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지존무상’의 말로 3.5평 철창행
  • 경남 합천·蘇成玟 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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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새벽이었다. 95년 12월3일 오전 6시34분.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전 대통령 전두환씨는 고향인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두 팔을 검찰 수사관들에게 붙들린 채 안양교도소로 끌려갔다. 전씨가 쿠데타에 성공한 지 16년에서 열흘 모자란 날의 새벽이었다.

서슬 퍼렇던 제5 공화국 시절 전씨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었다. 그러나 ‘칼날’을 쥔 신세로 전락한 전씨가 12월2일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현 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전격 구속 결정이었다.

하지만 전씨의 고향은 달랐다. 성명 낭독을 마친 뒤 국립묘지를 참배한 전씨는 고향으로 향했다. 합천군 율곡면 기리의 선산에 당도한 전씨를 맞이한 것은 ‘각하, 고향에 잘 오셨습니다’라는 현수막과 환영 인파 수백 명이었다. 생가가 있는 내천리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이 현수막들은 전씨가 할머니 제사를 지내러 올 예정이었기에 미리 만든 것이었다. 전씨가 연행되던 새벽 그의 고향 마을은 애정과 증오, 덧없는 영광과 닥쳐올 오욕의 갈등으로 들끓었다.
전씨가 당질 집에 도착하자 이 집 마당에 모여든 일부 주민들은 현 정권을 비난하는 한편, 전씨에 대한 ‘박해’가 지역감정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날 밤 합천군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합천 사람들은 전경환씨나 전재국씨(전두환씨 장남)가 총선에 출마하면 다 찍어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 곳의 정서를 강변했다.

그러나 인근 지역에서 내천리에 모여든 시위대 50여 명은 전씨 처벌과 5·18 사건 특별검사제 도입을 외치면서, 이곳 주민들 및 어디선가 동원된 스포츠 머리 청년들과 줄곧 몸싸움을 벌였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서부경남 연합’ 이기동 집행위원장(36)은 “마을 주민들이 급격한 영장 집행 앞에서 분별력을 잃은 것 같다. 하지만 두루마기 입은 어떤 촌로는 ‘소신 있게 잘한다’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씨의 측근 중 측근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기자들이 향후 계획을 질문할 때마다 “고향에 오신 어른한테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는 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는 가끔 사석에서 “역사란, 잘못한 사실을 들추어 내자면 한이 없지만 잘한 사실은 열 가지 스무 가지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현 정권을 빗대 “한국 구렁이는 자기보다 약한 구렁이는 잡아먹지만 자기보다 센 구렁이한테는 해코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현 정권이 전씨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용서이다”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마치 현 정권은 전씨를 응징할 자격이 없다는 투였다.

역시 전씨 측근인 민정기 전 비서관도 이날 밤 “검찰의 소환에는 응하지 않겠지만 법원의 판단에는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전씨가 발표한 성명 내용에도 담겨 있는데, 수세에 몰린 전씨가 앞으로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해 현 정권과 검찰의 허를 찔러나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초헌법적 힘으로 법 질서를 짓밟았던 전씨가 이제는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라는 사실에 마지막 명운을 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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