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으로 쏜 ‘동투’ 신호탄
  • 주진우 (ace@sisapress.com)
  • 승인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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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사태에 분노한 노동자 5만여명 격렬 시위…범국민대회 등 줄이어
70년 11월13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씨가 분신 자살한 날이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민주노총은 해마다 11월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11월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노총 소속 노동자 5만여 명이 모여 대회를 열었다.

배달호·이현중·김주익·곽재규·이용석. 올 들어 잇달아 분신한 노동자들이다.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집회 시작 전부터 격앙되어 있었다. 8일 밤 중앙대에서 열린 전야제 분위기는 이 날 대형 충돌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 참가자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악에 바쳐 있었다. 참가자들은 강력한 투쟁을 요구했고,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시청 앞 원형 무대에는 이런 문구를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3시부터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단상에 오른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용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 신청, 비정규직 차별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 동지들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말했다.
충돌은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시위대가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면서 시작되었다. 경찰은 93개 중대 1만여 병력을 집회장 주변에 투입해 시위대를 막았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쇠파이프와 돌을 던지며 경찰에 대응했다. 잠시 후 3백여개의 화염병이 나뒹굴며 종로 일대는 불바다를 이루었다. 화염병 시위는 2001년 3월 종묘공원에서 열린 공기업 매각 반대 집회 이후 2년 7개월 만의 일이다. 이 날 시위는 당시보다 훨씬 격렬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1980년대 시위처럼 강도가 셌다. 최근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충돌은 2시간여 만에 끝났다. 이 충돌로 경찰 44명과 시위대 50여명 등 100여명이 다쳤다. 민주노총은 이 중 56명이 중상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시위 참가자 중 1백11명을 연행해 조사 중이다.

시위가 이렇게 과격 양상을 띤 데 대해 경찰은 집회 허가가 나지 않는 광화문으로 진행된 불법 시위를 법적으로 대응해 막아냈다고 밝혔다. 허성관 행자부장관은 “과격 시위 관련자 및 배후 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사법 처리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 충돌이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라고 항변한다. 민주노총측은 “새 정부 출범 8개월 되도록 노동자 1백44명이 구속되었고, 46개 사업장에서 노조가 1천4백억원의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4백억원대 손배 가압류를 제기해 정부 스스로 노동 탄압에 앞장서 왔다”라고 주장했다. 한 민주노총 간부는 “정부가 한 개 가진 노동자 대신 99개 가진 사측을 편들고 있다. 얼마 전 분신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말처럼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노동자들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상처는 아물 기미가 없고, 전투는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11월15일 범국민대회, 17일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 방한 반대 집회, 11월19일 농민대회, 12월3일 민중대회…. 험난하기만 한 ‘동투(冬鬪)’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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