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표 구속은 언론 길들이기?
  • 金寅培 기자 ()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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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도 ‘사정권’에 있음을 암시
홍두표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구속한 것을 계기로 정·관계에 ‘최순영 괴담’이 나돌고 있다.

지난 5월20일 서울지검 특수1부에 의해 전격 구속된 홍사장의 혐의는 KBS 사장 재직 때인 96년 12월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으로부터 KBS 직원의 퇴직 보험 유치와 부정적인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홍사장은 명백한 ‘범법자’다. 검찰은 “홍사장이 백만원짜리 수표 백장을 받았지만 모두 헌 수표여서 계좌 추적에 실패했으나 최회장의 진술을 통해 혐의를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홍회장 구속은 법치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정 대상 선별 작업중” 소문

그러나 표적 수사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런 의혹을 부른 1차 요소가 이른바 최순영 리스트이다. 홍사장에 앞서 5월 들어서만 이정보 전 보험감독원장과 이수휴 전 은행감독원장이 구속된 것을 한데 묶어 검찰이 최회장을 통해 상당수 인사의 비리를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리스트’설이 나돌고, 검찰은 그때마다 부인해 왔다. 검찰은 이번에도 ‘최순영 리스트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검찰이 부인하는데도 최회장을 둘러싸고 나도는 괴담의 결론은 최순영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정권 차원에서 사법 처리 대상을 선별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은 홍사장이 KBS 사장을 지냈다는 전력 때문에 정·관가를 관통해 언론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언론계 일각에서는 ‘언론인 내사설’이 고개를 드는 등 언론계를 표적으로 한 정부의 사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결코 방향을 정해 놓고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범죄 사실이 있으면 이를 은폐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의 일관된 방침이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지금은 정권이 언론에 손댈 만한 여력이 없다. 시기도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홍사장 구속은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경찰에 대해 검찰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 성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이 이만한 거물도 잡아넣을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한 측면이 강하다”라고 색다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홍사장 구속을 언론계 사정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 관계자는 “현정권이 홍사장을 세종문화회관 초대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지기까지 했는데 그를 타깃으로 삼을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또 오홍근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이번 개각에서 국정홍보처장으로 입각한 것 등을 감안하면 홍사장 문제를 언론계 사정의 신호탄으로 보는 것은 확대 해석 같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언론계 내부에서는 홍사장 구속이 언론계 사정과 직결된 것이 아닐지라도 이번 사안을 기점으로 정부가 ‘언론계 길들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언노련 관계자는 “DJ는 YS처럼 저돌적이지는 않다. 언론에 손을 대도 서서히 할 것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홍사장 구속이 언론계 사정과 무관하다고 풀이한 청와대 관계자는 “당정간 내부 전열이 정비되면 필요할 경우 언론을 포함해 제2의 사정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8월로 예정된 국민회의 전당대회 이후가 개혁의 적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견임을 전제하면서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이 관계자의 발언은 언론계가 언제라도 ‘사정권’에 들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최순영 리스트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그것이 제2의 사정으로 이어지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관계뿐만 아니라 언론계까지도 홍사장 전격 구속을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받아들이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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