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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근 영사, 러시아 마피아가 살해했다?

최덕근 영사 사건/북, 러시아 폭력단에 청부 가능성… ‘갈취’ 제지에 대한 단순 보복일 수도

정희상 기자 ㅣ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6.10.17(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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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해외 교민 안전 전선:현지 진출 교민의 신변 안전 관리를 맡았던 최덕근 영사(왼쪽)가 피살됨으로써 해외 교민의 안전 대책에 근본적인 의문이 일고 있다. 오른쪽은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된 최영사 피살 사건 기사. 시사저널 자료, KBS 화면  
 
건국 후 최초로 외교관 피살이라는 기록을 남긴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은 또 다른 이유에서 충격적이다. 국가 기관 중 해외의 테러 및 범죄로부터 신변 안전에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곳은 안기부인데, 최영사는 바로 안기부가 파견한 외교관이었다. 그의 역할 가운데는 현지 교민을 상대로 자행되는 각종 테러와 범죄 행위에 대비해 교민의 신변 안전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남북한 정치 민감 지대’

이런 최영사마저 테러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해외 교민들에게 ‘이제 어느 누구도 테러로부터 보호 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 공포 심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번 사건의 궁극적 책임은 자국에 진출한 외교관의 신변마저 보호하지 못하는 러시아 당국의 허술한 치안력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정부로서도 과연 재외 교민 안전 대책을 제대로 세우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최영사가 피살된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은 두 가지 면에서 항상 교민들의 신변 안전이 우려되던 곳이다. 하나는 이 일대가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이곳을 대북 정보 전략 요충으로 인식해 왔고, 그 때문에 러시아 정부도 이곳을 ‘남북한 정치 민감 지대’로 분류하고 있다. 정치 민감 지대의 벨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나홋카·하바로프스크 등 연해주를 포함해 국경 너머 중국 훈춘·연길·화룡·단동에 이르기까지 약 1천5백 리에 이르는 한·만 국경 지대로 이어진다.

바로 이런 정치 민감 지대에서 대북 정보 수집을 주로 해오던 최영사가 피살되었다는 점 때문에 북한측의 테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사건을 수사하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도 그 개연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지나치게 북한 소행 가능성에만 집착하는 탓에 블라디보스토크의 또 다른 특성을 간과해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러시아 극동 마피아의 거점이라는 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현재 마피아 조직이 7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잔인하고 강력한 세력은 아니트리 코프헤브가 두목으로 있는 크리미나레 마피아(조직원 3백명)와, 유라가 두목으로 있는 스포츠 마피아(조직원 2백여 명)이다.

옛 소련이 무너진 후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온 마피아 조직은 시장 경제 체제의 선봉에 서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공안 당국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들까지 여기에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는 치안이 극도로 혼란해 저녁 7시만 넘으면 러시아 경찰도 방탄복을 입고 기관단총을 든 채 순찰을 도는 실정이다.

또 마피아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보따리장사들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매월 매출액의 10~20%를 갈취하고 있으며, 마피아 조직원을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을 경우 보복하겠다는 위협을 가한다. 이런 등쌀에 견디다 못한 대부분의 현지 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과 끈을 맺고 있다.

“만달러 주면 누구든 제거”

이처럼 사태가 심각해지자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은 그동안 마피아로부터 현지 교민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여 왔다. 피살된 최덕근 영사도 대북 정보 업무 외에, 마피아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이들이 한국 기업의 활동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제지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의 일부 교민들은 이권을 침해받은 마피아 조직이 총영사관에 불만을 품고, 또는 북한측의 청부를 받아 최영사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설령 사건 배후에 북한이나 또 다른 세력이 있을지라도 현장 살해는 마피아가 담당했으리라는 것이 교민들의 일반적 인식이라고 한다. 최영사를 살해한 수법이 전형적인 마피아식 청부 살인 수법이라는 점 때문이다. 흉기로 후두부를 여덟 차례나 강타할 정도로 잔인한 살해 수법은 마피아 조직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더구나 현지 마피아들은 공공연하게 ‘사례금 만달러만 주면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가 제거해 주겠다’는 청부 살인 광고를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교민들은 현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러시아연방보안국이 범인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회의하고 있다. 유사한 사건에 대한 악몽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출한 부산무역 강현칠씨가 자택에서 예리한 흉기에 찔려 피살되었지만 러시아 당국은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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