 못했다. 국정원에 허를 찔렸다”라고 말했다.

송교수는 9월27일까지 명목은 자진 출두였지만 실제로는 피의자 신분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9월25일 국정원 조사를 끝내고 그는 숙소 근처 포장마차에서 과음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국정원 조사에 지쳐갔다.

9월27일 오후 1시30분, 송교수는 국정원에 출두해 마지막 조사를 받았다. 그 날 송교수는 귀국 1주일 만에 아버지 선영을 찾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사가 길어져 또다시 무산되었다. 그 날 송교수는 국정원에서 의외의 인물과 대질했다. 1992년 5월22일 입국한 자수 간첩 오길남씨(61)와 만난 것이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국정원 조사는 크게 두 갈래다. 독일 유학생들에게 입북을 권유했는가와, 그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23위 김철수’와 동일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오길남씨는 바로 송교수가 자신에게 입북을 권유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지목한 장본인이다. 원래 둘은 독일에서 민주화운동을 함께 펼친 ''동지’였다. 서울대 독문과 출신인 오씨는 1970년 독일로 유학했고, 1974년 송두율·이삼열 교수(숭실대) 등 재독 유학생 55명과 함께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를 만든 창립 회원이었다. 초대 회장은 송두율 교수가 맡았다.

오씨 역시 민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1978년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오씨는 1985년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해 12월 오씨는 부인 신숙자, 딸 혜원·규원을 동반하고 입북했다. 입북한 뒤 그는 대남 방송을 전담한 칠보산연락소 방송 요원으로 활동했다. 북한이 경제학자로 임명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1986년 11월 가족을 북한에 남겨두고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혼자 탈출했다. 1986년 12월 독일로 정치 망명을 해 매달 4백32 마르크(한화 19만4천원)씩 수당을 받고 생활하다가 1992년 자수해 귀국했다.

오씨는 당시 안기부에 제출한 3백58쪽짜리 자술서에서 윤이상·송두율을 입북 권유자라고 지목했다. 당시 안기부는 오씨의 주장을 근거로 조직표를 만들었다. 안기부는 송두율 교수가 1974년부터 입북해 밀봉교육을 받았고, 1991년 5월 다시 입북해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발표했다.

오씨는 현재 국정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오길남씨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송두율이 1970년대부터 북한을 드나든 것을 칠보산연락소 고문 이창균의 아내 오군임한테 들었다”라고 말했다.

9월27일 국정원 대질에서 오씨는 그동안의 주장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송교수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지, 적극적으로 입북을 권유받은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오씨는 기자에게도 “당시 방북은 누가 권유했다기보다 내가 결정한 것이다. 나한테 책임이 있다. 송교수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오씨와 송두율 교수를 잘 알고 있는 이삼열 교수는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민건 내에서 논쟁이 붙었다. 민주화 노선과 통일운동 노선인데, 이 과정에서 일부가 통일운동 차원에서 북한을 택하기도 했다. 오씨가 입북한 것 역시 그런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씨와 대질함으로써 송교수측은 유학생 입북 권유 부분은 무혐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쟁점은 송교수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23위 김철수가 맞는지이다. 국정원은 ‘김철수 문제’에 대한 상당한 파일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교수가 준비한 자료를 제시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국정원 자료가 방대하고 풍부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송두율 교수는 김철수로 초청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장례식 때 북한은 송두율 교수를 ‘김철수’로 초청했다. 세미나 일정 때문에 방북을 망설이던 송교수는 북한의 강력한 요청으로 김철수인 줄 알면서도 입국했다.

김주석 장례식 뒤에도 북한이 송교수를 김철수로 지칭하자, 송교수 본인이 북한 당국에 항의했다고 한다. 김형태 변호사는 “국정원이 제시한 자료에 이같이 항의한 사실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송두율 교수가 김철수로 불렸지만, 정치국 후보위원 23위 김철수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송두율 교수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목했던 황장엽씨는 지난 9월18일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1998년 자신의 저서에서 황씨는 김용순 비서로부터 송두율이 정치국원이라는 이야기를 간접으로 들었다고 주장해왔다. 황씨는 “송두율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고, 김철수로 바꾼다는 보고를 직접 받았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조사에서 송교수는 로동당 입당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송교수는 유신 체체 출범 후 1973년 로동당에 입당했고 그즈음 방북했음을 시인했다. 송교수는 국정원에 이같은 사실을 먼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정원은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송교수가 서열23위 김철수라는 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조사에서 송교수는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부인했고, 그동안 학자로서 방북 활동을 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9월29일 그는 대한민국 국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국정원에 제출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서약서는 로동당탈퇴서와 같은 의미다”라고 밝혔다.

서약서를 제출함으로써 송교수는 사법적 재단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과 로동당 입당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한나라당은 송교수를 구속하라고 주장하고, 그를 초청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내년 예산 삭감뿐 아니라 존폐까지 거론하고 있다.

9월28일 송교수는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그는 절하기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 사찰을 찾아 오랫동안 명상했다. 귀국한 지 1주일 만에 서울을 벗어난 송교수의 외출 길은 고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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