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스타 증인` 김진희씨 인터뷰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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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 증언한 ‘굿머니’ 직원 김진희씨
굿머니는 어떤 회사인가?
2000년 김영훈 회장과 사채업을 하던 몇 사람이 모여 굿머니를 만들었다. 30개 지점에서 대부업을 주로 하는 사채 회사다. 굿머니는 뚜렷한 수익원 없이 전적으로 김씨 위주로 운영되는 회사다. 직원들은 김씨를 거의 주군으로 모셨다. 한 직원은 김씨 앞에서 맞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잘리기도 했다. 나는 굿머니가 종합금융회사인 줄로 알고 들어갔다.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광고도 펑펑 때리고 외부적으로는 엄청 돈이 많은 회사로 보였다.

굿머니 회장 김영훈은 어떤 사람인가?
돈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항상 지갑에 돈 천만원씩은 넣고 다니며 물 쓰듯 썼다. 장애인(소아마비)이었지만 차분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해 보였다. 남이 목발을 집어준다든가 하면 싫어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다. 베르사체 정장 아니면 안 입고 100만원짜리 신발에 천만원짜리 불가리 시계로 치장한 노블레스족이기도 했다. 명품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치장하고 BMW와 에쿠우스를 타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처럼 보였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상호저축은행에서 일했다고 한다. 여기서 전주를 만나 대부업에 나섰다. 사채·카드깡 하던 사람이다.

어떤 계기로 굿머니에 들어가게 되었나?
3년 전부터 알고 지낸 김영훈씨로부터 2002년 10월10일께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같이 일하자고 말한 1주일쯤 후, 내 명의로 사무실을 얻어놓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이 내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일하면 나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허영심이 있었다. 김회장을 만나기 전에 언론에서 굿머니가 일본 업체보다 앞서가는 유망한 회사라는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와 더 믿음이 갔다.

굿머니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굿머니의 주변 회사인 ‘I&She 커뮤니케이션즈’의 사장 직책을 받았다. 굿머니와는 상관없이 여자를 모집하는 일을 했다. 김영훈씨가 김천상호저축은행을 통해 채권을 현금화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해 모집해 달라는 것이었다. 3백20명의 피해자 가운데 100명 남짓한 사람을 모았다. 명의만 빌려줄 뿐 전혀 피해는 없다고 했다. 그 대가로 1인당 3천만원을 준다고 했는데 내가 아깝다며 2천만원으로 깎았다.

‘이름만 빌려주고 2천만원을 준다’는 논리는 일반인이 보기에 사기성이 짙어 보인다. 의심하지는 않았나?
워낙 돈이 많은 회사였고,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큰 기업은 이런 일들을 통해 세금 포탈 등 많은 일을 한다고 봤다. 일반인들은 속을 수밖에 없었다. 명의를 빌려주며 제출한 서류는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 한 통 그리고 주민등록증 복사한 게 전부였다. 담보나 보증인도 없는데 1억6천만원에서 1억8천만원을 대출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김영훈씨는 서류상으로만 돈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불법 대출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6월께 김영훈씨가 도망가는 순간 알았다. 김씨가 도피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고 나도 믿었다. 그런데 사업 시작 이후부터 계속 희생양이 필요했다. 100여명의 계약서에 김진희가 갑으로 되어 있다. 1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감옥살이를 10년이라도 해서 피해자들의 빚이 없어진다면 그렇게 하겠다.

어떻게 사람을 모았나?
명의를 빌려 준 첫 번째 피해자가 친언니이고, 두 번째는 나다. 20년 지기, 사촌, 외숙모 등 직계 가족 15명이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돈의 위력을 보고 몰려든 것이다. 이게 사기인 줄 알았다면 내가 이렇게 나설 수 없을 것이다.
이 일로 처벌을 받았나?
70일간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2003년 11월6일 구속되어 올 1월13일 보석으로 나왔다.

불법 대출한 자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이 돈을 굿머니는 어디에 썼나?
내가 알기로는 5백억원 정도를 불법 대출로 모았다. 이것이 수익 창출 모형이 전혀 없는 굿머니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우선 3백여명의 직원 급여로 100억원 가량 나갔다. 굿머니는 급여가 매우 센 회사로 일반 직원들도 월 2백만∼3백만원 수준이었다. 100억원은 김천상호저축은행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썼고, 70억원은 굿머니 대주주인 황회장에게 상환했다. 100억원을 광고와 경비로 썼다. 100억원은 오리무중이다. 이 100억원은 정치권으로 흘러갔거나 김영훈씨가 은닉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씨가 돈이 없어 쩔쩔 매는 것을 보면 재산을 은닉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굿머니에 다른 자금은 없는가?
사채업자 돈도 5백억원 가량 물려 있다고 들었다. 100억원을 물린 사채업자와 60억원을 물린 김씨 친구가 있었다.

굿머니가 정치권에 로비할 만한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금감원에서는 여신 유동이 100억원을 넘으면 요주의 은행으로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김천에 있는 이름도 없는 은행에서 석 달 만에 5백억원이 넘는 돈이 움직였다. 로비가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렇게 문제가 큰 회사인데도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인 2002년 10월과 12월 두 번의 금감원 감사를 무사히 잘 넘겼다. 2003년 2월4일 굿머니 문제가 터지고 금감원으로부터 고발당한 3월14일 이후에도, 김영훈씨는 5월 말까지 정상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이나 다른 단속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김씨는 ‘위에 다 손을 써놓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계속 했다.

그 위가 누군가?
위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이때도 신(계륜)의 이름이 나왔다. 두 번째 감사 나올 때부터 신의 이름이 직원들 입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CD에 정치권 로비의 실체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김영훈씨는 CD 여러 장에 회사 기밀 서류와 체포되었을 때 처신 방법과 답변 내용 등 대책 회의 자료를 담아 가지고 다녔다. 언젠가 김영훈씨의 방에서 그 CD 중 일부를 입수하게 되었다. 나는 굿머니 기밀 C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정치인과의 로비 내용을 담은 CD를 가졌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 조재환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굿머니측에 ‘감사하다’고 말한 육성이 담긴 보이스펜 2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말은 조재환 의원이 굿머니 다른 관계자로부터 확인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 내가 노대통령과 관련된 말을 한 적은 분명 없다. 내가 가진 CD에도 없는 내용이다.

CD에 신의원 이름은 담겨 있는가?
그렇다.
다른 정치인 이름은?
없다. 한나라당에 로비를 했다는 말은 들었다. 김영훈씨는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 그쪽에 투자를 많이 했으니 돼야 되겠지’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이기기를 바랐다.

정치권에 돈을 전달하는 장면을 목격했는가?
거성넷 백사장이 2002년 11월 혹은 12월 현금을 여행용 가방에 2억원 단위로 담아서 김회장에게 보내는 장면은 분명 봤다.

그 돈이 정치권으로 갔다는 것인가?
그건 모른다. 백사장에게 어디에 쓰는 돈이냐고 물었더니 ‘알면서’라고 하더라. 후에 백사장은 ‘통상 10억 정도씩 현금을 정치권으로 보내기 위해 돈을 가져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청문회에 나가 하루아침에 유명한 사람이 됐다. 김진희씨 개인에 대한 관심도 높다.
무슨 일을 하든 짐을 가장 많이 지려는 사람이다. 이번 일에도 많은 책임을 느낀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남들은 강한 여자라고 한다. 혼자서 우는 스타일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했는데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한 2년을 혼자 지냈다. 카드 빚 1천5백만원이 쌓이고 주머니에 돈 천원이 남았을 때 ‘정신차려야지’하고 일어섰다. 돈을 대주는 사람과 동업해 술집을 운영했다. 그때 김영훈씨를 처음 만났다. 김씨가 사람 관리를 잘하는 나를 눈여겨 보았다고 한다. 술집은 돈 모으기는 쉬웠지만 생리에 맞지 않아 1년 후 용인 수지에 제과점을 냈다. 장사가 잘되어 권리금을 얹어 팔고 성남에 또 제과점을 냈다. 장사를 잘해 권리금을 높여 파는 것이 주된 사업 아이템이었다. 다른 제과점을 물색하다가 김영훈씨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청문회에 나가 튀는 언행으로 전국민에게 얼굴을 알렸다. 쉽지 않은 결정으로 보인다. 청문회에 나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법사위에서 청문회에 나오지 않으면 천만원 이하의 벌금 등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나갔다. 다른 이유는 전국민 앞에 굿머니로 인한 피해자들을 도와줄 방법을 찾고자 했다. 회장인 김영훈씨의 책임이 가장 큰데도 언론에서는 일방적으로 피해자들의 책임이라는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또 현재 여러 직원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다. 국민의 이목을 끌어야 했기 때문에 청문회 초반 CD 내용과 돈 보내는 장면을 봤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나가면 발언권을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원들은 정치적인 이야기만 했다.

청문회에 나간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보는가? 지금 심경은 어떤가?
‘일반인 하나 데려다 정치권에서 바보로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숨기고 싶은 나의 사생활을 갈기갈기 파헤쳐 놓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정치인과 언론이 얼마나 잔인한지 일반인으로서 마음이 착잡하다. 또 한 번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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