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구 노동부장관 구속한 검찰 정보팀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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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 이형구 전 노동부장관 구속은 ‘기획 수사’ 결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정보 수집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대검 중수부가 벌여온 이형구 전 노동부장관의 산업은행 총재 재직 시절 뇌물 수수 사건 수사를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사상 유례 없이 현직 장관을 내사해 왔다. 4개월에 이르는 동안 보안도 철저하게 유지했다. 중수부의 표적이 됐던 이형구 전 노동부장관은 검찰의 수사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바로 전날인 5월21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창작오페라 <안중근>을 관람하고 나오다가 보도 예정 사실을 보고 받았을 정도였다. 이 전장관은 검찰이 수사 사실을 확인한 23일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현직 장관을 수사한다는 점 때문에 크게 신경을 써왔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집한 정보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이번 수사의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지만, 일단은 검찰의 `‘작품’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수사를 맡은 대검 중수부 2과 김성호 과장은 지난 5월26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번 수사는 검찰이 적극적인 정보 수집과 내사를 통해 착수,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성 중수부장은 ‘앞으로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정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방침’이라고 밝혀, 이번 수사가 검찰의 독자적인 정보 수집과 기획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대검 사상 최초 정보전담팀 구성

이번 사건이 급진전한 계기는 이른바 `‘덕산그룹 박성섭리스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산그룹 부도 사태 당시 박성섭 회장이 이형구 전 산은총재에게 대출과 관련해 거액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는 이 전총재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을 입수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1월부터라고 주장한다. 김성호 과장은 수사 착수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소문에서 시작해 (산업은행 등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에 정보 수집을 전담하는 부서가 생겨났다는 사실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물론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에도 독자적으로 범죄 정보를 수집해 왔다. 투서나 제보도 빈번하게 입수한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에 첩보 수집을 전담하는 팀이 생긴 것은 대검 사상 최초의 일이다.

대검 중수부가 정보 전담 팀을 구성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후 사정 활동을 주도해야 할 검찰이 다른 기관에 처진다는 판단에서였다. 청와대 사정수석실이나 감사원이 앞서서 사정 활동을 벌이고, 검찰은 법적 문제를 검토하며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는 자체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검찰 수뇌부가 정치권의 눈치만 보면서 사정 활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5, 6급 수사관 10여명으로 운용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검찰 수뇌부가 고안한 해법은 기획 수사를 통해 사정 활동을 주도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 입수 단계에서 앞서야 하고, 그러려면 독자적인 정보 전담 팀이 생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팀은 이 전장관을 포함해 주요 인사들의 비리와,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범죄 관련 첩보에 촉각을 세워 왔다.

팀 구성원은 5, 6급 수사관 10여 명으로 운용되는데, 상황을 보아 가면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비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부서답게 검찰 주변에서 `‘서초물산’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검찰 관계자들은 이 조직이 아직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다른 시각도 있다.

“정보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정보기관이 정부 내에 꽤 있는데, 검찰이 왜 또 유사한 부서를 만드느냐는 비난을 의식했을 것”이라고 행정부 내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는 설명한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기획 수사를 지향해온 검찰의 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준 첫 개가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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