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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장관이 털어놓은 정상회담 비화

박지원 장관이 기자협회 포럼에서 털어놓은 뒷얘기

제주도· 南文熙 기자 ㅣ 승인 2000.07.0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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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정상회담 추진 기간 내내 ‘얼굴은 웃었지만 가슴은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의 산파 역을 맡은 비밀 특사로서 그리고 공식 수행원으로서 평양에서의 막후 협상을 담당하기도 했던 그가 지난 6월23일 한국기자협회가 서귀포 KAL호텔에서 주최한 ‘제7회 기자 포럼’에 참석해 정상회담 막전 막후의 마음 졸였던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이번 정상회담의 전후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박장관의 발언 내용을 소개한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걸어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북한 산천을 한참 바라보셨다. 나중에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상들에게 감사하고 북한 산천이 너무나 반가워서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북한 산천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하셨다.

비행기에서 내려 두 정상이 두 손을 잡고 웃으면서 인사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21세기 새 천년에 세계에 보내는 최대의 평화 메시지였다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정부내 북한 전문가들의 국보급 분석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우리 통일 관계 전문 공무원들은 글자 그대로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국보라고 정의하고 싶다. 베이징에서 비밀 접촉을 하기 전에 그분들은 나에게 30쪽짜리 문건 2개를 줬는데 그것을 다섯 번 읽고 각자 출발해 중국에서 만났다. 또 회담 직전에 그 분들이 북측이 이 얘기를 할 거다, 이렇게 할 거다라고 미리 한 얘기가 순서도 안틀리고 정확하게 맞았다. 그래서 이 분들이 혹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닌가, 아니면 점쟁이가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 최소한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공직자로 근무하는 한 우리 국민은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해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번에도 그 분들의 분석은 가히 국보급이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하면 도착 성명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 전날 북측에서 연락이 오기를, 도착 성명을 발표하지 말고 보도 자료만 기자들에게 배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는 ‘환영 행사도 못하게 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구나’라고 염려했는데, 그들은 ‘이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올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평양에 도착해 공식 수행원들이 비행기 뒷문으로 내려서 도열해 서 있는데 ‘와’ 하면서 만세 소리가 나더니 김정일 위원장이 걸어오는 게 아닌가.

정상회담 과정 내내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파격적인 모습을 지켜봤다. 김대통령도 ‘이번에 전세계 사람들이 김위원장 연구에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마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말대로 은둔에서 세계로 나오는 그런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역지사지해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대남 정책을 지지해 주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또 김위원장이 먼저 서울을 방문하는데 우리 대통령이 공항에 나가서 동승하고 그렇게 환영했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리는 비록 개방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과연 그처럼 도량과 아량을 갖고 있는가.

나는 지난 2개월, 그리고 평양에서 떠나올 때까지 얼굴로는 웃으면서 가슴은 굉장히 많이 탔다. 그 중 하나가 역사적 상봉과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나와 송호경씨와의 합의문 때문이다. 그것을 가지고 북측과 굉장히 많이 토론하다가 내가 사인해 버렸다. 아마 다른 공직자가 가서 했다면 두려워서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 상봉을 하고 ‘두 분이’ 정상회담을 한다, 이렇게 ‘두 분이’라는 세 글자를 넣으려고 몇 시간을 싸웠다. 그런데 북측 인사들이 ‘중국의 장쩌민 총서기가 북한에 왔을 때도 똑같이 역사적 상봉과 최고위급 회담을 한다고 표기했다. 그리고 예비 회담에서 다시 논의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사인을 했다.

이 문제 외에도 나는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어야 하고 이 합의문에는 반드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합의문에 포함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송호경 선생은 정상회담을 해봐야 뭐가 합의될지 안 될지 그리고 서명 여부도 나오지 회담도 하기 전에 어떻게 여기다가 넣느냐, 박지원 선생은 북한의 헌법을 무시하느냐, 이런 얘기까지 해서 일리도 있고 해서 합의했다. 그래서 4월9일 베이징에서 돌아와서 대통령께 보고하면서, 이런 문제도 있었지만 이것은 예비 회담 과정에서 할 수 있으니까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얼마나 치밀하신 분인가. ‘이상하다. 자네 확실히 얻어낼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왔다. 그 뒤로도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셨다. 김위원장 한마디에 모든 문제 해결

그런데 평양에서 두 언론사(편집자 주; KBS와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절대 못들어온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하면서 대통령께 보고를 안 드렸는데 다음 날짜로 다른 라인으로 보고가 되었다. 대통령께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내가 일생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투쟁했다. 민주주의란 게 뭐냐. 언론의 자유로부터 나오지 않느냐. 정상회담을 못하더라도 이것만은 해결하고 가야 한다’고 하셔서 그날 밤 11시반 12시까지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도 잠을 못잤고 임동원 국정원장도 잠을 못잤다. 아침 6시에 임동원 원장에게서 ‘김용순 비서에게 이런 사유가 있는데 가서 얘기를 할 테니까 만나자고 연락을 해놨으니 그냥 공항에 나가자’고 전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서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 실무자가 뛰어와서 임동원 원장과 나에게 ‘지금 김용순 비서에게서 평양에 들어와서 해결하자’고 전문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살았다. 일단 추방은 면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양에서 임원장은 임원장 라인으로, 나는 내 라인으로 밤 12시 반까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북측 실무자들은 그들 스스로 결정을 못했다. 그 다음날 아침 임동원 원장은 북측의 임 아무개씨(이름은 밝힐 수 없다)와 점심을 하고 나는 송호경 선생과 하는데, 송선생이 만나자마자 ‘임동원 선생과 박지원 선생의 열정 때문에 취재를 허락하겠다’고 해 우리 기자들이 무사히 취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문제도 해결이 되었고 또 김정일 위원장이 파격적으로 김대통령과 동승해 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에 가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김용순 비서나 우리측 간부들은 제가 공항에 나가는 것에 대해 자꾸 빨간 불을 켭니다. 그래서 제가 파란 불로 고쳐서 (공항에) 갔습니다. 대통령님, 내일 제가 여기 오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상봉을 했고 내일 제가 여기 와서 사업(회담)을 합시다. 그리고 또 빨간 불을 켜면은 제가 고무 새총을 가지고 그 빨간 불을 다 쏘아 깨뜨려 가면서 여기에 오겠습니다.’ 그리고 김위원장은 ‘내일 의례 면담이 있대면서요’라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상봉과 정상회담 문제도 해결되었고, 김위원장 스스로 김영남 위원장과의 회담을 ‘의례 면담‘이라고 했으니 정상회담은 김위원장과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선언에 서명해야 하는데 김위원장이 절대로 안하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15분 이상을 설득했다. 그러니까 김위원장은 ‘그러면 좋다. 직함은 쓰지 말고 김대중 김정일 이렇게 쓰자. 안그러면 상부의 뜻을 받들어 임동원 김용순이 서명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께서 ‘이 중요한 합의를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해야 지킬 수 있지 다른 사람이 대리 서명해서 되겠느냐. 7·4 공동성명도 남북 기본합의서도 그렇게 서명해서 지켜졌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서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을 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인물평을 하기를 ‘납득이 되면 결정을 하는, 대화 상대가 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사람들이 물을 때 ‘통이 크고 호탕하고 자상하면서도 정치적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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