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덕 통일부장관 인터뷰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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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교류는 조건 없이 추진”…“서한만 유전, 남북 공동 개발 가능”
강인덕 통일부장관의 정릉 자택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평생을 두고 수집해 온 북한 및 사회주의권 서적이 도서관처럼 꾸민 서가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그는 최신 북한 자료를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을 피력할 수 있는 그의 자신감도 이같은 준비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강경론자가 아니라 포용론자라고 주장했다. 4자 회담, 북풍 사건 등 남북 관련 현안이 집중했던 지난 일요일(3월22일) 오후 3시 정릉 자택에서 긴급 인터뷰를 했다.

이번 4자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이 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을 볼 때 아예 회담을 성사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직 김대중 정부에 대한 입장 정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북한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경제도 그렇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대응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뭘 제의하기보다는 저쪽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4자 회담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가능한 한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북쪽도 대미 관계가 있기 때문에 회담을 깨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남북간 현안은 남북 직접 대화로 풀어 가자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북한의 이 근 차석대사 발언 파문이나, 4자 회담에 남북 대화를 포함하느냐 마느냐 문제를 두고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간에 이견이 노출되었는데?

나는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사이에 아무런 의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 근의 발언 파문은 뉘앙스에 대한 해석이 달랐을 뿐이다. 새 정부 들어 안보팀이 두 차례 공식 회의를 했는데, 앞으로 모든 문제를 거기서 논의할 것이므로 그런 오해를 살 일이 없을 것이다.

통일부가 통일 정책 수립의 주축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필수 아닌가?

정확한 지적이다. 이 문제는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앞으로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 산하에 실무자급 조정 기구를 두어 거기서 해결하려고 한다.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와 통일부장관이 주관하는 통일관계장관회의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국가안보회의는 국가 최고 전략을 논의하는 기구다. 여기서 대북 정책의 큰 방향이 잡히면 통일부장관이 통일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보면 된다.

햇볕론을 주장해 온 김대통령이 강경론자로 알려진 강장관을 임명한 것이 뜻밖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과 내가 세계관이 달랐다면 통일부장관을 맡을 수 있었겠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원리를 지지한다는 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다만 구체적인 전략이나 정책에서는 시기와 정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북한의 태도를 볼 때 대통령께서 생각하신 것이 조금 빠르지 않나 하고 보았던 것이고, 지금은 시대와 정세가 바뀌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구현하는 데 조금의 어려움도 없다고 본다.

장관은 북한 붕괴론자인가?

그 점에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흡수통일론자도 조기붕괴론자도 아니다. 나는 우리가 흡수 통일을 하겠다느니 않겠다느니 하는 말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흡수 통일은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북한 내부 문제다. 또 조기붕괴론도 잘못된 주장이다. 군대를 주축으로 한 북한의 통치 체제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는 IMF 체제에서 구조 개혁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외곽이 평화로워야 한다. 특히 휴전선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할 경우 외국 기업이나 자본이 한국에 들어오려 하겠나. 따라서 북한의 곤란한 상태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도울 것은 돕는 것이 필요하다. 또 민간 기업의 대북 진출 길을 열어 주어 북한 경제가 회생하는 데 일정 정도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관련해 최근 방한한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한국이 먼저 군축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씨는 이번에 잠깐 만났고 다시 만날 예정이다. 군축은 우리도 관심을 두어야 할 문제다. 60만과 백만의 군대가 대치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다만 이 문제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 즉 시기와 정세가 중요하다. 앞으로 한·미 간에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

남북 간에 막후 채널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북한과의 공개 협상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된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비공개 협상, 막후 채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채널은 과거처럼 대통령 아들, 기업인, 학자 같은 개인이 담당해서는 안된다. 신뢰성도 의문이거니와 그렇게 되면 국가기관이 죽는다. 바로 나라 망하는 길이다. 따라서 막후 협상을 하되, 반드시 국가기관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흑금성 파문을 어떻게 보나?

크게 잘못된 일이다. 과거 20년 이상 중앙정보부에 근무한 경험으로 볼 때, 정보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시기적으로도 대단히 유감스럽다. 기업의 북한 진출이 상당 기간 타격을 받을 것이고, 남북 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92년 남북협상에서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씨 송환과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일괄 타결한 적이 있는데, 이런 방식을 다시 한번 시도해 볼 생각이 있는가?

92년에 그런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확인은 못했다. 북한과의 교섭에서, 인도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건을 붙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철저히 받아야 한다. 이인모 송환 같은 경우 그렇지 못해 유감이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서로 주고 받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산 가족 문제도 그 범주에 포함되는가?

물론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또 납북자나 국군 포로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도 당국간 비공식 접촉이 필요하다.

북한은 한국 기업에게 나진·선봉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한국 기업은 원산·남포 진출을 희망한다. 정부 차원의 식량 지원을 이 문제와 연계할 생각은 없나?

물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남포·원산에서 원활하게 기업 활동을 하려면 그쪽의 법령이 바뀔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나진·선봉 경제특구법이 남포·원산에도 적용되어야 기업 활동이 원활해질 것이다.

북한은 지금 서한만에서 유전을 개발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남북 공동 유전 개발 사업을 제안할 생각은 없는가?

우리가 기술을 제공해 그것이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도움이 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그러나 순수한 경제 목적, 그리고 서한만 유전에 경제성이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우리에게 정확한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미국·일본이 북한에 접근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을 국제 사회에 나오도록 한다는 점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국을 제쳐두고 진행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북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면 공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를 위해 고위층의 왕래도 중요하지만 실무선에서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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