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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환ㆍ정진상 교수 무죄 판결의 의미

장상환·정진상 교수 무죄 판결…“싸움은 이제부터”

경남 창원·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ㅣ | 승인 2000.08.0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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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데 불과하다. 여태도 그랬지만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학문을 연구하면서, 우리 두 사람이 담당해야 할 자리에서 싸워 나갈 것이다.”

무려 6년을 끈 끝에 지난 7월24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경상대학교 교양교재 <한국 사회의 이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재판장 이재철 부장판사)는 장상환(50·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정진상(42·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두 피고에게 마침내 무죄를 선고했다. 이재철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비록 개폐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해도 국보법은 아직 ‘살아 있는’ 법이다”라고 강조했으나, 혐의 사실에 대해서는 ‘다소 거슬리는 부분은 있지만 학문적 내용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날 검찰은 즉각 항소할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도 동료 교수와 학생 등 축하객 3백여 명에 둘러싸여 법정을 나서며 내지른 두 사람의 일성은 마치 유죄 선고를 받은 소감처럼 들렸다.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점도 분명히했다. 검찰의 항소 방침을 의식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갇힌 공간(법정)에서 벗어나 열린 공간(사회)에서 벌이는 싸움이 될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이들이 겨냥하는 싸움의 상대가 분명해진다. 바야흐로 그동안 논단(論壇)에 머물렀던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벌어지고 있는 국보법 개폐 논쟁의 열기 속에 열려 처음부터 관심을 모았다. ‘논란’만 부챗살처럼 퍼져 나갈 뿐 ‘논의’는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결 내용이 일정한 방향타 구실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가장 보수적 조직이자 국보법 ‘집행자’인 사법부가, 두 피고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는 형식으로 국보법 ‘폐기 처분’에 동의한 것일까.

그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견해가 많다. 우선 장·정 두 교수가 대표적이다. 처음부터 무죄 판결을 확신하고 있었던 이들에게,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재판부가 국보법 처리 문제를 염두에 두고 내린 판결이 아니라, 단순히 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린 결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국보법 폐지는 새 역사의 시작”

사실 이번 재판 과정 내내 무죄 판결 징후가 엿보였다. 두 피고인은 “죄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었지만, 그것이 판결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재판에 응하는 검찰의 태도를 보고 난 후에야 확신했다. 검사들이 공안 사건을 다룰 때와 같은 집요한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소극적 자세는 심리 진행 속도에서도 감지되었다. 이번 재판은 선고 공판까지 14차에 걸쳐 열렸다. 그러나 제대로 진행된 경우는 절반 정도이다. 첫 심리가 열린 1995년 4월부터 몇 달을 빼고는, 다음 재판 날짜만 잡고 폐정하다시피 했다. 검찰측 증인이 출석하지 않아 심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탓이다. 피고측은 검찰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자신이 없자 고의로 지연 작전을 펴오다 남북 화해 정국이 조성되자 부담 없이 ‘패소를 받아들이기 위해’ 결심 공판에 임했다고 풀이한다.

사건 초기 법원의 한 자료도 무죄 판결을 강하게 예고했다. 두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서가 그것이다. 1994년 8월30일 자진 출두한 두 피고에 대해 검찰이 영장을 신청하자, 다음날 창원지법은 이례적인 내용의 사유서를 덧붙여 이를 기각했다. 최인석 판사가 작성한 영장청구 기각 사유서는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 영장 기각 사유서라기보다 두 피고인의 무죄를 밝힌 판결문에 가까웠다.

사유서에서 두 교수가 특히 주목하는 내용은 ‘학문 분야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와 ‘다른 집필자에 비해 진보성이 두드러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두 부분이다. 정진상 교수는 “최판사의 영장 기각 사유서야말로 우리가 보수 기득권층의 ‘보안사범 만들기’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마구 들이댈 수 있는 보안법이 오·남용되는 것을 막자면 폐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의 이해> 사건 수사는 1994년 7월 검찰 내사가 아니라 국가안전기획부(당시)의 ‘협조 요청’에 의해 시작되었다. 1994년 6월2일 안기부 경남지부가 창원지검에 보낸 ‘국보법 위반 혐의자 수사 처리 협조’ 공문은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 유 아무개 연구위원의 경상대학교 교양과목 교재 <한국 사회의 이해>에 대한 감정 결과에 의하면…’으로 시작해 여섯 가지 혐의를 적시했다.

장상환 교수는 “6년이나 ‘피고인’ 족쇄를 채운 것은 바른말을 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그러나 강단과 연구실에서 얻은 학문 성과가 우리 사회에 정확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마음 빚도 적잖이 졌다. ‘학문·사상·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지원한 수십 개 지식인 단체, 무료 변론에 나선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힘을 모아 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을 초청해 7월28일 경상대에서 여는 가칭 ‘<한국 사회의 이해> 투쟁 승리 한마당’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최전방을 맡는 보안법 폐지 투쟁 출정식으로 삼을 생각이다. 출정사를 미리 들어 보았다.

‘우리는 국보법에 가위눌린 채 살아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 따갑게 들었던 ‘말 많으면 빨갱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국보법 정신’에 닿아 있습니다. 기득권층에는 억압의 수단이었고, 피지배층에는 살아 남는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굴종과 침묵을 강요하고 저항을 거세하는 사회는 결국 몰락합니다. 국보법 폐지는, 우리의 정신과 사회를 다시 세우는 역사(役事)이자 새로운 역사(歷史)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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