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흔든 '이수성 괴문서' 파동 전말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7.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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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에 의혹 몰리고, 다른 후보도 혐의 못 벗어
결국 또 괴문서 파동이다. 정국의 고비 고비마다 정치권을 뒤흔들곤 했던 괴문서가 신한국당 경선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지난 7월2일 의원회관 각 사무실에는 ‘이수성 가계 특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A4 용지 13쪽 분량 문건이 일제히 배달되었다. 내용은 이수성 후보의 아버지인 이충영 변호사의 친일 행적, 외숙부인 강정택씨의 좌익 활동 흔적을 지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이회창 후보의 강원도책을 맡고 있는 박우병 의원(강원 태백·정선)의 비서관 이병하씨가 흑색 선전물을 작성·배포한 사람과 관련이 있거나, 최소한 그 정체를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이수성 후보 선대의 행적과 관련한 문건에 대해 이비서관으로부터 최초로 제보를 받은 <내일신문> 관계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비서관은 두 차례에 걸쳐 <내일신문>에 자료를 제공할 뜻을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6월11일 의원회관에서 이 신문 정치팀 ㅈ기자에게 1차로 ‘이수성 부친의 친일 행각에 관한 자료가 있는데 기사를 쓰겠느냐’고 물었으며, 6월28일에는 이 신문사에 직접 찾아가 신명식 편집국장에게 문제의 문건을 비롯한 각종 참고 문헌 수백 쪽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의원회관에 문제의 문건이 돈 뒤 <내일신문> ㅈ기자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수성 후보 비서관에게 발설해 알려지게 되었다.

의심 받는 비서관, 결백 주장

하지만 <내일신문>측과 이비서관의 주장은 엇갈린다. 7월5일 기자회견을 통해 <내일신문>에 자료를 제공하려 하거나 찾아간 적이 없다고 밝힌 이비서관은 6일 말을 뒤집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노동운동을 함께 해 친한 ㅈ기자가 지난 5월에 이회창·이수성 두 후보 선대의 행적에 대한 여러 가지 문건이 돈다는 소문이 있는데 한번 찾아봐 줄 수 없느냐고 얘기해, 박우병 의원과는 아무 상관 없이 개인 채널을 통해 자료를 구해 준 것인데 그것을 언론에 흘려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이 보여준 자료와 의원회관에 배달된 문건은 별개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내일신문> 신명식 편집국장은 이비서관이 먼저 자료를 제공할 뜻을 비쳤으며, 보여준 자료에 문제의 문건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마치 이비서관이 문건 작성·배포자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비서관 본인의 진술을 비롯해 여러 가지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있지만, 어느 것이 후보들의 역공작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괴문서 파동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쪽은 이회창 후보 진영이다. 박우병 의원이 강원도책을 맡고 있어 그의 비서관인 이병하씨도 넓게 보면 이회창 사람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수성 후보를 비롯한 나머지 후보들은 한결같이 이회창 후보 진영을 지목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이 문건을 이회창 후보 진영이 작성해 배포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7룡 모두 “진상 규명” 목소리 높여

우선 이회창 후보의 부친 역시 일제 때 검찰청 직원을 지냈기 때문에, 이후보 진영은 어느 쪽 얘기든 선대의 행적이 거론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 편이다. 설령 이수성 후보를 음해하려고 했다 해도 그처럼 허술하게 박우병 의원의 비서관을 시켜 언론사에 자료를 제공하려고 했을지도 의문이다.

사실 이해 득실로만 따져 본다면 이회창 후보나 이수성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도 의혹의 눈길을 받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번 파동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이회창·이수성 후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후보로 지지할지 고민에 빠져 있는 민주계 핵심들로 하여금 이수성 후보를 포기하게 만들고, 동시에 이회창 후보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누군가 일을 꾸몄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서가 드러난 마당이고, 또 이회창·이수성을 비롯한 모든 후보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는 만큼 검찰은 이번에야말로 정치권에 괴문서를 유포하는 검은 손의 정체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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