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재벌, 해체냐 생존이냐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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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원칙’으로 재벌 개혁·중산층 육성… “순기능 무시 말라” 반발 만만찮아
<대중 경제론>에는 있지만 에는 없는 것. ‘재벌 해체론’이다. 그동안 재벌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인식이 달라진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54주년 8·15 경축사를 보면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이 날 경축사의 백미는 재벌 개혁론. 김대통령은 재벌을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점으로 꼽고, 재벌을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 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시장이 재벌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이다. … 나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은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밝혔다. 재벌 개혁과 중산층 육성을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 ‘5+3 원칙’이다. 5원칙은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합의한 △경영 투명성 제고 △상호 지급 보증 해소 △재무 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진 책임 강화이다. 그동안 정부와 채권 금융기관이 추진해 온 △결합재무제표 작성 △부채 비율 200% 연내 달성 △빅딜 등이 모두 이와 관련된다.
그런데 이 날 경축사에는 5원칙 외에 3원칙이 추가되었다. 재벌이 △계열 금융 회사를 통해 금융을 지배하고 △순환 출자와 부당 내부 거래를 일삼고 △변칙적으로 상속·증여하는 것을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은 그동안 금융감독위원회·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도 여러 차례 밝혀졌다. 현대증권 ‘바이코리아 펀드’가 계열사 주가 떠받치기에 나선다든지, 삼성생명·대우증권이 그룹 자금줄 노릇을 하는 것,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양도해 상속세·증여세를 회피하고, 그물망처럼 뒤엉킨 그룹 계열사의 출자 관계로 인해 재벌 총수가 소수 지분을 갖고도 제왕처럼 군림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경축사에 담긴 재벌 개혁의 요체이다.

이것이 곧 재벌 해체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자들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재벌 개혁을 재벌 해체 정책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재벌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대우처럼 해체되는 재벌이 나오겠지만, 재벌 해체가 경제 정책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5+3 원칙을 추진하면 결국 재벌이 해체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재벌 해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대 그룹과 전경련이 우려하는 대목도 바로 이 점이다. 이들도 공식으로는 ‘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영 딴판이다. 이들이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부분은 재벌이 그동안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공로를 완전히 무시하고 청산 대상으로 삼는 듯한 정부 태도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윤제 교수(서강대·국제대학원)도 공감을 표시한다. “재벌 체제에도 분명히 장점이 있다. 이것을 살려 경쟁력을 강화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중산층 육성과 서민 생활 육성 차원에서 재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정책에 더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는 인물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이다. 그는 “대통령 한마디에 산천초목이 떠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냐? 재벌 구조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는 시장에서 투자자와 채권자가 판단할 문제이지 대통령이 선언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재벌 개혁 조타수 역할을 맡은 김태동 정책기획위원장이 ‘친재벌적인 인물 청산’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불쾌감을 내비쳤다. “중산층과 재벌을 적대 관계에 놓고, 재벌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거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써먹던 낭만적 이분법이다. 지식인들의 그같은 이분법은 결국 인류에게 고통만 안겨 주었다.” 그는 30여 년에 걸친 한국 경제 정책의 ‘결과’가 재벌이라면서, 그같은 결과를 낳은 환경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결과만 없애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참을성 한계에 도달”

그렇지만 대다수 경제 전문가는 이같은 반박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 경제학 교수는 “지난해 대우그룹 부채가 17조원이나 늘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한국 경제가 또다시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정부의 참을성도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도 이 점을 인정했다. “대통령의 경축사는 그동안 재벌 개혁이 미진했다는 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어떻게든 연말까지 재벌 개혁을 마무리짓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정부의 개혁 의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외국인들의 불만을 불식할 필요도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정부가 상정하는 재벌 개혁 시한은 올해 말. 그때까지 정부가 원하는 결실을 거둘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구두선에 그칠지 두고볼 일이다.
자동차 전무 소그룹으로 재편…GM이 대우차 경영권 인수하면 ''협력업체''노릇

대우그룹 계열사가 25개에서 6개로 줄어든다. 알짜배기 회사인 대우 증권과 자산 운용 회사인 서울투자신탁운용도 매각된다. 이들 기업은 대우 그룹이 자동차 전문 기업으로 살아 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끝까지 매각을 거부했던 회사들, 대우그룹은 (주)대우 건설부문도 계열에서 분리한 뒤 독립 법인으로 남길 계획이었지마나, 채권단 ''등쌀''에 결국 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지난 8월16일 오전 대우 그룹 채권단이 대우 그룹과 채결한 ''재무 구조 개선 특별 약정''의 주요 내용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우그룹을 자동차 전문 소그룹으로 재편한다는 것.

이날 채권단은 대우 그룹이 구조 조정 작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강제 이행조처도 마련해 두었다. 제일·한빛·산업·조흥·외환·서울 은행이 대우그룹 계열사 3~7개를 분담해 매달 이행 실적을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대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채권단이 즉시 담보 자산을 처분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행 실적이 저조한 계열사는 워크아웃(기업 개선 직업)이나 회사 정리 절차에 회부하는 등 강력히 제재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대우 그룹은 배수진을 치고 구조 조정을 이행할 수밖에 없게 되어싿.

그렇다고 앞날을 낙관할 수도 없는 사황이다. 출자 전환·계열 분리·매각 등 대우그룹 구조 조정의 밑그림이 완성되었지만, 이를 실행하는 데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출자 전환을 하려면 채권단이 손실을 분담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하고, 계열사를 매각하는 데도 인수 가격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불보듯 뻔히 예상된다. 8월18일부터 시작되는 대우그룹 외채 협상 결과도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수는 대우와 GM간의 전략적 제휴 협상 결과이다. ''특별 약정''에 따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나면, 대우그룹에는 △대우자동차△대우자동차판매 △대우캐피탈 △대우통신 자동차 부품 판매 등 자동차 관련 4개 사와 △(주)대우 무역 부문 △대우중공업 기계 부문이 남는다. 이런 사황에서 GM이 대우자동차 지분의 절반 이상과 경영권을 가져가게 되면, 대우는 이름만 남고 사실상 GM의 ''하청 생산 그룹''으로 전락하게 된다.

과연 대우는 자동차 전문 소그룹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GM의 하청 생산 그룹으로 전락하고 말것인가. 창업 32년만에 몰가의 길에 들어선 대우그룹. 운명의 손길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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